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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an 09. 2017

후기/르 코르뷔지에전展

화가가 되고 싶었던 건축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르 코르뷔지에 전시에 다녀왔다. 전시된 작품은 회화와 건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양이 꽤 방대해서 차근차근 관찰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익숙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이지만, 전시에서 보여준 방대한 양의 드로잉과 글귀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고 그의 건축 세계를 더 완전히 이해하게 됬다. 이전에 헤더윅 스튜디오의 전시를 다녀왔을 때, 헤더윅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장인 장신의 작업 형식을 잘 집어서 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르 코르뷔지에 전시는 마치 회고전처럼 작가의 다양하고 방대한 관심사의 진화 과정을 연대별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근대 건축에 있어 아마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인물의 작업을 간결하지만 영양가있게 풀어낸 전시에 박수를 보낸다.



큐레이팅은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취했다.  화가로서, 그리고 건축가로서의 르 꼬르뷔지에가 어떻게 성장했고, 그 두 작업 사이의 미묘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잘 조율했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갈 때 회화에서 건축으로, 건축에서 회화로 넘어가며 동시에 발전하는 르 코르뷔지에 내면의 화가와 건축가를 보여주는데 간간히 벽에 적힌 글귀들에서 불완전하고 때론 연약한 인간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각각의 미디엄에서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분명히 볼 수 있었고, 그 두 작업이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추론하는 게 전시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회화 작품의 양은 워낙 방대한 만큼 작 작업에서 순차적인 테마의 진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건축적 작업은 큰 테마를 보여주는 작품들: 빌라 사보아, 빌라 슈타인, 빌라 라로슈 같은 초창기 주택; 롱샹 성당; 유니테 주택단지; 그리고 후반기 찬디가르에서의 작업으로 묶어서 전시했다. 회화에 있어서는, 초기에 동방 여행을 드로잉으로 기록하면서 다양한 화풍을 익혀가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개인 사무소를 시작한 이후에 정물화를 그리는데, 여기서 시작된 곡면, 오브제, 그리고 구성 (Composition)에 대한 테마가 아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후기 작업에서 자신이 쌓아온 규범들을 깨뜨리며 더 자유로워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건축적인 부분에서는 근대 건축의 토대를 닦은 어귀스트 페레 (Auguste Perrett)와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의 사무실에서 받은 산업화의 영향, 그리고 전쟁 후 주택 보급 문제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돔-이노 시스템(Maison Dom-ino) 그리고 근대 건축의 5원칙으로 연결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회화에서 익힌 형태와 구성에 대한 탄탄한 지식이 사무소에서 익힌 콘크리트 공법과 새로운 주택형태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융합되 우리가 익숙한 근대 건축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Maison Dom-ino


아래는 개인적으로 와 닿은 부분들이다.


암흑기

작품들 자체도 좋았지만 전시 중간중간에 적혀있던 르 코르뷔지에 자신의 글귀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천재로 불리던 그의 불안함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용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괴감을 솔직히 표현했다. 서른이 되자 그는 더 큰 세상에 나아가겠다고 스위스에서 파리로 옮겨 사무소를 차리지만 약 5년간 아무 일거리를 얻지 못한다. 5년; 그 기간은 정말 고통스럽고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이미 첫 건물을 설계했던 그이기에 패기와 자신감이 넘칠 시기에 그가 느꼈을 조바심과 불안함은 대단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기간에 그는 매일 꾸준히 정물화를 스터디하며 오브제, 형태, 곡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그리고 돔 이노, 모듈러를 비롯한 근대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쌓아가며 열심히 지인들과 교류하고 잡지 활동도 이어나갔다. 5년간의 암흑기라고는 하지만, 5년간에 꾸준히 자신에게 투자한 연습기간이 르 코르뷔지에가 훗날 보여주는 뛰어난 구성 능력, 자유 형태에 대한 이해가 생겨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면의 전문성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업적은 그의 회화 작업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자신을 건축가가 아니라 문인, 화가라로 표현할 만큼 건축이 아닌 회화 등에 집착한 르 코르뷔지에는 는 사실 인생의 목표로 회화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공간적 배치 능력이나 평면 구성은 모두 그의 회화적 습작들로부터 온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페인팅을 통한 디자인 프로세스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 역시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은 회화를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게 오히려 건축적 작업에 더 자유를 주었을지도 모르고 오히려 정작 자신은 회화에 끊임없이 집착했기에 회화에서는 끊임없는 좌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회화는 건축을 도왔고 건축은 회화라는 궁극적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이처럼 다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더 풍부하고 영향력 있는 건축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예를 생각해본다면,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강점은 저널리즘에서 오는 분석력이고 도시/상업 문화라는 더 포괄적인 관심사이다. 피에르 비토리오 아우렐리(Pier Vittorio Aureli)의 강점은 자본주의/마르크시즘,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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