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접시 Jun 16. 2021

자가 격리


요즘은 방에서 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씨발 진짜 방에서만 살고 있다.


자가 격리 통지를 받은 건 지난 3일 아침이었다. 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하숙집 이모님께 전화가 왔다. 월세 보냈는데? 하고 받아보니, 세상에나 내 앞 방 사는 사람이 코로나 확진이라는 것이었다.


이모님 말에 따르면 이른 아침에 앞 방 사람이 울면서 전화를 걸어와, 이모님.. (엉엉) 저 죽는 거 아니겠죠..? (엉엉) 부모님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엉엉) 라고 확진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평소 내가 아무리 인사를 건네도 받아주질 않던 사람이 엉엉 울면서 그랬다니 좀 상상이 안 됐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어쨌건 나는 이모님이 웃으며 전해주는 비극적 성대모사를 듣곤 따라 웃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따라 웃었다.


몇 분 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됐으니 절대 딴 데 들리지 말고 보건소나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나는 그 사람이랑 공용 화장실을 같이 쓴 것밖에 없는데 밀접 접촉자라고?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튼 전화를 끊고 서둘러 마감을 쳤다.


그날엔 비가 내렸다. 나는 신발장 옆에 꽂혀 있는 내 두 개의 우산 중 체크무늬 장우산을 쓰고 보건소로 향했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외부 진료소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티비에서 검사 장면을 봤을 땐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콧속에 면봉이 상당히 깊이 들어와 깜짝 놀랐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검사가 끝나고 자가 격리 용품이 든 묵직한 쇼핑백을 받았다. 


진료소에서 나와 비 오는 거리를 뚜벅뚜벅 걸었다. 돈 걱정이 됐다. 월세만 내면 아침 저녁이 공짜, 라는 일념으로 이제 대학생도 아닌 주제에 다시 하숙집에 기어들어왔다. 하지만 아마 격리 기간 동안엔 하숙집 밥을 얻어먹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보건소에선 배달시켜 먹든가 요리를 해 먹든가 하라고 했다. 아니 선생님 저는 돈도 없고 집에 조리 시설도 없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보건소에서도 돈 없는 하숙생까지 고려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배달이라.. 2주간 지출해야 할 식비를 대충 계산해보니 이거야 아득해졌다. 배달음식들 사이에 컵라면을 몇 개나 끼워 넣어야 할지 고민하며 집으로 향했다.


길을 걷다 본 한정식집 담벼락에 김영란법에 맞게 가격을 인하하였습니다, 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어쩌라고.. 그렇게 비싼 거 사 먹지도 못한다고.. 괜히 심술이 났다. 근데 이걸 간판으로 만들어 달 정도로 비싼 집인가? 그냥 평범한 백반집 같은데.. 근처에 동사무소가 있어서 그런가?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집에 돌아오니 소독 요원이 다녀갔는지 앞 방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방 주인은 생활 치료 센터, 라는 곳으로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신발장 옆에 놓여 있던 내 두 번째 우산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그놈이 들고 간 모양이었다. 이 자식은 인사는 안 받아주면서 우산은 잘도 가져가네. 방에 들어와 비에 젖은 양말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씨발.. 난데없이 처해진 상황에 욕이 절로 나왔다.


*


다행히 걱정했던 끼니 문제가 잘 해결됐다. 죄 없이 감금된 나를 가엾이 여긴 하숙집 이모님이 내 몫의 식사를 따로 챙겨주시기로 한 것이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반지하층 입구의 꼬마 냉장고 위에 놓여지기로 했다. 나는 아침, 저녁 시간에 맞춰 그 식사를 비대면으로 전달받아 냠냠 먹고는 다시 원래 위치에 갖다 두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보건소에서 10만원을 입금해줬다. 자가 격리자들에게 지급되는 식료품을 안 받는 조건이었다. 어차피 방에 조리 시설도 없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애초에 2주간의 자가 격리 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퇴사 후에 집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걸로 잘리거나 할 일은 없었고, 기본적으로 외부 활동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웬만해선 집에 머무는 타입이었으니까. 평소 나가는 경우라고는 머리 식힐 겸 산책을 한다거나 가게에서 뭘 사 오는 경우 정도였다. 요즘엔 딱히 불러내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니 사실상 이미 80퍼센트 정도는 격리 상태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경력직으로서 자신이 있었다.


