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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Aug 07. 2023

[소설] 겨울보다 여름을 더 좋아한 사람들

-1부-

-  1부 -

“이번 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승강장에 열차가 도착하였고 많은 사람이 내리기 시작했다. 환승역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출구를 향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팔을 허우적거리거나 두리번거리며 출구를 찾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벤치에 정강이를 부딪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고! 다리야! 여기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 조명이 고장 난 거야?”

어두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후속 열차에서 사람들이 계속 내렸고 플랫폼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네 5678 서울도시철도 민원실입니다.”

“여기 5호선 동역사역 승강장이 너무 어두운 거 아닌가요? 환하게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지하철 민원창구와 문자로 역이 너무 어둡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은은하게 조도를 낮춰 공사한 이후 별다른 민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무원들도 이런 사태가 왜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빛을 감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뿐만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의 민원이 늘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가로등을 더 배치해 주세요”

“지하철역 입구에 조명을 더 밝게 해주세요”

그리고 전국 안과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동네 안과는 물론이고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 예약을 하고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에서는 긴급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망막센터의 한 교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망막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마치 RP 환자들의 증상처럼 야맹증 진단이 늘어나고 있어요.”

맞은편에 앉은 유전체의학과 A 교수도 말했다.

“맞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네요. RP는 대부분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 오는 환자들은 그 가족력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표현형은 RP와 매우 흡사합니다. 유전자의 변이가 갑자기 일어났다. 매우 이상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센터장이 결심하듯 말했다.

“우선 현재 목요일마다 운영하는 망막센터를 월, 화, 목 3일로 늘리도록 합시다. 현재 상태로는 환자들이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합니다.“     

RP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으로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시력을 떨어뜨리고 처음에는 야맹증으로 나타나지만, 점차 시야가 흐려지고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듯한 터널시야 현상을 보이고 결국 시력을 상실하는데 이른다. 대부분은 유전적인 영향으로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RP의 표현형을 보인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희귀 난치병으로 분류되어 현재로서는 시력 저하 및 치료할 방법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병원에서 진단이 일어나고 조치를 취하여도 뾰족하게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많은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이 진료하더라도 이를 집계하거나 진단하는 데는 의의가 있지만 상황을 극복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

인류는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재난에 빠지고 있었다. 코로나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타격을 주었지만, 중증 환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회복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질병은 한번 걸리게 되면 점차 시력이 감소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이 병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코로나보다 더 확실한 치료법이 필요해졌다.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난 코로나19 때보다 더 엄격해졌다. 시력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은 자존감을 낮추고 우울감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양초등학교 방면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건너가도 좋습니다.” 

횡단보도 음성신호기의 작동 횟수가 늘어났다. 원래 소음문제 때문에 꺼져있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맹 시각장애인들은 작은 리모컨을 가지고 다니면서 버튼을 작동시켜야 사용이 가능했다. 혹은 기동에 달린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음성신호기 작동이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 지자체나 공항에서 볼 수 있었던 바닥 신호등이 설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신호가 바뀌는 것을 체크하는 용도였지만 바닥 신호등은 멀리 있는 신호등을 보지 않아도 바로 아래서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단마다 계단 표시한 줄이 의무화되었다. 어떤 곳은 LED 불빛을 만들어 TV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미끄럼방지를 위한 도구인 줄 알았는데 계단을 구분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표시가 안 된 계단에서는 넘어짐이 속출했고 민원을 넣는 사례도 늘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간판의 글씨 크기가 2배로 증가하거나 불빛을 이용해 글자를 강조하는 곳이 생겼다. 혹은 음성으로 가게 위치를 알려주는 곳도 있었다. 이제는 간판에 의지하기보다는 소리와 같은 보조 신호로 듣는 사람이 많아졌다.

코로나 때 늘었던 키오스크(KIOSK) 주문 시스템도 철거되기 시작했다. 비대면과 비접촉 그리고 인건비 절약의 아이콘이었지만 사람들이 저시력을 가지게 되면서 손으로 터치하면서 주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원래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사용에 불편을 겪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도 노인의 흐릿한 시력을 갖고 나니 키오스크가 얼마나 불편한 도구 인지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전처럼 대면으로 주문하거나 ChatGPT와 같은 생성 AI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처리하는 것으로 대체 되었다.     

아무래도 이 사회적 변화는 밤을 크게 변화시켰다. 야맹증이 기본값이 되면서 밤에 누릴 수 있는 활동들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일찍 귀가하기 시작했고 겨울보다는 여름을 더 좋아했다. 겨울에 저녁 6시에 퇴근하면 어두워진 경험을 싫어했으며 대부분의 직장은 4시에 업무를 종료하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거리에는 엄청난 수의 가로등이 세워졌다. 밤에도 낮처럼 밝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란색 유도블록은 밤에는 마치 활주로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가 빛에 반사되어 밝게 빛나는 유도블록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도블록의 길을 따라 이동했고 어두운 골목길은 피했다.

더불어 밤에 술을 마시거나 늦게까지 음식을 먹는 문화도 점차 사라졌다. 코로나 때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접촉하지 않기 위해 일찍 귀가 했지만,  이제는 어둠을 경험하지 않고 피하고자 귀가를 시도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현상은 온 세상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바꿔놓았다. 고도하게 발달한 눈이 퇴화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빛만 겨우 감지하는 고대 생물처럼 변화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이 공기 중으로 전파하여 단백질 스파이크가 붙고 변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3년간의 거리 두기 효과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진화의 시계가 거꾸로 가듯 퇴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망막색소변성증과 같은 질병도 아니었으며 야맹증과 같은 표현형을 동반하기에 의료진은 RP로 착각하고 있었다.

다만 무서운 것은 진화의 역방향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리고 그것이 오직 눈에만 작용했다. 이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대부분 사람은 사물을 겨우  분간하고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저시력을 갖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 사회도 변화하였다.     

어느 날 미국에서 이러한 요인을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환경에 오래 주시하면서 생기는 변화라는 주장이 일어났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들고 나온 지 약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스마트폰의 사용이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그 특이점을 넘게 되면서 시력이 돌아오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저시력 현상은 주로 60대, 70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스마트폰을 접한 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미 빅테크 기업은 데이터로 사람들의 시력 저하를 알고 있었다.

2020년 초반에 앞다퉈 “다크모드” 기능을 OS 제조사에서 선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OLED 화면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절약 모드쯤으로 생각 했다. 왜냐하면 OLED의 경우 검은색을 표현하기 위해 아예 소자를 꺼버리기 때문에 검은색 이외에 색을 내는 데만 전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플은 앱을 출시할 때 다크모드를 탑재하지 않으면 출시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때는 디스플레이 전략에서 나온 결과물인 줄 알았으나 사람들이 점점  빛에 민감해하면서 다크모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눈부심이 적었고 검은색 바탕의 흰색 글씨가 훨씬 더 잘 보였다.

그리고 수많은 시각보조 기능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머신러닝, 딥러닝 기술을 받아쓰기 기능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했고 이미지에 씌여진 텍스트를 자동으로 읽어주는 기능까지 생겼다. 

이쯤 되면 OS를 만드는 빅테크 기업에서 사람들의 시력 저하를 미리 예견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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