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보트를 빌려 스노클링을 하러 간다. 항구에 있던 여행사 직원과 처남이 이야기하더니 한국 돈 8만 원 언저리에 반나절을 빌렸다. 고프로를 들고 촬영해 주는 잠수부 가이드와 보트를 운전해 주는 선장의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보트를 타고 출렁이는 바다로 나가는 건 밀짚모자 해적단이 된 듯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얼마쯤 가자 선장님이 보트를 멈추고 가이드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우리도 하나 둘 뛰어 바닷속을 구경했다. 해변에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더 크고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다시 보트에 올라 사람이 많은 포인트에 내려줬다. 그곳에는 어느 리조트에서 던져놨다는 동상이 물속에 잠겨있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보통의 인스타그램 명소 같으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겠지만 다들 물에 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정신은 없었다.
어릴 땐 바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아도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은데 이제는 두어 시간 놀면 ‘잘 놀았다’ 생각이 든다. 수영장에서 한 시간씩 2km를 수영하며 체력을 길렀지만, 바다는 다르다. 수영장에는 너무 힘들 때 발을 디디거나 붙잡을 데가 있다는 게 주는 안정감이 있다. 바다에선 오리발도 끼고 설렁설렁 다녔지만 파도 속에서 두어 시간 놀고 나니 힘이 부친다. 가이드가 이제 보트에 오르자고 했을 때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이 날 나는 뼈저리게 후회할 실수를 했는데, 보트에 올라서야 알았다. 그건 선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은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느라 손 닿는 부분만 바르고 당신에게 부탁할 정신이 없었다. 등이 좀 탄 게 대수겠냐고 생각했는데 결국 앞으로의 일정을 망치고 만다.
다시 항구에 다다라서 가이드에게 영상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온 우리는 당연히 고프로로 촬영한 영상은 추가금을 내고 구매해야겠거니 생각했다. 처남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상도 8만 원 언저리였던 요금에 포함이었단다. 당신과 나는 여기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다. 고프로 촬영분만 10만 원은 지불하고 받았던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의 기억들이 스쳐갔다.
마사지 샵에도 그렇고 우붓 시장 상인들도 그렇고, 식당에도 카페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 식사를 했던 식당은 식사를 하는 손님보다 일하는 직원이 더 많았다.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따로 인력이 필요 없어 보이는 평범한 편의점 주차장인데도 주차요원이 주차정리를 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길거리에는 하염없이, 또 할 일 없이 그냥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캐나다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직인 주제에 저렴한 가격에 과분한 서비스를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내가 지불하는 금액이 그들의 뜨거운 노동의 대가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다가도, 인도네시아의 물가 기준에는 충분한가, 내가 오버하는 건가, 생각하다가. 산 밑에서 파는 1000원짜리 생수가 중턱에서 2000원이고 정상에서 3000원이고 자기 위치에 따라 가치가 바뀌네 어쩌네 하는 자기 계발서 같은 얘기도 생각하다가. 어차피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생산기반을 소유했다거나, 운이 좋아서, 여러 이유로 더 쉬운 노동으로 더 큰 대가를 받는 사람들은 널려있었지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뜨거운 날씨에 불 앞에서 “사떼”를 굽는 사람을 보며 알 수 없는 거대한 무력감 같은 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