자가 격리가 만만하게 보이자 뭐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꿉꿉한 날씨 때문인지 요즘 좀 나태해진 감이 있었는데, 이번 2주 격리 기간 동안을 구시대와의 분절점으로 만들어내보자고 작정한 것이다. 일도 더 늘리고, 홈트도 시작하고, 미라클 모닝에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습관이 형성되려면 2주간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마침 격리 기간도 딱 2주였다. 숫자가 알아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예감이 좋았다.


나는 책상에 앉아 하루하루 지켜나갈 계획표를 작성했다. 그 문서가 제시하는 청사진은 너무도 밝아 작성 도중에 형광등을 꺼야 할 정도였다. 계획표 작성을 마친 나는 곧바로 바닥에 엎어져 푸쉬업 100개를 (조금씩 끊어서) 해내버린 뒤 해당 항목에 완료 표시를 했다. 심장의 격렬한 두근거림이 간만에 근육들을 혹사시켜서인지 새 시대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리고 해당 문건은 3일 만에 폐기됐다.


*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거.. 이건 생각 외로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이틀이야 그냥그냥 버틸 만했다. 그러나 3일차부터는 정신적으로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절약과 가난이 다르듯이 그랬다. 매일 최소한의 생업을 꾸역꾸역 마치고 나면, 나는 냅다 무기력해져버렸다.


대학가 하숙집의 반지하 방 한 칸. 나는 내가 취향껏 가꿔놓은 이 방과 이 방에서 지내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3-4평의 햇빛도 잘 들지 않고 창밖으론 옆집 담벼락만 보이는 방에 며칠이고 고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좀 울적해져버렸다. 겨우 이 방 한 칸에 오밀조밀 채워져 있는 것들이 지금까지 내가 이뤄내온 전부라는 것과, 이 조그만 반지하 방이 현재 내가 가져낼 수 있는 최대의 영토라는 사실이, 평소보다 너무 자주 인식됐다. 이곳에 갇혀서는 도대체가 그런 생각을 외면해낼 방법이 없었다.


나는 우울감이 데려온 무기력증에 저항해보다 며칠이 지나선 그저 한껏 시달리게 됐다. 그것을 감각적인 자극 거리로 덮어대거나, 그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의식의 저편으로 도망치는 짓을 자주 저질러댔다. 무기력을 이겨내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 테다. 하지만 나의 나약한 의지는 나를 쉬운 길로만 이끌었다. 나는 그런 임시방편들에 하루하루 더 의지하게 됐고, 자꾸만 더 무기력해져갔다. 흡사 고약한 늪에 빠진 듯, 무기력의 심연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인내가 필요한 일들을 시작할 마음이 실종됐다. 가까스로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해내지 못했다.


핸드폰이 울리면 잠겨 있던 목을 풀고 옥타브를 높였다. 내 안부를 묻는 엄마 아빠에게, 아들 서울에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쾌활하게 말해내곤 전화를 끊었다. 대화를 마친 순간마다 방이 새삼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멍하니 천장과 벽의 접합부를 응시하고 있으면, 방도 나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방이 내게 말했다. 이 병신아 이게 잘 사는 거냐? 니 동기는 지난주에 결혼했다던데 너는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데? 나의 모든 생활을 온전히 지켜보고 있는 내 방. 저 멀리 익산에 있는 엄마 아빠한테는 나를 내 의도대로 꾸며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방에게만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격리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축 늘어져만 있는 시간들에 나의 나약한 의지를 실감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끼니도 챙겨 먹을 수 없는 처지에 무력감을 실감한다. 배달앱의 결제창까지 갔다 돌아 나와 컵라면을 개봉하며 나의 가난함을 실감한다. 며칠간 인스타로만 세상을 접하다 보니 내 처지를 더욱 비관하게 된다. 그곳엔 보여져도 되는 이야기들만 올라온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꾸 날것의 나와 인스타의 그들을 비교하게 돼버린다. 근데 서로의 날것끼리 비교한대도 뭐..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네.


답답한 마음에 앞 방 사람에게 욕을 해댄다. 그러다 그 사람도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냐는 생각에 되려 죄책감만 얻고 만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탓할 명확한 상대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 무기력과 우울감 그리고 기타 등등의 각종 개같은 기분들이 좁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방의 벽이 나를 조여온다. 답답한 실감에 금방이라도 펑 터져버릴 것만 같다. 얼마 전까지 이제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고 한시도 멈추지 않는 초침에 조급해하던 나는, 이젠 흡사 말년 병장마냥 시간이 그냥 빨리빨리 지나가버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거야 한심하다.


이 빌어먹을 자가 격리가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키보드 키보드 키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