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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Jan 23. 2021

놀라워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2016년 10월의 일기. 작살나무


숲에서 만난 사람들 : 새로 온 숲해설가 언니에게 배우다


  “나뭇잎 사이로 하늘 한 번 봐보세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숲이 반짝인다는 게 느껴지세요?”


  어찌 된 일인지 숲을 보러 온 이보다 안내하는 이가 발까지 동동 구르며 더욱 들떠있다. 마치 이곳에 처음 온 냥 두 손 꼭 모으고 감탄하며 숲에 들어가는 숲해설가를 보고, 손님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 숲해설가 언니의 이야기다. 올여름은 유난히 후텁지근하고 길었다. 물론 여름 숲도 아름답지만 땀을 줄줄 흘리며 해설을 하다 맞이하는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은 가을 숲의 매력을 한껏 높인다.


 곶자왈에서의 가을을 처음 맞이하는 언니는 어제와는 또 다른 장소를 거니는 느낌이라며 하루 종일 호들갑을 떨었다.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숲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별거 아닌 것에도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는 척, 배운 척, 잘난 척하다 보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능력 말이다.



 제주에 살고 있어도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여름철 하늘 쨍한 날에 펼쳐지는 파란 해수욕장의 멋진 풍광을 내려다볼 때, 그리고 가을 억새가 펼쳐져 있는 오름과 들판을 발견할 때서야 비로소 제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일상이 되어버리면 못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에게 숲 또한 그런 것 같다. 매일 마주하고, 매일 똑같은 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숲 풍경에 감탄하는 일 또한 줄어든다.


 10월, 나는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다.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뒤뚱거리는 몸이 되었기에 가족들로부터 숲 속 산책 금지령이 떨어졌다. 들어가지 말라하니 비로소 언제부터인가 이유 없이는 숲에 들어가지 않았던 내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 산책하며 새소리를 흉내 내 본 게 언제였을까. 익숙해지면 소홀해지듯이 숲을 그렇게 대한 것에 반성중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숲에서 처음 어린이집 꼬마 손님들을 대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땅을 걷기에 걸음이 서툴렀고, 나 또한 다섯 살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줄 모르던 초보 안내자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빨간 낙엽이 떨어져 있지요?”식의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해도 “우와~”하고 반응해주고, “나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답니다.”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짜요?”하고 되묻는 형태가 반복되니 나도 한껏 신이 났다.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모든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고 감탄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나 또한 마법의 숲에 들어온 듯 착각하게 되었던 하루였다.


  그들은 진짜 살아있는 나무들을 만나고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 식물심기 활동에서 한 꼬마 아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고 싶었는지 가방에서 알록달록 초콜릿 과자를 꺼내어 화분에 깔아주기까지 했다.


  딱 다섯 살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숲에서 만난 생명 – 보라색 열매가 예쁜 작살나무


 좀작살나무는 내가 곶자왈 숲에 홀로 들어간 날 처음으로 만났던 놀라운 식물 1호이다. 마치 누군가 색칠해 놓은 듯한 어여쁜 보라색 열매에 한참을 바라보았고, 그 열매를 시작으로 숲 속에서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등 색 찾기 놀이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의 가지가 나란하게 마주나 있어 그 모습이 마치 고기잡이용 작살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작살나무란다. 곱고 화려한 색을 지녀 성격이 새초롬할 줄 알았는데 눈 내리는 겨울에도 열매를 떨구지 않는 강직함을 지니고 있고, 양지나 음지, 도심지든 바닷가 주변이든 환경 적응력이 무척 강한 녀석이었다.



  그때 나는 희귀한 식물을 발견한 것만 같아서 사진을 잔뜩 찍고 내려와서 아버지께 보여주었는데 무척 흔한 식물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한 번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원수로도, 꽃꽂이 장식으로도, 다른 숲에서도 작살나무가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부끄럽게도 집 문 바로 앞에도 떡하니 한 그루가 심겨 있었다. 늘 주변에 있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가 보이면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김춘수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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