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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선생 Jul 27. 2017

정신은 언제 차리나

#004



 네 번째 글을 쓰려는 지금에야 밝히지만 첫 번째 글을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사회심리학적 실험을 한 것도, 한 명 한 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지도 않은 고작 지난 10년 동안 천 수백 명의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다.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첫째를 키운 경험으로 둘째를 키우고, 가끔 만나는 주위 몇 명의 엄마들의 선험에 의지한 불확실한 방법으로 아이를 키운다. 그러면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천건이 넘는 사례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은 많은  학부모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통계학적, 사회심리학적"인 가치는 어차피 없는 글이니 가볍게 읽고, 공감하는 것만 기억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정신 차리다.


 "정신 차렸다."


  손 놓았던 공부를 갑자기 하는 모습에 우리는 이런 말을 쓴다. 공부를 안 하면 그냥 "정신 못 차"것이다. 공부를 좀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아주 무거운 말을 쓰고 있는데, 자식 교육이 인생의 전부였던 지금의 70~80대 이상에겐 이 정도 표현은 양호한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이런 상황을 잘 묘사하면서 입에 착 붙는 다른 현은 또 마땅히 없는 것 같다.

<출처: 네이버 사전>

 "고등학교 가더니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더라."

 이런 말은 주위에서 비교적 빈번하게 들을 수 있지만,

 "중3 되더니 정신 차리더라.",

 "중1 되더니 달라지던데."

 이런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없지는 않지만, 10년간 지켜본 아이들 중에서도 중1, 중3의 시기에 갑자기 열심히 하기 시작한 아이는 정말 정말 드물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중1은 초6, 중3은 중2에 가깝다.


 중3이 되면 조금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1년밖에 남지 않았고, 중1, 2 시기를 대충대충 보냈으면 충분히 놀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상상이었을 뿐 아이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도달한 현재까지의 결론은, 중1은 초6에 가깝고, 중3은 중2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수년 전,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등수학에 대한 선행수업을 일 년이 넘게 진행한 적이 있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권한 것이 아니라 선행을 안 해서  걱정인 엄마들의 요청이 더 많았었다. 수강을 신청한 명단을 보니 수업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제 중3이니 좀 더 열심히 하겠지.'라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기대를 품고 시작했었다. 1월 개강 당시 6~7명이 있었는데, 3월이 되어 학기가 시작되니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4명이 포기했다. 수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수업이 늘어난 만큼 집에서의 학습시간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공부를 더 안 하는 거였다. 나머지 3명은 2월 졸업할 때까지 수업을 계속했는데 그중 2명은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수강을 했었고, 나는 나머지 1명을 보고 수업을 했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는데 그 1명은 서울로 진학했고 그 외 아이들은 비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재수를 했다.

수업을 마칠 때 즈음 얻은 결론은 2가지였다.

중3도 '정신 차리지' 못 한다는 것.

선행학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카멜레온


 아이들은 카멜레온 같다. 주변 환경이 바뀌어야 그 환경에 맞춰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환경이 변하지 않는 중2~중3 기간은 학년이 올라간다고 해서 아이들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 신체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지기를 바라겠지만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럼, 중1은 환경이 바뀌었는데 왜 안 달라지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중1은 그냥 초등학생이다. 초등생 티를 벗는데만 1년이 걸린다. 그러고 나면 바로 중2, 중3이다. 바뀔 틈도 없다.

 수학을 잘했던 중3 남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모의고사 2등급 정도의 성적은 충분히 나올법한 아이였는데 집에서는 갑자기 기숙사가 있는 마이스터고를 선택했고 그렇게 진학시켰다. 동생이 우리 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어서 진학 후 근황도 어머니를 통해서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가끔 집에 오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서 중3 때와는 달리 너무 어른스러워진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고3 때까지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공부인데, 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되면 스스로 도서관에 자리 잡으러 일찍 집을 나서지 않던가. 희한하다. 또, 정장 입고 젠틀하게 수업하던 교수님들도 예비군 훈련 가면 앞섶 풀어헤치고 전투화 질질 끌면서 돌아다니더라.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다시 '정신 차리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중학생은 애석하게도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 봐야 소용없다. 애타는 쪽은 결국 엄마일 뿐, 공부 때문에 지지고 볶을수록 아이들은 공부에서 멀어지며 부모와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또,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 교복으로 갈아입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만 커진다. 오히려 공부로 스트레스 주는 것을 삼가고, 나쁜 방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잘 주시하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많이 칭찬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전 글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에서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한데 난 이 전략을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라 한다.

 형제가 모두 서울대에 합격한 두 집이 있다. 그 4명 중 3명은 중학생 때부터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느 날 중3이었던 한 학생에게 전교 석차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평소 너무 조용한 성격이라 말을 걸기가 참 어려운 아이였는데,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주는데 두 자리에 가까운 세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어본 게 너무 미안했었다. 수학에 월등한 재능이 있었던 그 아이는 중1 때부터 원했던 전공에 합격하여 잘 다니고 있다. 이 3명은 이상하게도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훨씬 좋은 성적을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보다 전교생 인원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입학 초기부터 최상위권을 찍었고 그 성적은 고3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 아이들 간에 공통점이 몇 개 있는데, 첫째는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집에서의 공부 스트레스가 적었다는 것이다. 또, 일찍 선행을 한 것도 아니라서 6학년에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거나 그런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이 경우 외에도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뀐 사례는 고등학생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성적대가 더 낮았던 아이들이 정신 차린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두꺼비의 마음


 일단 '중학생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을 가지자. 그래야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고등학생이 되면 정신 차리겠지'라는 기대도 크게 지는 말자.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지, 교복 갈아입는다고 모두 바뀌는 건 아니다. 밑 빠진 독의 물은 두꺼비가 막아줘야 해결되는 것 아닌가. 두꺼비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지켜보자. 그리고 열심히 응원하자. 입 밖으로 하는 말은 잘한 일이 있을 때만 하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일방적으로 야단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풀어보자.


 어른들은 그 시절을 겪어봐서 다 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다 안다. 공부를 누가 하란다고 했었나. 그냥 하거나, 그냥 하지 않는 것일 뿐. 다 알면서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 모순이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어른에게 운동과 같다.

 

 해야 하는 걸 알지만 하기가 귀찮고,

 잔소리를 들을수록 하기 싫어지며,

 그 맛을 알면 시키지 않아도 한다.


언제 정신 차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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