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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Jan 25. 2022

아무것도 되어내지 못했다는 실감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목요일에 cgv 갈 거야.


오 뭐 보는데?


잔나비 콘서트.


콘서트? 요즘은 극장에서 콘서트도 해?


아니 콘서트 영상을 극장에서 틀어줘.


잘 갔다 와 재밌겠네.


같이 가야지.


어? 나?


응.


아니 나는


뭐.


어.. 너 잔나비 안 좋아하잖아?


좋아해.


아닌데..


좋아한다고.


어 그래..? 나도 좋아하긴 하는데 콘서트까지는


가야 돼.


아니 나는


가야 된다고.


콘서트는 혼자 봐야 재밌는데..


너 콘서트 안 가봤잖아.


그거 진짜 콘서트도 아니잖아..


갈 거야.


그니까 너 혼자 가도


안 돼.


나는 안 가면


- -^


그런 피치 못할 사연으로, 목요일 오후, 나는 왕십리 cgv 상영관에 앉아 있게 됐다. 콘서트 영상이면 막 응원 푯말도 만들어 오고 굿즈도 팔고 그러려나 했는데, 생각 외로 상영관의 분위기는 굉장히 차분했다. 평일의 이른 오후라 그런지 관객도 몇 명 없었다. 나는 그래도 콘서트라고 하니 좀 들떴었는지, 보통 영화 상영관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럴 거면 왜 극장씩이나 와서 콘서트 영상을 보는 건가 싶었다.


상영관이 암전 되고 콘서트 실황 영상이 시작됐다. 콘서트장 무대 위로 팀복을 맞춰 입은 잔나비가 등장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그 함성을 영화관에서 온몸으로 들으니, 이거야 어디선가 불화살과 포탄이라도 날아들 듯했다. 이래서 이걸 극장에서 보는구나 싶었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콘서트 영상을 감상했다. 그 결과, 잔나비는 참 멋있었다. 


홈그라운드에서의 가수(밴드), 라는 게 다 그런 식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잔나비가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객들을 일제히 미쳐버리게 만드는 광경은.. 나로서는 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졌다. 잔나비는 관객들을 열광케 하기로 작정한 듯 나와 무대를 펼쳤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들에게 열광키로 작정한 듯 미친 호응으로 답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떤 가수(밴드)의 콘서트라는 건 부흥회를 말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상 잔나비교의 부흥회와 다름없었다.


잔나비가 노래했다.


누가 내 가슴에다 불을 질렀나!


관중들이 외쳤다.


(잔나비!)


누가 내 가슴에다 못을 박았나!


(잔나비!)


그대의 눈빛은 날 얼어붙게 해~ 그대여 나에게도 믿음을 주오~ 


오오 베베 아 니~ 쥬!

(오오 베베 아 니~쥬!)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거야 얼른 헌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티비에서 흔히 보던 무대 영상과는 달리, 콘서트 영상에선 관객들의 모습이 자주 비춰졌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장을 빽빽이 채운 관객들을 풀샷으로 잡아줄 때가 압권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 서 있는 밴드가 실시간으로 빚어내는 음악에 맞춰, 그들은 다 같이 뛰고 다 같이 팔을 뻗고 다 같이 코러스를 넣었다. 그런 모습이 비칠 때면 왠지 내가 다 벅차올랐다. 그게 무대 위의 밴드가 목격하고 있을 광경일 테니까. 자신을 보러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그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에, 노래에, 멘트에, 그리고 손짓 발짓에 실시간으로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 시선을 잠깐잠깐 빌려 보고 있는 내가 다 벅찰 정도인데, 실제 무대 위의 잔나비는 정말이지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눈과 귀가 즐거운 무대들이 이어졌다. 나는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과 실감 나는 사운드에 힘입어 영상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면, 문득 다리가 저려왔다는 것이었다. 움직임이 제한된 좌석에 앉아 있다 보면 종종 이랬다. 영상과 사운드에 열심히 속아내 콘서트장 한복판에 위치해야 하는 나로서는, 나를 자꾸 현실로 잡아당겨대는 그 감각들이 상당히 성가셨다. 나는 몸을 기우뚱 구겨 비어 있는 옆 자리 쪽으로 다리를 쭉 펴냈다. 그러니 좀 나았지만, 대신 체중을 홀로 지탱하게 된 한쪽 엉덩이가 아파왔다. 이거야 등가교환이로군. 그 상태로 몇 가지 곡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간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고 있던 중, 마침내 한계치를 넘어선 한쪽 엉덩이의 아틀라스적 고통이 콘서트장에 있던 나를 현실로 쑥 끌어내렸다. 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선, 어느새 감각조차 사라진 엉덩이를 매만지며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로 다리가 저려왔다. 나는 진퇴양난에 빠진 내 하반신을 가만히 노려봤다. 영화관까지 왔으면 현실은 좀 잊게 놔둬달라고.. 허리를 굽혀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상영관엔 내가 한때 즐겨 듣던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여전히 종아리를 주무르며, 거북이마냥 고개를 살짝 들어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콘서트장을 호령하는 잔나비가 보였다. 그들의 존재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보였다. 그리고 아직 수습되지 못한 집중력의 틈 사이로, 나는 불현듯, 나는 아무것도 되어내지 못했음을 실감했다.


