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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17. 2022

“사회에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내가 너무 달라요”

아연: 부모가 되고 내가 너무 낯설때가 많았어요. 부모님께는 착한 딸,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직원이었거든요? 일 척척 잘해요. 그런데, 육아는 아주 엉망진창이에요. 내가 무언가에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게 놀랍고, 지금도 놀라워요.


그래: 부모가 되고 나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는 분들이 참 많아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런데 좀 안타까운 건 그 새롭게 만나는 내가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짜증이 이렇게 많았나?’, ‘잘 하지 못하는 게 왜 이렇게 많아졌지?’ 처럼요.



엄마가 된 알파걸들

아연: 다 제 이야기 같아요. 예전엔 똑 부러지게 결정도 잘 했는데, 지금은 이게 맞나?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하게 될 때도 많아요.


그래: 지금 아연님 또래의 부모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하나 있어요.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알파걸’ 들어보셨죠?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인 댄 킨들러가 저서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요. 킨들러 교수는 알파걸을 “성실하고, 낙천적이고, 실용적이고, 이상적이며, 개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평등주의자인, 그러면서 관심영역이 광범위해 인생의 모든 가능성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유능한 소녀집단”이라고 정의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경력, 능력을 갖춘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지요.”


아연: 기억나요. 사회 초년생일 때 ‘알파걸’ 이란 말을 처음 듣고,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네가 원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다’, ‘노력하면 된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자주 들었거든요. 맡은 일을 열심히, 스스로 해내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 요즘 부모들이 대부분 ‘알파걸’로 성장한 세대에 해당할 거예요. 킨들러 교수는 알파걸의 특징 중 하나로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을 꼽아요. 요즘 부모들은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노력해서 이뤄낸 것들이 많아요. 자신의 능력을 믿죠. 아연님도 그렇다고 하셨지요? 부모역할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고요.



아연: 맞아요. 처음부터 잘 하지는 못해도 잘 할 때까지 노력할 자신이 있었어요. 임신을 하고 출산일이 다가오니 '내가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그때부터 육아서를 찾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꼬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 이제 막 부모가 되신 분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까지 왔고,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 아이와 있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초보가 된다고요. 직장으로 치면 신입사원? 인턴 정도가 되는 느낌이라고 하세요.


아연: 네! 바로 그거에요. 사회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 사이의 갭이 너무 컸어요.


그래: 갭이 크면 혼란스럽지요. 그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거나 아니면 전문적이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요.


사회에서의 성장 vs 가정에서의 성장

아연: 저는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는 쪽을 택했네요. 임신했을 때 육아서를 많이 읽었거든요. 수유는 3~4시간 간격으로 양쪽 젖을 15분씩 물리라는 말에 시간표를 만들고 알람을 설정해 뒀는데, 아이는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시간표를 수정하고, 다시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통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젖을 물리려고 해도 물지 않고, 방금 젖을 물리고 돌아섰는데 다시 달라고 또 울기도 하고요.


그래: 가끔 육아가 업무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아연: 그럴 때가 있죠.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하는 핵심업무요. 그러고보니 직장에서 업무를 파악하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서 달성하려고 하는 것처럼 육아도 그렇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업무에 대해 부장님이 만족하시고,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뿌듯했던 것처럼 아이가 만족하고 주변에서 ‘참 좋은 엄마야’라는 평을 들어야 내 육아에 안심이 되고요.


그래: 부모가 되기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어서 그래요. 성취와 경쟁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육아에서도 더 많이 해내려고 하고 다른 부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사회가 개인을 역할수행의 ‘도구’로 보는 것처럼 내가 나 스스로를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 쓰는 거예요.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부모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거고요.



아연: 이렇게 들으며 돌아보니 무언가 씁쓸해요. 아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뭔가 좀 달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직장인인 나와 엄마인 나 사이의 갭이 크다고 했었지요? 갭이 큰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사회와 가정은 다른 영역이니까요. 사회에서 아무리 인정받고 있더라도 누구나 아이가 태어나면 ‘초보 부모’가 되죠. 직장에서는 못 하는 게 없었는데 부모로서는 잘 하는 게 없는 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새로운 영역에 이제 들어선 거니까요. 능숙해지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죠. 부모로 성장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해요. 부모가 된다는 건 성숙하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에요.


아연: 부모가 낯설고 어렵다고만 생각했어요. 빨리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더 많이 노력했는데, 기존과 다른 방식이 필요했었네요. 궁금해요.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요?


그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게 출발점이에요. 부모의 삶은 출근과 퇴근이 있고, 정년이 있는 직장 생활과 다르죠. 근무 시간이 따로 있지도 않고, 평생을 그리고 죽어서도 부모에요. 그러니 천천히 같이 탐색해봐요.

 부모의 삶은 하루에 일정 시간 근무하고 주어진 역할에 따라 평가받는 있는 직장 생활과 달라요.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도구가 아닌 아이와 삶을 나누는 ‘존재’ 잖아요. 아이는 나를 역할로 평가하지 않아요. 나와 함께 하며 나를 바라보고 배우지요.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넘어 ‘부모인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경험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탐색과 노력이 필요해요. 역할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보게 될 때 진짜 어른으로도 성장할 수 있어요.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편에서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요즘 부모들의 속사정을 나눕니다.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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