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선생 Mar 17. 2018

선행학습이 실력이 아닌 이유.

#012



 정석을 다 보면 중학 수학은 쭈욱 뚫릴 거라고요....


 수년 전 어느 해, 중1 학생의 어머니께서 아이가 한 말이라고 하셨다. 그 학생은 중3 과정까지 다 배웠지만 중1 수학의 일반적인 문제를 절반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계속 진도만 나가길 원했다. 그리고, 한 손에는 그 유명한 "수학의 정석"이 들려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유명 자율형 사립고에서 주최한 캠프를 보냈었는데, 강남에서 온 6학년 학생들이 다들 "수학의 정석"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고집으로 결국 자기 학년의 과정(이하, "현행 과정")을 충실히 다지는 수업을 수강하지는 않았다. 벌써 군대에 갔을 나이인데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용어 정리]

선행학습 :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이 아닌 다음 학기 이상의 과정을 미리 학습하는 것.

현행학습 :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과정을 학습하는 것.


실력의 실체


 실력이 서로 다른 중학교 2학년 학생 A, B, C가 있다. A는 기말고사에서 100점을 받았고 선행학습은 한 학기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B는 90점을 받았고 선행학습을 2년 앞서 하고 있으며, C는 80점을 받았고 1년 정도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 이 세명이 현재의 학습태도와 학습량을 유지한 상태로 1년을 공부했을 때 실력이 역전될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A는 선행학습이 다른 두 학생에 비해 느리다는 이유로 과연 성적이 떨어지겠는가? B와 C는 선행학습이 앞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 A보다 더 좋은 실력을 가지게 될 것인가?


  난 "아니다."에 손목을 걸겠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의 경험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B는 A가 맞힌 두 문제를 못 맞혔고, C는 서너 문제를 못 맞혔다. 이것이 실력의 차이다.


 실력은 깊이를 말하는 것이지, 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차함수의 쉬운 문제를 좀 풀어봤다고 일차함수의 어려운 문제가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미적분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해서 어려운 이차함수 문제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차함수를 잘 모르면 이차함수는 더 모르는 게 현실이다.


 수학에서 실력은 결국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어려운 문제.


 실력의 실체를 알았으니 이제 진짜 실력을 만들어보자.


 어려운 문제는 "일품", "최상위수학", "블랙라벨" 등의 책 이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풀어내지 못한 문제."라고 나는 정의한다. 이렇게 정의해야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에 접근할 수 있다. 소위 심화 문제라고 하는 어려운 책에 수록된 문제를 풀어야만 실력이 오른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 아래 수준의 문제까지는 대충 풀어본 상태로 심화 문제를 붙잡고 있다고 해서 실력이 빨리 오르는 것이 아니다. 힘들기만 하고, 실력은 잘 안 오르고, 태도만 나빠질 수도 있다. 급기야 지쳐서 수학을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쉽다고 말하는 문제조차도 만약 틀린다면, 바로 그 문제가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제이고 집중해서 할 대상이다. 어려운 문제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할 수 있으면 공부의 방향 역시 쉽게 잡을 수 있다. "쉬운 문제부터 틀리는 문제에 집중한다."


풀어 본 문제를 틀린다.


 수학 실력을 쌓는데 문제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정확하게 아는지/모르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제집은 아주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무작정 풀어대기 전에 문제를 "왜" 푸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실력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하면 하수이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중수라 할 수 있고, "모르는 문제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고수이다.

 

 "한 권을 세 번 푸는 것이 세 권을 한 번 푸는 것보다 낫다."라는 수학계 명언이 있다. "모르는 문제를 찾아내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전자는 찾아낸 모르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모르는 문제를 찾는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므로 왜 한 권을 세 번 푸는 것이 낫다고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에서 틀리는 문제는 "처음 본 문제"가 아니라 "풀어 봤었던 문제"이다. 그것도 한 두 문제 푼 것도 아닌데 반복적으로 틀린다. 이유는 푸는 목적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푸는 행위에 집중하고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그 마저도 하지 않거나. 결국, 대충 풀어 본 까다로운 문제는 계속 틀릴 수밖에 없다.


한 번 만 틀리자.


  예습과 복습 중에서 예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예습으로 수업시간의 이해도를 끌어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풀어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복습이 더 필요하다. 이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 기억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만 고려해도 복습은 예습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실력에 맞는 수준의 문제를 풀었다면 마무리는 어떻게 복습하느냐에 달려있다. 전교 1등의 비밀은 책꽂이에 꽂힌 책이나 다니는 학원이 아니라 그 태도에 있다. 그 태도의 핵심이 바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틀렸던 문제에 대한 완벽한 "복습"으로 고스란히 채워진다. 그 노력의 결과로 한 번 틀린 문제는 다시 틀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행은 실력이 아니다.


 쉬운 문제로 먼저 진도를 쭈욱 나가는 것과 차근차근 다지면서 진도를 나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맞다/틀리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의 수학적 능력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더 안전하고(?) 정확하게 수학 실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도를 쭉쭉 나가는 것은 충분한 실력이 먼저 갖추어진 후에 필요에 따라 하면 될 일이다.


 수학을 아주 잘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 실력이 선행학습에서 비롯된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을 선행학습에 뛰어들게 한다.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 상황이다. 진실은 실력이 충분해서 선행학습을 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말이다.


 실력은 틀렸던 문제를 혼자의 힘으로 풀어낼 때 생기는 것이지, 술술 풀리는 쉬운 문제를 많이 풀어봤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구독, 공유, 라이킷은 작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팩트 폭격] 성적은 무조건 올라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