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는 복서 시절에 우연히 중고책방에서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보고 건축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시베리아를 건너 파리에 도착했을 때 르 꼬르뷔지에는 막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여기까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 24살의 안도가 그 이후에 세계를 한바퀴 돌았다는 사실은 이 지도를 보고나서야 실감을 하게 되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청년이 세계적인 건축가와 만난다는 비현실적인 꿈을 안고 시베리아를 건넜지만, 그 비현실적인 꿈이 이뤄질 확률이 1%에서 0%로 떨어진 순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무려 4년동안 세계를 돌았다. 1965년에 돈 한푼 없는 아시아 청년이 기차와 배로 세계를 일주한다는 것은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다가온다. 무미건조한 지도와 루트 속에서 뭔가 엄청나게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진다.
작년에 도쿄 국립 신미술관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안도 타다오의 전시를 봤는데, 이번에 비슷한 전시를 퐁피두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내용은 비슷한데 규모는 일본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래서인지 퐁피두를 다니면서 가장 줄을 길게 서야 했던 전시가 되었다.
현재 파리 중심가에 있는 상품거래소(Bourse de Commerce)가 리모델링 중인데 안도 타다오가 파격적으로 역사적인 건물 안에 대형 원통 모양의 콘크리트 공간을 넣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최근에 시도하는 작업들도 흥미롭지만, 베니스나 파리의 역사적 건물을 재해석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컨셉도 흥미진진하다. 건물 보존에 끔찍하게도 보수적인 유럽의 행정 당국들이 이렇게 파격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이 문화적인 저력이라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