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이지영 Mar 03. 2021

아주 특별한 남자 둘

2017년 12월. 소엽맥문동

숲에서 만난 사람들 :


  5년 전 그 손님은 일 때문에 제주에 왔다가 아내의 권유로 홀로 숲을 방문하셨단다. 숲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내에게 보내줘야 한다며 인증 샷을 찍으셨다. 당신의 아내께서 ‘제주 숲 그 아가씨’로 우리 가족의 숲 이야기를 다루었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큰 감명을 받았단다. 계절이 바뀐 후에 가족여행으로 환상숲을 다시 찾아주셨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들 수업 차 밖에 나가 있어서 다시 재회하지 못했다. 대신 장문의 이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만이 미래가 담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큰 역할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받은 메일의 내용 중 일부이다.  


  숲 입구에 놓여있는 명함에는 떡하니 내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다. 그럼에도 전화나 문자는 결례가 될 것 같았다며 메일로 한 자 한 자 고심하며 감사와 희망의 말을 담아주신 정중한 손님이셨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은 숲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은 후 밑줄과 메모를 남기셔서 선물해주신다. 여전히 나의 왕팬이자 우리 숲의 단골손님이다. 그리고 그 손님은 나의 3년 차 시아버지시다.


  그 처음을 떠올리다 보니 내 인생에 빠트릴 수 없는 또 다른 숲 손님, 지금은 저 방에 얄밉게 누워있는 남편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숲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숲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결혼식 때 A4용지에 출력해서 하나하나 접어서 만들었던 청첩장의 내용을 조금 담아본다.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진 세상입니다. 화려하고,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저희는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남들은 결혼식 준비를 위해 피부마사지를 받지만 저희는 꽃을 심고, 돌을 나르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하고, 서툴고, 불완전할 테지만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부터 끝날 때까지를 모두 함께 한다는 것이 보다 의미 있지 않을까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뒤로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를 선택해 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닮은 사람을 연인으로 만난다는 것, 외아들을 타지에 보내시면서도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주시는 멋진 아버지 어머니를 얻게 된 것. 작은 것에서부터 큰일까지 저는 감사한 것 투성이입니다.
  
  어머님의 TV 시청과 아버님의 숲 방문, 저희의 시작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며느리 삼고 싶다는 으레 하는 인사가 ‘축복’이라는 단어를 만났고, 그렇게 저희 둘은 서로의 반쪽이 예비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만남과 누가 봐도 지속하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서울과 부산, 경주, 제주를 오가며 쉬기에도 짧은 그 귀중한 주말 시간에 오고 가는 길에서만 8시간을 쏟으며 인연을 노력으로 이어왔습니다. 이제 노력이 결실로 피어나고자 합니다. 숲이 만들어준 인연을 감사하게 여기고 소중히 생각하며 세상의 모든 생명과 공존하는 따뜻하고 겸손한 삶을 살겠습니다. “


 너무 가깝고 익숙해졌기에 더욱 함부로 했던 내 모습을 반성해본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해야겠다. 숲처럼.



숲에서 만난 생명 – 소엽맥문동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끼리 무리를 지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노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때론 깊은 침묵과 고독이 있는 호젓한 곳을 원하기도 한다. 겨울 숲을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이 녀석에게서 나는 마치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맥문동은 겨울에 시들해지는 다른 풀과는 달리 푸른 잎을 쌩쌩하게 간직하는 식물이다. 맥문동은 흑진주처럼 검은색 열매를 달고 있고, 소엽맥문동은 파란색(남보라색)의 열매를 맺는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한적한 숲 속 길에서 푸르게 뻗어 있는 풀섶을 손가락으로 걷어내면 자연의 색 같지 않은 화려함이 올망졸망 달려있다. 꼭꼭 숨어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찾아보면 나 좀 봐달라는 듯 눈에 훅 들어오는 새파란 모습이 마치 파티장 구석에 숨어있는 화려한 게스트 손님 같다.


   이 열매를 처음 발견한 손님들은 푸른색 때문에 꼭 독이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하지만 제법 열매 맛도 달짝지근하고 그 안에 투명한 씨앗도 매력 있으며, 약재로도 널리 쓰이는 친구다. 소심하면서도 화려한 이 친구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 것.   

작가의 이전글 유채꽃 보러오는 이가 없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