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곰곰이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연애를 뒤돌아 봤습니다. 강산이 바뀐다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그랬더니 떠오르는 것이 ‘식사’더군요. 영화도, 애정표현도 뻔해지고 지루해질 시간 동안 우리는 늘 함께인 시간에 공통적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때론 음식이 올라간 상을 뒤집어엎으며 싸웠고, 때론 서로 먹자고 입을 쩍 벌린 모습까지 예뻐했습니다. 음식 앞에서 권태기를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모두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니 남는 게 음식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서울 맛 집 리스트와 해외여행을 가서까지 버리지 못한 맛 집 탐방이 10년간 고스란히 쌓였죠. 여기서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십 년간 먹은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뭐 먹기만 했겠습니까? 때론 울고, 때론 이별도 했겠죠. 물론 음식을 앞에 두고 말이죠. (절대 30년 만에 본인 적성 찾았다며 먹방 유튜버가 되겠다는 그놈 때문에 이 주제를 결정한 건 아닙니다. 아마?)
우리는 식탁 앞에서 끝없이 찌질해졌습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무슨 죄인가 싶게 음식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내 삶의 찌질함은 식탁에서 꽃을 피웠네, 피웠어."
그렇지만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얻었습니다. 음식만 보면 우리 연애의 대서사시를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됐죠. 아마 음식 때문에 그 흔한 헤어짐 한 번 없이 십 년 넘는 시간을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마주 앉아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루 치의 찌질함을 토로합니다. 그러다 보면 상처 받은 마음도, 누군가에게 치여 너덜 해진 마음도, 서로에게 쌓인 서러움도 사라집니다. 맛있는 음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서로를 바로 보며 웃는 웃음소리가 배부르게 채워주죠.
앞으로 한 가지의 추억 음식과 그 음식을 먹으며 우리에게 쌓인 이야기들을 한 편씩 풀어보려 합니다. 이건 우리 커플의 찌질한 연애사이자 지금 함께 무언가를 먹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겪었을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번쯤 본 적 있잖아요 우리, 입을 쩍 벌리고 음식을 넣다가 눈이 마주쳐 터져 버린 웃음을 말이죠. 설마 데이비드의 먹방이 웃겨서 저만 이렇게 웃음이 터지는 건 아니겠죠?
주인공 소개
그 여자. 꼬꼬
데이비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데이비드와 먹으며 짜증을 완화시키는, 십 년째 그 남자를 키우고 있다고 믿는(분명 다른 의미의 양육이기는 했다. 먹이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데이비드의 인간화 과정을 주도한 셈이다.) 중. 100가지 음식을 시켜 한 입씩 먹고 그 남자에게 모두 떠밀어 버리는 습관을 십 년째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 남자. 데이비드
본인을 리틀 장동건이라고 우겼지만 눈앞의 음식을 참지 못하고, 늘어나는 살과 30년째 전쟁을 치르며 어쩌면 곰돌이 푸의 인간형이 아닐까 의심받는 중. 다비드 상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비슷한(그 와중에 속내를 읽히긴 싫었는지) 데이비드로 영어 이름을 지었다. 18년째 인생 음식은 KFC 치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