나는 종종 이런 실감을 마주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계속 내 뒤를 밟아왔다. 평소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주위를 자세히 살피면 그것은 늘 어느 풍경에 섞여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타인의 성취에 대한 감탄과 나의 집중력이 박살 나는 순간이 겹쳐질 때면, 그것은 불현듯 전면에 등장해 소란을 피워댔다. 내겐 그 소란을 수습해낼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제풀에 지쳐 스스로 잠잠해질 때까지 그저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도, 혼자 길을 걷다가도, 좋아하는 작품을 보다가도, 눈앞의 상황에서 홀로 멀어져 자괴적인 생각들을 해댔다. 다들 잘 사나 보네. 나만 이따윈가 봐. 그동안 난 뭘 했지. 죽을까.


그러니까, 그럴 때가 있었다. 정말 멋진 무언가에 더 이상 몰입해내지 못하게 돼버릴 때. 그 작품이 후져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후져서. 저 대단한 사람에 비해 나는 좆도 아니라서. 그리고, 감탄보다 부러움이 더 커져버려서.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과 실감 나는 음향도 이제 더 이상 나를 콘서트장 한복판으로 데려다주지 못했다. 나는 드럼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옷가지들을 바라보듯,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귀 기울여 듣던 음악과 현장음이 그저 공사장 소음처럼 들려왔다. 러닝 타임은 아직 한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다. 이제부턴 즐기기보다는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스크린 속에선 여전히 잔나비의 멋진 무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념들이 떠다녔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도 빨리 뭔가 그럴듯한 게 되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장 시급한 일들이 많은데.. 요컨대, 나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집에서 정체 모를 성공을 위해 뭔가를 미친 듯이 해대야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집에 있었다면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진작에 뭔가가 되어 있었어야 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영화관에 끌려오지 않았다면 할 수 있었을 이런저런 일들을 자꾸만 떠올려댔다. 마치 후회가 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감탄은 부러움이 되었고 부러움은 다시 자괴감으로 변했다. 좀 전까지 나를 홀리던 무대 위의 밴드는 이제 나를 울리기 직전이었다. 저들은 그동안 관객들에게 얼마나 멋진 걸 줘왔던 걸까. 그건 얼마나 멋졌길래 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콘서트를 기다리고, 찾아오고, 저렇게나 열광할까. 저 무대 위에 서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견뎌냈을까.


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게 되어낼 만큼 무언가에 열심히였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책상에서 하던 일을 침대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매번 속아내 지긋지긋하게 코를 골아댔다. 클릭이나 터치 몇 번으로 투여하는 간편한 자극에 하루를 몽땅 날려먹은 적도 벌써 수십 번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따위였던 주제에 이렇게 징징대고 있는 것도 웃겼다. 나의 초라함은 모두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과연 나는 내가 만족할 만한 뭔가가 되어낼 수 있을까. 세워놓은 계획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나름대로 하고는 있는데.. 성과는 마음만큼 안 나오고.. 그 와중에 나이는 먹어가고..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말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지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아간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의 세상은 자주 무너져 내린다.


전에도 비슷했지만, 이제 확실히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불리해져만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 앉아 시간을 펑펑 써버리고만 있었다. 이거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영상에 집중해내보려 애썼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어주지 않았다. 나는 스크린 속 관객들처럼 무대 위의 밴드에 열광하지도, 옆 자리의 친구처럼 콘서트 영상을 즐기지도 못했다. 그런 것도 해내지 못할 정도로 어느새 나는 너무 후져져버렸다. 남의 성취를 보고 우울해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작전명 청춘, 이었다. 노래가 상영관 가득 승전고처럼 울려 퍼졌다. 그들의 작전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상영관에 불이 켜졌다. 나는 도망치듯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패잔병이 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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