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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Sep 30. 2024

어느 휴일 양양장터

시장 구경

어는 휴일의 양양 장터풍경  

흐린 일요일 오후 온종일 집에서 뭉개다 두 손 잡고 나가시는 부모님 덕에 장날인 줄 알았다.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입구부터 걷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골에 웬 사람이 이리 많은지 이곳 사람들 다 온듯했다.

외곽으로 돌아 잠시 한적한 곳으로 다시 나가려 했다. 늘 지나다니던 골목 어귀에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자립 잡은 뚜레쥬르도 전과 달라 보였다. 입구 앞에 어린 오빠, 이쁜 여동생도 보인다.

엄마가 어디 갔다 왔는지 와서는 '너희들 여기서 꼼짝도 하지 말고 기다려'하며 또 누군가를 찾아 사람 속으로 사라진다.

아마도 남편이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 잔 하느라 전화도 안 받는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또다시 있을 법한 곳을 찾으러 가는 듯 보인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맛있게 먹던 어린 여동생은 엄마가 보이지 않자 바로 일어서 어디를 가려한다. 얌전한 오빠가 소매를 잡으며


'오빠 옆에 딱 붙어 있어, 길 잃어버리면 어쩌려고'하며 다시 앉힌다. 어리지만 여동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파장 때가 되어서인지 인적이 뜸한 곳에 꽃단장한 할머니 몇 분이 누군가를 기다리신다. 같은 동네 분들일까? 집으로 같이 갈 친구를 기다리나? 태워다 줄 자식들을 기다리나? 할아버지들을 기다리나?

그중 한 분은 멋쟁이 할아버지를 보고 홍조 띤 얼굴로 일어나며 부끄러운 미소로 맞는다. 노년의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이 아름다워 보인다.

저분들은 행복한 분들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사랑도 한다. 사람은 스스로 어떤 것이든 할 줄 알고 해결하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의 시작이다. 일상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는 잃고 나서 알면 늦은 것이다.

어느 작가는 유작에서 존경하는 스승이 눈만 뜨고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오며 매일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작업 공구를 파는 좌판에서는 낡은 그릇에 구멍을 연신 뚫는 모습을 지켜보는 할아버지. '매장에서는 4만 원인데 3만 원에 팔아요'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애써 관심을 숨기려 하신다. 지나가는 내가 보기에도 그 마음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가격이...'라는 말씀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서운 속도로 드릴 끝 나 사셋을 꺼네어 떨어지지 않는 기능이 있다고 흔들어 보인다.

'오늘 장사도 잘 되었으니 사시면 서비스로 드립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나고...'라는 말에 바로 지갑을 여신다.
헷갈린다. 상술인가? 진담일까? 둘 다일까?

이곳 상인 같지 않은 옷차림,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품위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도 무엇인가를 팔렸는지 그저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지키고 있는 건지? 얼핏 보아도 피부색이나 화장이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로 시집간 딸? 혹 시댁 온 며느리? 아직은 내가 젊고 건강한 모양이다. 선글라스에 눈을 숨기고 자판 위 물건은 안 보고 엄한 것만 보며 지나갔다.

몇 개월째인지 모르겠지만 금방이라도 아이가 나 올 것 같은 산만한 배를 한 임산모도 생필품들을 팔고 있다.

산달이 다가오면 운동을 더 해 주어야 수월하게 출산이 되니 돈을 주면서까지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건을 팔아 돈도 벌고 운동도 하니 일석이조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좀 안쓰러워 보인다.

잠시 붐비는 곳을 떠나 찹쌀 떡 하나 먹으려 뒷골목으로 접어들자 허리가 90도로 땅에 닿을 만큼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유머차도 없이 힘겹운 잔걸음으로 바쁘게 스쳐 가신다.

살짝 마주친 무심한, 눈빛 사이로 깊게 파인 주름이 보인다. 힘겨운 삶, 평탄치 않은 인생,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까지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 저리 사시진 않을 것이다.

