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 퇴사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공유오피스 스텝에서 보험설계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되었다가 아닌 피동형이라고 쓴 이유는 아직 완벽한 완성형이 아닌 시작형인 까닭이다. 지인 영업이 아닌 박람회 영업팀으로 왔지만 영업은 영업. 엄연히 나와 고객과의 싸움이다. 이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에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하다. TV에서 봤던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영업 직선그래프 이곳에서도 봤다. 아마 곧 내 이름에도 직선 그래프가 올라가겠지. 지난 일요일 부산 숙소에서 새벽에는 에어리언을 닮은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 끙끙대는 걸 여동생이 들었다 한다. 휴 ~~ 내가 그렇게 기가 약한 사람이었나?... 다행히 그날 계약을 해서 망정이지. 평상시에 여동생이 잠을 못 잔다. 늘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산 이유가 그 영업 스트레스 그 긴장감 때문이구나 했다.
힘든 건 외부의 요인만은 아니었다. 설계사들이 보는 전산망에는 지점 내 각 설계사들의 실적이 다 공개가 되어 있다. 그래서 나의 실적과 타 설계사들의 실적을 자연히 비교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신입 1개월 차라 비교대상이 동기밖에 없지만 나의 불행은 동기가 잘한다는 거다. 박람회 첫날부터 동기는 긴장감 없이 고객에게 척척 다가가 호객을 하고 상담을 잘했었다. 나? 쭈뼛쭈뼛 주저주저였지.... 나의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라고 하지 않았나? 이곳의 생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서로 간에 계약이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를 늘 보고 있었다. 음..... 너무 잘해도 문제 못해도 문제....
베이비 페어를 나가는 나에게 어려움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임신부를 상대하는 일. 이전의 나의 생활에 임산부를 맞닥뜨릴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어린 임신부들... 그들과 대화하는 게 그리고 공감하는 게 나의 곤욕 중에 하나였다. 결혼을 안 한 게 아니 결혼생활을 모르는 게 나의 핸디캡이라는 게 이 직업을 선택한 거에 작용할 줄은 몰랐다. 결혼을 안 했으니 임신과 출산에 대해 무지했고 16주가 되어야 아기 성별이 나오고 태아보험이란 것도 이번 참에야 알았다. 그렇다. 나는 이전까지 작은 세계, 일과 회사 밖에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잘 웃지 않은 인상이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또한 깨달았다. 긴장돼서 아니 불편한 신발을 신어서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상황에 녹아들지 못한 거였다. 아마 몸은 거기 영업을 하고 있고 마음은 서울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얼굴에 웃음기가 없고 어둡고 집에 가고만 싶고 그랬을 것이다. 주변 선배 동료들이 나보고 많이 긴장한 거 같다며 어깨 펴고 웃으라고 조언을 해줬는데 아마 그런 내 마음이 보였나 보다. 내가 잘 안 웃은 사람이었나? 하긴 영업하겠다는 사람이 안 웃으면 안 되겠다 싶다.
이 일을 잘하려면 아이컨택을 잘하고 상담내용을 잘 숙지하라는 선배들의 말을 새겨들고 무엇보다 버티라는 말을 들었다. 이 직업에 뛰어들기 전부터 퇴로는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슬그머니 약한 생각, 마음이 드는 나를 다잡게 된다. 이러려고 고민고민하며 일을 관둔 것이 아니다. 휴일 집에 있으면서도 상담 내용을 복기하며 실제 고객을 만날을 때를 상상하며 상냥한 어조를 연습한다.
돌아오는 주에 또 출장과 박람회 일정이 잡혀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계속 외쳐본다!많은 선배들이 걸어왔고 여동생이 먼저 걸어온 길, 쉽진 않겠지만 해내야 한다. 하나하나 부딪히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두려움의 끝을 잡고 나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