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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Jan 23. 2021

96세 멋쟁이 할머니를 만나다

2017년 7월의 일기. 콩짜개덩굴

숲에서 만난 사람들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새롭게 대해야 한다. 내가 숲에서 일하며 가장 싫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숲에서 일하는 좋은 점 또한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새롭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여전히 소녀처럼 손을 잡고 까르르 거리며 환갑 기념이라고 했던 여고 동창생 할머님들이 있는가 하면, 겉싸개에 돌돌 말린 채 엄마 품에 안긴 채 곤히 자는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아가 손님도 있다. 안내하는 말끝마다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다는 아저씨들이 있는가 하면, 인상적인 숲 해설이었다며 사진과 글을 정성스럽게 적어 보내주는 손님도 있다.



  내가 안내했던 손님 중 가장 고령의 어르신은 96세 할머님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깨끗한 물을 묻혀 참빗으로 곱게 빗은 듯 정갈하고 묶은 머리는 검은빛이 전혀 없는 은발이었다. 손이나 얼굴의 잔주름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양옆 손자들의 부축에 손사래를 칠 만큼 걸음걸이만큼은 정정하셨다.



  다행히 그 시간대에 다른 일행도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다. 덕분에 천천히 느긋하게 숲을 둘러보는 시간이 되었다. 중간쯤 돌았을 때 옆에 꺾여있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시던 70대 할머님이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으시며 당신께서는 그냥 여기까지만 가시겠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96세 할머님께서 나직한 목소리로 농담을 던지신다.


 “야! 내가 니 나이면 시집을 한 번 더 갔겠다.”


 다 함께 깔깔 웃었고, 70대 할머님 또한 나머지 길을 가뿐하게 걸으셨다. 그렇게 오늘도 숲에서 만난 손님을 통해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일주일 차이도 어쩜 이렇게 다른지 모른다. 8개월의 아이를 데리고 12개월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형아네~’하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70대도 할머니, 80대도 할머니, 90대도 할머니, 20년의 차이가 덤덤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서른 살이 되니 이제 젊음이 꺾였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50대를 보며 젊은 친구들이라고 지칭한다. 96세 할머니 앞에서는 누구든 청춘이 되었고 96세 어머니 앞에서는 누구든 어린 자식이 되었다.



  8년 전 예산에 출장을 갔다가 1000년 된 보호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그 날 적은 일기를 찾아보았다.



 “아홉 명이 팔을 한꺼번에 휘감아야 그 묵직한 둘레를 가늠할 수 있지, 아홉 명이 살아갈 일생을 더한 것처럼 천년을 살아왔다는 그 나무. 한 곳에서 지켜보았던 그 천년은 얼마나 지루하면서도 오묘할까? 스물넷, 그 조그만 것이 앞에서 알짱대 본다 “
  


숲에서 만난 생명 – 마른장마에 만난 콩 짜개 덩굴
  
  방문한 손님들께 환상숲 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을 물으면 숲을 빼곡히 덮고 있는 콩짜개덩굴을 첫 번째로 꼽는다. 마치 콩이 짜개진 것처럼 생긴 초록색 동글동글한 이 녀석은 겨울이나 가뭄에는 바싹 잎을 줄여 납작하고 쪼글쪼글하게 말라있다가도, 비가 한번 쏟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콩나물 머리만큼 통통하게 올라온다.

  그래서 유독 장마철에는 더욱 진초록으로 숲의 생기를 더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마철 비 온 후 아침에는 뿌옇게 올라오는 물안개만 보아도 콩짜개덩굴의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몇 달 전 서울의 양재 꽃시장을 구경하던 중 콩짜개덩굴 앞에서 한 판에 16,000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기분이 묘했던 적이 있다. 늘 자연에 펼쳐져있는 모습의 생기 넘치는 콩짜개덩굴을 보다가, 모판에 식재되어 있는 사람들 틈에 덩그러니 놓인 자연을 보자니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더군다나 숫자가 매겨지고 돈으로 팔리니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꽃집에서 팔리는 장미나 다육식물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늘 숲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녀석들을 보니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던 소를 축사에 가둬놓고 키우는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제주도나 남쪽 따뜻한 해변 혹은 깊은 숲 속 음지의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어서 있어야 할 식물을 서울에서 마주 대한다. 자연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일은 대부분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요즘 날씨가 심상치 않다. 갈수록 더워지는 게 몸으로도 느껴진다. 비가 쏟아져 내려야 할 때는 감감무소식이고, 오지 말아야 할 곳에는 과하게 쏟아지기도 한다. 동쪽은 폭우주의보가 내린다는데 제주 서쪽인 이곳은 분명 장마철인데도 콩짜개덩굴이 쪼글쪼글하게 말라있다. 자연이 있어야 할 곳을 잃어가며 지구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끗한 제주, 손대지 않는 자연에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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