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막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한줄기 햇살도 뜨겁고 무덥던 6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새벽 6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아우토반을 달려 나갔다.
다른 날 이었다면 자고 있었을 시간이었지만 피곤 하기는커녕 마음은 둥실둥실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곧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말이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 이던가?
자그마치 햇수로 1년, 날짜로는 10개월 만에 막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작년 아이를 공항에 데려다주던 그때는 이날이 언제 오려나 막막하기만 했다.
아들을 일 년이나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때로 체감할 사이 없이 빠르게 흘러 주기도 한다. 지금처럼.
막내 아들은 우리로 하면 고2가 되고 독일에서는 11학년이 되는 작년 여름에 캐나다로 떠났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였다.
오래전 큰아들도 딸내미도 각기 다른 기관을 통해 다녀왔다.
다른 곳 다른 학교 다른 시간이었지만 모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였고 덕분에
우리는 그 과정들을 두루 간접 경험 할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먼 곳으로 혼자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경험치 로도 미리 연습 되지 않았다.
아이마다 상황과 걱정거리는 달랐지만 그 무게는 늘 같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독일에서는 우리로 하면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 2학년에 해당 하는 김나지움 10학년 11학년때 다른나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물론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서다.
다른 나라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은 아이들은 먼저 경험해 보고 싶은 나라와
기간을 정하고 프로그램을 진행 시켜줄 곳을 찾는다.
기간은 짧게는 2주에서 3주, 길게는 3개월,6개월,1년으로 선택할 수 있고
주관하는 기관으로는 학교, 협회, 또는 유학원 같은 곳들을 들수 있겠다.
독일의 김나지움은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의 영어권 나라들 뿐만 아니라 제2외국어 선택 과목에 해당 되는 프랑스,스페인 등의 나라들과 자매 결연을 맺고 연결되어 있는 학교 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지금은 대학생인 딸내미는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그덕분에 남프랑스로 2주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프랑스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고 공부했던 프랑스 학생들이 독일로 먼저 2주 건너 왔다
우리 집에서 콜린이라는 프랑스 여학생이 2주 동안 지내며 학교도 같이 다니고 주말이면 놀러도 함께 다녔다.
그리고 딸아이를 포함한 독일 학교에서도 먼저 다녀간 아이의 프랑스 학교와 집으로 가서 2주 보내다 왔다.
한마디로 맞바꾸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공부했다 해도 의사소통이 원할했던 것은 아니다 주로 바디랭귀지가 공용어였다
또 2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학교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이 틀림 없다.
때문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학교가 아닌 협회나 유학원등의 기관을 통해서 가는 아이들도 많다.
가려는 나라와 도시 학교에 따라 그리고 주관하는 기관에 따라 비용과 준비과정이 달라질 수 있어
평균을 낼 수는 없지만 대략의 과정을 설명하면 이러하다.
우선 학교에서 진행되는 것보다 기간도 길고 수속, 체류 등에 필요한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협회나 유학원을 통해서 가는 것은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일 년 정확히는 10개월 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필요한 서류들도 많고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해서 이런 기관을 통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려면
최소한 일 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기관마다 아이들이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초대해서 준비 세미나도 연다.
준비 세미나 에서는 그동안 다녀온 아이들을 통해 실감나는 경험담을 전해 들을 수 있고
나라별로 문화와 사회적 시스템이 다르니 상황별로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 할수 있다.
그렇게 미리 준비들을 많이 시키지만 막상 아이들이 가는 날이 될 때까지
부모들의 마음 준비 까지는 다 되지 못한다.
그래서 공항에 배웅해 주고 돌아와 아이가 없는 빈방을 보면 비로소 교환학생을 보낸 것을 실감하게 된다
1년 만에 집에 오는 아들을 배웅 하는길
주말 이른 아침 길을 나선 덕에 아우토반은 뻥뻥 뚫려 있었다 마치 세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시시각각 어디선가 도착한 사람들과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이 교차되고
끊임없이 오가는 발걸음과 여행용 가방들의 바퀴 소리가 분주함을 실어 날랐다.
시간 맞춰 공항에 잘 왔구나 안도할 때 즈음 막내에게서 톡이 왔다.
잘 도착해서 가방 찾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가방을 찾고 나면 찾아 나올 출구를
향해 뛰듯이 걸으며 몸도 마음도 급해 졌다.