지금은 거리에서 보기 힘든 상, 하의가 안 어울리는 양복을 입으시고 대낮부터 한 잔 걸친 중년의 시골 멋쟁이 아저씨도 기분이 흐뭇해 보인다. 얼굴이 붉은 것일까, 코만 붉은 것일까?

같은 남자로서 기분 좋아 보인다. 그런데 한 잔 하시고 어디를 저리 바삐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가는 것일까? 문득 동요 한 곡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엠멤~
달래 먹고 멤엠멤~
고추 먹고 맴엠멤
달래 먹고 멤엠멤~


잔뜩 멋 부린 젊은 여성은 무얼 저리 두리번거리는지 짙은 화장, 진한 립스틱, 화려한 색상의 바탕에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다. 마치  하늘거리는 옷을 자랑하듯이 누구라도 보아 달라는 것처럼 걷는다.

중국 춘절을 소개한 지상파 방송에서 예전에 본 듯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국의 패션이 여기에 영향을 준 것인지 그들이 저 여성의 것을 따라 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상당히 닮았다.

시장길 한 구석에 이제야 햇빛이 건물에 막혀 그늘진 곳에 넓게 자판을 벌리고 채소 등을 떨이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줄지어 앉아 계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땅콩, 앵두, 상치 등을 조금씩 담은 그릇을 가리키며 손짓으로 사가라 하신다. 오래된 듯 보이지만 아직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차양모 사이 백발이 어설프게 어울린다.

그중 한 분은 열심히 천 원짜리 뭉치를 침 발라 세고 계신다. 한 시간 전쯤에도 그랬는데 아직도 그 할머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그대로이다. 돈이 많아서일까? 세다가 잊어버려서일까? 여하간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며 한 손에 무엇인가를 마시는 초등학생,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옆 좀 큰 아이는 무언가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좀 더 컸다고 부모님 따라 장에 오는 것보다 친구들과 같이 하는 게 좋을 나이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서 사는 게 이치인가 보다.

그런데 오가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친구분께 인사하고 용돈 받는 큰 아이는 싱글벙글이다. 역시 어른이나 아이나 남녀노소, 상하 지위를 떠나 뭐라도 받는 건 다들 좋아한다.

이런저런 사람, 농촌에 필요한 도구나 물건, 상추, 쑥갓, 꺂잎, 오이 등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설악산에서 채취되었을 거라 추측되는 열매, 나뭇잎, 줄기 껍질, 뿌리, 버섯들과 오징어, 문어, 고등어, 가자미에 그 귀하다는 명태까지... 볼거리 천지이다.

그래도 장터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번데기, 순대, 만두, 찹쌀도넛, 호떡, 별의별 튀김 등이 제일이다. 검은 봉지에 필요한 것 싸게 사서 들고 나니며, 장 구경에 더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이 최고다.

선글라스에 야구모자로 위장했으니 아는 이 없을 거라는 강한(?) 믿음으로 어릴 적 엄마 따라가던 그 시장의 나로 돌아가니 즐겁기 그지없다.

여기서 빠지면 안 되는 어디선가 들리는 '위하여' 함성!
아마도 장날을 잡아 친구들 모임을 하는 모양이다. 목소리, 웃음소리에 정겨움, 삶의 기쁨이 묻어 들려온다.

이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나 같은 사람, 명품으로 보이는 여성용 가방에 명품 선글라스를 한 채로 열심히 사진 촬영하는 사람 또 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상인들...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지 모르겠다.

문득 동물원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원숭이, 코끼리들도 그러했으려나 생각하니 실 웃음이 난다.

저 푸른 하늘 위 하나님도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평소에 온갖 죽는상, 슬픈 상, 아귀다툼, 시기, 질투를 하다가 어느 날은 헤헤거리며 즐거워하고 행복에 겨워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하는 우리를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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