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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Jan 30. 2021

꼬꼬마 형제는 너무해.

2020년 7월의 일기. 장마철 콩짜개덩굴

숲에서 만난 사람들 : 꼬꼬마 형제와 걷는 길


  “내가 먼저 가고 있었잖아.”
  “너 때문에 넘어질 뻔했잖아!”


  해설을 할 때에 듣고 있는 손님들이 수다를 떨고 있으면 신경이 그쪽으로만 곤두서게 된다. 그 손님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오고 있더라도, 눈치 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속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럴 때면 왜 이렇게 하려는 말이 엉키는지 모른다. 그다음 설명해야 하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 적도 있다.


  하물며 그런데 일곱, 여덟 살이라는 두 형제는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처음부터 해설이 끝날 때까지 별거 아닌 상황에서도 시비가 붙는다. 그것도 내 앞에 딱 붙어서 서로 먼저 가겠다며 쫒아온다. 두 아이가 제일 앞에 서서 시끄럽게 싸우는 풍경 뒤로 다른 손님들이 얼굴을 찌푸린다. 열심히 듣고 있는 뒤의 손님들 분위기마저 말이 아니었다.


  엄마가 중간중간 주의를 주고 뒤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면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서로 툭툭 치면서 금방 또 시끄러워진다. 열심히 듣겠다며 싸우고 앞으로 다시 냉큼 나오고 있으니, 혼을 내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다.


  갈등의 길에 다다랐다. '갈등'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나와 있다.


  갈등의 한자 어 또한 칡덩굴 갈(葛)과 등나무 등(藤)이다. 칡덩굴은 위쪽에서 봤을 때 반시계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며,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감고 자라기 때문에 이들은 같은 지점에서 자란다면 어쩔 수 없이 부딪히고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때다 싶어 두 아이를 바라보며 “꼭 너희 둘과 같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식물이 칡과 등나무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동생이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엄마가 우리가 이렇게 많이 싸워도 스무 살이 되면 엄청 사이좋은 형제가 된데요!” 그 말에 형도 맞장구를 치며 동생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해 보였다. 진지하면서도 해맑게 대답하는 그 말과 표정이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방금 전까지 형제들 때문에 얼굴 찌푸리던 손님들도 함께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맑아져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서는 ‘싸우면서 크는 건 당연하다’, ‘우리 애들이 지금은 얼마나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인지 모른다’ 등등의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다음부터는 긴장감이 맴돌며 불편하던 그 팀의 해설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가 좋은 손님들이 되어 있었다. 정말 긴장감과 갈등이 있었기에, 그 갈등의 요소가 풀렸을 때는 오히려 극적으로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평범한 50대 남자 주인공이 무섭게 생긴 사채업자와 싸우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나 삼 형제야!”라는 대사를 던진다. 삼 형제는 돌 돼서 숟가락 들기 시작할 때부터 장난 아니게 싸워서 맷집이 있다는 말이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살면서 크게 소리쳐 본 적도 없고, 어릴 적부터 딱히 누군가와 싸워본 기억이 없는 다툼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그러나 예외로 어릴 적 오빠랑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치고받고 싸웠는지 모른다. 그때는 오빠가 진심으로 무척 얄밉고 싫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똑같이 싸우고 있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둘째가 어찌나 오빠의 성질을 건드리는지, 왜 첫째는 가만있는 둘째를 이유 없이 건드리고 가는지, 왜 똑같은 장난감이 두 개여도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지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갈 때가 없다. 그래도 저렇게 싸우는 시간이 쌓이면, 서로에게 가장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또한 이렇게 많이 싸워본 아이가 다른 자리에 가서도 쉽게 주변 사람들과 맞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무도 서로 자리 경쟁을 하며 자랄 때 더욱 크게 자라난다. 그렇다고 마냥 부딪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 타협하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면서 본인들의 살아갈 공간을 만들며 숲을 이룬다. 갈등이 있기에 발전이 있고, 고민이 있고, 화목이 생기듯이 부딪히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두 형제를 통해 배운다.


숲에서 만난 생명 – 콩짜개덩굴



  콩을 반쪽으로 쪼갠 모양으로 생긴 콩짜개덩굴이 온 숲을 덮고 있다. 콩짜개덩굴은 추운 겨울에도 초록색을 유지한다. 겨울에는 얇은 나뭇잎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지내고 쪼글쪼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가, 비가 한번 듬뿍 오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오동통하게 올라오는 식물이다. 그래서 장마철에 콩짜개덩굴을 바라보면 꼭 신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친구는 물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너무 물이 많아도 죽는 까다로운 식물이다.


  사실 집에서 몇 번이나 키워보려고 노력했지만 물 줄 때를 놓쳐서 몇 번이나 죽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곶자왈 안에서는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는데 잘만 자라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비가 많이 오면 많이 온 데로 돌 틈으로 물이 빠져 너무 넘치지 않도록 하고, 날이 가물면 지하수를 머금은 지하공기로 습도가 유지되는 독특한 특징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콩짜개덩굴이 아닌가 싶다.


  물안개가 많이 올라오는 요즘, 아침 이른 시간에 곶자왈을 산책하면 초록의 콩짜개덩굴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기존에도 환상숲에는 콩짜개덩굴이 많기로 유명한데 올해는 더욱 빼곡하게 덮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서 나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콩짜개덩굴이다. 사계절 푸르며 그 자리를 지키는 이 친구는 사람들이 오가며 손을 댄 자리에는 어김없이 그 개체수가 줄기 시작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봄에 손님들이 뜸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난 8년 동안 봐 온 중에 가장 건강한 숲이 되었다. 숲이 쉬어 가자 더욱 푸르름이 유지되듯, 우리도 조금의 쉼을 가진 후에 그 힘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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