이제 드디어 만난다.
막내는 그동안 얼마나 더 컸을까?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을까? 그간 참았던 질문들과 설레임이 물밀듯 밀려왔다.
수시로 온라인상에서 화상 통화를 했지만 만져질 수 없는 공간에서의 만남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품에 안아 볼 수 있을 현실 에서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일 년 만에 돌아오는 막내를 마중 하기 위해 베를린에 살고 있는 딸내미도 합류했다.
딸이 솜씨 발휘한 환영 팻말을 한 장씩 나눠 들고 출구 쪽으로 다가가니 양쪽 출구 쪽에는 정성스레 한글자 한글자 써 내려간 손팻말부터 색색의 풍선들과 꽃다발 들을 안고
모인 부모, 형제 친구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요일 8시 10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한 비행기 안에는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수많은 학생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모습이 마치 목에 메달을 걸고 금휘환양하는 올림픽 선수단을 마중하기 위해 모인
환영 인파 같았다.
3개월에서 또는 6개월 아니면 우리처럼 10개월을 만나지 못했을 아이를 그리워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던 부모, 형제, 조부모, 친구들의 모습과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은 각각 달랐으나
충혈된 눈과 상기된 볼에 드리워진 그리움과 기다림은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열리고 닫히던 출구 문틈 사이로 교환학생 다녀온 것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 했다
동시다발로 터지는 환성 소리와 여기저기서 얼싸안고 뺨을 비비고 눈물을 흘리는 감동스런 진풍경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구 왼쪽에서 아이를 지금 막 만난 강단 있어 보이는 독일 아빠의 뺨에서 흘러 내리는 굵은 눈물 과 애써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참는듯 입가를 파르르 떨고 있던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덩달아 울컥 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들에게서 또 톡이 왔다.
가방이 없단다. 혹시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잘못 가져갔나? 했는데
그 비행기 승객 중의 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의 가방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말하기를 출발지에서 가방이 실리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곳으로 간것인지 아직 찾고 있다고 했단다.
아들은 집으로 오는 길에 공항 두곳을 거쳐서 왔다.요즘은 비행기가 다니는 구간도 많고 오가고 승객들도
많아 짐 또한 많을 테니 어쩌다 생길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날 새벽 3시에 공항에 가야 했던 아들은 이틀째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을 텐데 이 더운날
얼마나 피곤 하겠는가?
도착 했음에도 가방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어쳐구니 없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출입구 문이 열릴때 마다 이번인가? 하며 환영의 포스터를 높이 들고 두리번 거렸다.
아침에 마신것이 많아 또 화장실 가야 한다는 남편에게 애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잠깐 못참느냐며 핀잔을 주며
기다렸는데 말이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는 아들의 톡에 우리는 조금더 여유를 가져 보기로 했다.
일단 잘 도착 했고 곧 만나게 될것이니 그러면 되었지 않은가
원래 대로 라면 이른 아침 도착 하는 비행기라 프랑크푸르트에 왔어도 한국 식당은 가지
못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처 없이 기다리느라 시간이 흘러가 버려 덕분에 점심도 먹고 가게 생긴 거다.
때로는 상황을 바꿀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 스트레스 안받는 길이다. 라며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 할 때 였다
출입구 가운데 쪽에서 아이를 만나 얼싸 안고 울고 불고 하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 빙그레 웃으며
셀카를 찍는 유쾌한 엄마의 모습에 따라 웃고 있었다
그때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가방을 찾았다고 했다 나오지 않던 모든 가방은 다른 컨테이너에 실려 있었다고 했다.
이제 아들이 가방만 찾으면 만나게 된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 한지 세시간이 너머 드디어 환영 포스터를 높이 들고 아들을
만날수 있었다.
피곤해서 눈이 반쯤 감긴 아이를 품에 안고 나니 나즈막히 안도의 한숨이 뱉어 졌다
항공사의 제대로된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오늘 만은 통크게 용서해 주기로 한다.
3시간 기다린 덕분에 한국 식당을 갈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날짜로는 이틀 걸려 도착한 공항에서 마냥 기다리느라 절여진 파김치 같던 아이도
"냉면 먹으러 갈까?"한마디에 초롱초롱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일년을 지나 대륙을 건너온 아들을 다시 만났다.
35도가 넘어 가던 6월 마지막 주말 프랑크푸르트 공항 에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