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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Jan 25. 2021

가난하고 행복했던 기억들

명리동식당 - 옛날 우리 집

"잠깐만요. 저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했지
불행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집을 생각하면
가난한 중에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끼며
서로 나누고 사랑받았던 기억이
제게는 충만합니다."

책을 읽다 옛날 우리 집이 떠올랐다.
이제는 식당이 되었고 장사가 잘 되었는지
아쉽게도 건물을 허물어 끗한 이층 건물이 지어졌다.


할아버지가 직접 지었다는 내가 태어난 집.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 나
여섯 명이 복닥복닥 하던 집.
가운데 주황색 지붕이 얹힌 자리는
참 넓게만 느껴졌던 마당이다.


지금 보면 참 좁은 공간인데
마당 한편 한 평도 안 되는 화단이
그때는 마치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
파란색 지붕, 방 두 칸과 마루가 고작이었던 곳.
건넛편 건물에는 창고와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물부엌이 있었다.
그 앞에는 빗물을 받기 위해
커다란 대야가 놓여있던 걸로 기억된다.
늘 술을 끼고 살았던 할아버지가 무서워
혹시 할아버지 홀로 계시면
쪼르륵 숨고 도망 다녔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다정했던 분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살던 집은 학교 앞 창고.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포개져서 잠을 잤다.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 우리 남매는
잠을 자다가 깨면 발길질을 하며
연탄 가는 일을 서로에게 미루었다.
그 조그마한 것들이 자전거를 얻기 위해

동네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개가 무서운 오빠는 늘 나를 태우고 다녔고
나는 자전거가 멈추면 쪼르륵 달려가
집집마다 신문을 끼워 넣었다.
그때는 학교와 가까워서 마냥 행복했다.
9시가 넘어 선생님이 찾으면 그제야
친구들이 달려와 깨워가기 일쑤였단다.
학교가 끝나면 노란색 가방을 휙 던져놓고
비석이 주르륵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우리 맘대로 법칙을 만들어
잡기 게임을 하곤 했다.


친구들을 우르르 이끌고 집에 갔는데
집 안 쌀통 위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엄청 큰 뱀 보았다며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제법 어깨 으쓱해하던 일도 있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불우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때가 그리운 것을 보면.
오랜만에 쉬는 날.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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