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 부모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만큼 부모가 된 나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이’를 잘 키우라고만 할 뿐 ‘부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학 전문가’인 자람패밀리 이성아 대표를 만나게 됐고, 무작정 묻기 시작했습니다.
'요즘부모 다시보기' 시리즈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궁금한 게 많은 틈틈이(이하 아연)가 이성아 대표(이하 그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깨우친 내용을 정리합니다.
아연: 저는 제가 좋은 엄마는 몰라도 괜찮은 엄마는 될 줄 알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워낙 좋아했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크게 부족하지 않게 가정교육 잘 받으면서 자랐거든요? 엄만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전 울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 어린 시절을 그렇게 기억 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지요. 아연님이 닮고 싶은 엄마는 어떤 모습 인가요?
아연: 우선 아침밥을 거른 기억이 없어요. 늘 갓 지은 밥에 따뜻한 국을 차리고 저를 깨우셨어요. 밥을 먹는 동안 옆에서 과일을 깎아 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곤 하셨고요. 밥을 먹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새로 하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알잖아요. 저는 지금 기껏해야 토스트, 큰 마음먹어야 유부초밥 정도가 아침이거든요.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제가 어릴 때 먹던 아침이 생각나고 ‘이러고도 내가 엄마 소리를 듣네’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 음… 얼마 전 진행한 버킷리스트 워크숍에서의 한 엄마가 이런 이야길 하셨어요.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데 그동안 일을 하느라 남의 손 빌려서 아이를 키웠다고, 따뜻한 밥 한끼 잘 차려 준 적이 없다고요. 그래서 올해 된장국을 최소한 10번은 끓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엄마 노릇 해보고 싶으시다고요.
아연: 저도 출근하느라 웅이 결이 밥 한끼를 제대로 못 해먹이는 게 그렇게 아쉽고 미안하더라고요.
그래: 제대로라…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일어나 토스트,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곤 한다면서요. 그 밥 먹고 웅이 결이 잘 자라고 있잖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맞벌이하는 경우가 적고, 역할 구분이 안 밖으로 나눠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90년대만 해도 맞벌이가구의 비율은 20% 남짓이었으니까요.
80년대생의 요즘 부모들이 기억하는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더 적었겠죠. TV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부모는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살림과 육아를 하는 모습이었어요. 엄마는 집안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아빠를 기다려요. 아빠가 퇴근해 집에 오면 ‘얼른 손 씻고 오세요. 밥 차려 놨어요. 얘들아, 아빠 오셨다. 인사 드리고 밥 먹자.’고 하고요. 우리가 이상적으로 기억하는 엄마, 아빠, 가족은 대부분 이런 모습일 거예요.
아연: 맞아요. 제가 기억하는 저녁 풍경도 그래요. 아빠가 늦게 퇴근하셔서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이 많진 않았지만, 엄마는 늘 집에서 우리 삼남매를 보살펴 주셨고,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었어요.
그래: 지금, 아연님 가족의 저녁은 어떤 풍경이에요?
아연: 남편이 먼저 퇴근해서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제가 집에 도착해 간단히 저녁을 차려요. 저녁 먹으며 오늘 하루를 각자 어떻게 보냈는지 나누고, 다 먹으면 남편은 뒷정리를 하고 저는 아이들과 놀죠.
그래: 편안하세요?
아연: 네… 크게 불만스러운 부분은 없어요.
그래: 그럼 충분하지 않나요? 아연님과 어머니는 서로 다른 세대의 엄마예요. 어머니는 전업 주부셨고, 아연님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죠. 엄마라는 역할은 같지만 엄마로 사는 환경이 달라요. 그렇다면 엄마로 사는 방법 역시 다른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부모역할의 본질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거예요. 그 방법이 맛있는 반찬집에서 반찬을 주문하고 밀키트로 생일상을 차린다고 부족한 건 아니지요. 아연님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거나 돌보지 않는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어머니 세대에 맞게 엄마 역할을 수행하셨고, 나는 내 방식으로, 요즘 세대에 맞게 엄마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부모역할을 기준값으로 설정하고 양육방법을 똑같이 따라하려 한다면 버거운 게 많을 거예요.
아연: 그렇네요. 엄마와 난 다른 환경에서 엄마로 살고 있는데, 전 엄마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네요. 나는 엄마와 함께 있는 게 좋았는데,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게 미안했고 나는 엄마가 해주는 갓 지은 밥을 먹고 학교에 갔는데 우리 아이들은 빵을 먹고 학교에 가는 게 미안했거든요.
그래: 출근하면서 죄책감을 갖는다는 엄마들이 많아요. 죄책감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거예요. 출근하는 게 잘못인가요? 오늘은 예전의 ‘그 때’가 아니잖아요. 내가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준을 들여다보고 점검하면 괜한 비교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아연: 그러고보니 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울 엄마처럼 한 상 차려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엄마 이거 다 먹어? 어린이집 가면 간식 주는데…’ 하면서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래: 그러네요. 아이들도 우리 어릴 때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으니 그때 내가 좋았던 행동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은 부분들도 있겠네요. 부모가 된 이상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내가 좋았던 기억을 똑같이 구현해내야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닐 수 있어요.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편에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부모인 나를 자랑스러워하는데도, 유독 사회에서 'OO의 엄마'로 불리는 게 싫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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