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Tesla의 자가 주행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실로 대단한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차를 새로 구입해 하드웨어를 바꾸는 게 아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이 기능이 구현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테슬라가 선보이고자 한 건 자가 주행 자동차였지만, 핸드폰처럼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얻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사물인터넷 패러다임의 일부입니다.
앞으로는 새로 출시할 자동차 모델의 바디를 디자인할 때 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운전자(이제는 사용자 User라고 칭해야 더 적합할까요?)와 차체의 새로운 관계를 탐구해야 합니다. 차를 탄다는 건 특별한 ‘방’에 들어가는 경험과 더 비슷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영역이 섞이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사물인터넷은 손목에 차는 크기의 ‘웨어러블’부터 자동차까지 여러 스케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건축의 영역에서는 그 영향이 미미한 편입니다. 물론 여러 회사들이 스마트홈 시장의 잠재적 성장을 기대하고 있지만, 스마트홈 제품들 또한 건축보다는 건축적 공간에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작 공간 자체를 다루는 혁신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스마트홈, 그리고 스마트 건축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공간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들이 속속 개발되는 상황에서, 그에 상응할 수 있는 공간의 형태와 모습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로서 ‘공간적 사물’의 가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물건이라기엔 너무 크고, 방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스케일을 통해서 건축이 사물인터넷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봅시다.
스마트홈의 개념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005년에 매체에서 소개한 빌 게이츠의 사택은 여러 센서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거주자의 취향에 맞춰 공간의 조명, 온도, 그리고 배경음악까지 조절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이츠 사택은 공간적인 면에서는 일반 주택과 전혀 다른 점이 없습니다. 주간지에 실리는 여느 할리우드 스타의 웅장한 저택과 같은 모습입니다. 게이츠의 스마트홈 시스템이란 텔레비전에 쿡티비를 설치하는 것 마냥 단순한 부가 서비스였을 뿐 집이라는 개념을 변화시킨 건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우리 세대는 화면 속의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행태 Behavior입니다. UI/UX, 그리고 경험이 형태나 미학보다 우선시되는 시대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보이는 혁신처럼, 소프트웨어 해결책들은 우리에게 주변 사물들의 용도를 되묻고 그 모양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형태 Form가 기능 Function에서 독립하면 디자인은 이제 어떤 법칙을 따라야 할까요? 새로운 행태는 새로운 니즈 Needs를 만들어내고 이런 과도기적 시점이야말로 우리와 물리적인 공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적시입니다.
사물인터넷 제품 중에 몸에 걸치는 ‘웨어러블 Wearable’은 우리 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 기계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액세서리의 형태를 띠며 신체의 다양한 변화를 데이터로 저장합니다. 일반적인 액세서리가 단순히 몸에 붙어있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웨어러블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 둥 쌍방향 소통을 지향합니다. ‘Wearable — 입을 수도 있는’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서도 ‘독자적인 존재이지만, 입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큰 스케일에서 ‘해비터블 Habitable’이라는 개념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웨어러블의 연장으로 보자면 해비터블은 단순히 주거 occupy만 하는 게 아닌 상호작용 interact이 가능한 독자적인 오브제이자 공간입니다.
웨어러블이 사물인터넷의 현상 중 하나라면, 해비터블의 상위 개념으로서 ‘공간적 사물’을 제시합니다. 이 개념은 공간을 사물인터넷에 편입시키는 시나리오입니다. 건축의 시선에서는 건축의 오브제화입니다. 공간적 사물이란 사물이라기엔 너무 크고, 공간이라기엔 너무 작은 애매한 스케일의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자동차의 내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와 걸맞은 디자인 영감인 히미네즈 라이 Jiminez Lai의 ‘서류가방 집’Briefcase House과 ‘흰 코끼리’White Elepant를 살펴봅시다. 두 가지 모두, 오브제와 공간 사이의 어중간한 스케일에서 우리 몸과,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를 되묻습니다.
