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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Feb 01. 2021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2018년 8월의 일기.  반딧불이


숲에서 만난 사람들 :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을 대하는데 유독 눈이 가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들 말이다. 긴 얘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잠깐의 만남과 스침 속에서도 여운이 남는 사람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찾아왔던 에너지 넘쳤던 아가씨와 그의 아버지. 하늘도 흐리고 숲도 어두컴컴한 데다 그 시간대에 손님도 단 두 분밖에 없었다. 날씨도 기분도 축축 처지는 날이라 실망하겠다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둘이 동시에 우와~하고 외치며 “이 날씨 덕분에 어두운 숲의 모습을 보는 것도 특별한 행운이네요. 왠지 탐험가가 된 것 같아요.”라며 신나게 얘기해주셨다. 그 해맑은 목소리에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던 으슥한 숲을 나도 덩달아 기분 좋고 경쾌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 방청객처럼 크게 호응해주는 손님들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신나서 술술 이야기가 풀린다. 밝고 긍정적인 반응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밝은 표정을 이끌어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들을 잊지 못하게 한다.


 유쾌함과 큰 반응이 아니더라도 경청하는 자세가 아름다운 분들이 계시다. 정중하게 말하며, 해설을 들을 때에도 유머에 미소를 지어주시고 가끔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시며 ‘나 당신 말에 집중하고 있소’라고 표현해주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가끔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들어주시는데 반대로 해설하기 힘든 대상들이 있다. 팔짱을 끼고 있거나 뒷짐을 지고 계신 분들이시다. 이런 분들은 보통 지식인 분들이시다. 이를테면 교장선생님, 전문해설사, 혹은 곶자왈에서 뛰어놀았던 제주도 토박이 어르신 분들이 그렇다. ‘나 그거 다 알아지매!’ 혹은 ‘너 어떻게 말하나 두고 보자’의 시선 같이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본인이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을 으스대고 싶어 하는 분들과, 알고 있는 것은 많지만 드러내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 참 이상하게도 후자가 더욱 반짝반짝 빛이 난다. 경청을 하는 태도에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태도 또한 포함되는 것 같다.


  칭찬이나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이들도 기억에 남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사탕이나 떡을 쥐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인사의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설이 끝난 후에 똑같이 감동을 받고 즐거움을 느꼈음에도 어떤 이들은 함께 온 일행들끼리 좋았다고 쑥떡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이들은 해설사님께 직접 ‘고맙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와 같은 말을 따로 와서 건네고 간다. 둘 다 똑같이 기분 좋은 말을 들은 경우지만 이상하게도 전자는 평가를 당한 것 같고, 후자는 인사를 받은 것 같다. 해설이 끝난 후에 인사를 따로 챙겨서 해주는 분들이 계시면 나오는 길에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고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기억이 다.


  함께 일하는 해설가님들께 어떤 손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연예인이라던지 유명인사를 만난 일, 혹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대답은 그냥 평범한 손님의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가 기억하는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그저 밝은 표정, 경청하는 모습,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감사 인사를 건네는 이 정도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 또한 다른 곳에 가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숲해설가나 매표원처럼 한번 보고 지나칠 인연을 대할 때는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들이라는 점이다.


  별거 아닌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반짝반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숲에서 만난 생명 – 반딧불이
  곶자왈은 반딧불이 최대 서식처이다. 그래서 청수곶자왈이나 산양 곶자왈 등에서 마을 단위로 밤에 반딧불이 축제를 열기도 하고 밤 투어를 하기도 하며 제주도 여름밤의 또 다른 즐길거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3살짜리 어린 아들에게 반짝반짝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그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 깜깜한 밤 곶자왈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년 보는 풍광이지만 반딧불이를 보면 괜히 설레는 엄마와 달리 아들은 별 감흥이 없다. 좋아하고 흥분하며 쫓아다닐 거라 기대했는데 반짝거리는 그 생명은 쳐다보지도 않고 불이나 켜라는 듯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하긴 그 아이 눈에는 반딧불이보다 집에 있는 TV가 더욱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것이겠지 생각하며 씁쓸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평상시에 이 작은아이는 걷다가도 길을 멈춘 채 한참을 있는 아이다.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개미 무리를 보기 위해서, 혹은 지천에 널려있는 콩벌레를 찾아다니기 위해서, 꾸물거리는 애벌레에게 나뭇잎을 주기 위해서 애타게 부르는 엄마를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빨리 일어나서 가자고 재촉했던 내가 반딧불이를 보고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다니. 이 또한 나의 선입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숲해설을 할 때 멸종위기식물이라 하면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똑같이 귀한 생명이고 똑같이 귀한 땅이라고 강조했던 나인데, 콩벌레보다는 반딧불이가 중요하다고 당연하게 여기고 판단했구나 싶었다.


  아이 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면 희귀 식물이라 하면 오히려 채취해 버리는 이들이 없겠지?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몇백 명의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한 장소에 모이는 일 또한 없지 않을까?


  한여름밤의 반딧불이예전처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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