서류가방 집은 삶을 지탱하는 집의 요소인 침대, 선반, 책상, 장롱 등을 하나의 공간적 사물에 담습니다. 미스반데로어Mies Van Der Rohe의 판스워스하우스Farnsworth House를 지탱하는 중앙 코어(건물의 구조적 줄기 역할을 하며 화장실, 비상계단, 엘리베이터 등의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와 비슷하지만, 서류가방 집은 바퀴가 달려있어 한 곳에 고정되어있지 않습니다. 이 코어의 기능들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풍성해지는 건 간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류가방 집은 그의 가능성은 기능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그 형태와 유동성을 통해 사용자와 공간이 상호작용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물인터넷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서류가방 집은 삶의 기본 요소를 충족시키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판스워스하우스가 코어로 인해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공간을 이룬다면, 서류가방 집은 코어에 바퀴를 닮으로써 이 콘셉트에 새로운 레이어를 입힙니다. 움직이는 코어로 인해 코어와 외벽 사이에 생겨나는 공간들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크기를 정할 수 있습니다. 미스반데로어의 고정된 코어로 인한 풍부한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의 공간인식에 의지하며 주체subject와 대상object의 관계를 강화시킵니다. 하지만 히미네즈 라이의 떠있는floating 코어의 경우, 코어가 정의하는 공간을 우리가 인식하기도 하지만, 움직이는 코어 또한 공간 안의 주체의 좌표를 거듭 새로이 정의합니다. 주체-대상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공간과 주거인이 끊임없이 서로를 조정하는 주체-주체의 쌍방향 관계입니다.
서류가방 집이 우리에게 익숙한 주방 선반, 옷장, 서랍장, 책상들을 조금씩 섞어놓은 모양이라면, 흰 코끼리의 모양은 그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플렉시글라스 외피로 감싸진 사면체는 위아래가 없으며 사방으로 뻗은 다리는 공간에 불시착한 모양입니다. 내부는 어둡고 폭신폭신하며 보드라운 털가죽으로 마감되어 세련되게 포장된 엄마의 자궁을 연상케 합니다.
서류가방 집이 기능주의의 결정체라면 흰 코끼리는 형태주의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이 기능의 부재로 인해 우리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흰 코끼리를 다른 물체에 빗대어 표현할 수 없기에 우리는 용도와의 관계를 새로 정의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인식을 새로 쓰는 작업입니다. 마치 놀이터 정글짐을 성으로 상상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흰 코끼리는 기능이 부재한 형태를 통해 형태의 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감각에 작용합니다.
소프트웨어 혁명에 따라 변화하는 자동차 내부처럼 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또한 틀에 박힌 모양을 따를 이유가 더는 없습니다. 기능과 모양이 분리되고, 소프트웨어가 기능의 여러 부분을 대체하게 되면, 일상적인 가구들의 모양들을 따랐던 서류가방 집도 흰 코끼리처럼 더 자유로운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소프트웨어 영역을 관할하는 UI/UX 디자인의 초점은 기술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에 있으며 우리의 감성에 어필합니다. 공간적 사물들에게 용도 대신 역할이 있다면 우리의 감각에 어필하여 공간에 대한 인식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간 미래에 공간적 사물들로 이루어진 공간을 상상해봅니다. 자유로운 공간적 사물들이 널브러져 있는 공간은 우리 환경을 일종의 ‘정글’이나 놀이터로 탈바꿈시킵니다. 낯선 형상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용도를 부여해야 합니다. 방 안의 물건들과 공간적 사물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주거기능을 제공합니다. 사람이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아니라 공간을 일궈나가며 같이 자라나는 유기적인 풍경일 것입니다. 자연의 정글이 자생하는 나무와 풀숲, 그리고 다른 유기체들이 구성하는 공간이라면, 스마트 건축의 공간은 사물인터넷의 자유로운 형태들이 만들어낸 인공적 정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