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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리타 Oct 15. 2019

꼭 다시 살고 싶은 곳, 제주

잊을 수 없는 나의 섬

2014년 봄, 나는 제주도 발령을 자청했다.

6년간 안암에 살며 첫 서울살이의 만족도는 무척 높았는데, 졸업한지 시간이 흐르고 회사 생활 2년이 넘어가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늦어지면 이런 용감한? 결정을 하기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제주도 보내주세요!"


좁은 원룸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짐들이 이삿짐 박스에 담겼고 바다를 건너 제주로 갔다. 그리고 남광로2길, 제주소방서와 제주중앙여고가 있는 동네, 당시 구제주라 불리던 이도이동에 내 집이 생겼다. 나는 이 이도이동이라는 이름이 너무 예뻐서 "우리집은 이~도이동! 이~도이동!" 이란 리듬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제주에서 여행같은 삶이 시작됐다.


내가 그렇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원래도 은근한 낭만이 있어 세상 소소한 것들을 예쁘게 보는 편인데 제주에서의 1분 1초 매순간은 빛나고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산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하늘이 가까워 심심하지 않았다. 날씨 좋은 날은 정처없이 혼자 오름 정복에 나섰다.

제주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는 말이 살아보니 체감이 됐다. 섬 곳곳에 퍼져 있는 오름이라 불리는 이 대머리 동산들은 4계절 다른 색 다른 바람 다른 느낌으로 나를 맞았다. 이른 아침이고 석양이 지는 시간이고 나는 마다 않고 혼자 오름을 잘도 올랐다. 새벽 숲길이나 저녁 별이 떠오르는 하산길에 고라니를 만나는 일도 흔했다.


능선이 아름다운 큰다랑쉬오름 저녁 하산길


겁도 없었다. 그 때의 제주는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낙원이라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입사 동기들이 제주에 많이 살아 우리는 다 이도이동 동네 친구였는데, 분리수거를 하다가도 누가 불러서 쳐다보면 2층에서 친구가 이름을 부르며 야 밥먹고 가~ 했고, 금요일 밤이면 서로의 집에 모여 밤새 보드게임을 하고 해가 뜨면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해장국집에 새벽같이 찾아가 밥을 먹었다. 회사 사람들의 집에 가고 거기서 잠도자고 주말도 같이 보낸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째 그렇게까지 함께했을까 싶고 돌아오기 힘든 시간들이지만 그 때 제주에서 만난 인연들은 오랜 친구보다 편하고 가까운 이웃이었다.


한 날은 주말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3시 쯤 동료들과 다랑쉬오름을 올랐다. 백팩에 물 하나, 우유하나, 김밥 세줄을 넣고 한시간 쯤 오름을 오른 우리는 정상에 닿아 샤오미 블루투스 스피커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재주소년의 마지막춤은 나와함께 따위를 함께 들으며 하늘을 맘껏 즐겼다. 두시간 동안 셋이 잔디밭에 벌렁 누워 낮잠도 자고 노래도 듣고 소리도 질렀다. 사실 춤도 췄다. 돌아오는 길엔 회를 샀고 사람들을 더 불러 모았다. 누구 집 주방에 또르르 모여 방어를 식칼로 직접 손질해가며 방어머리탕을 끓였다. 집에서 끓인 대방어머리탕이라니. 육지에선 먹어본 적도 없는 세상 별미.


아! 주말이면 동쪽 끝에 있는 책방도 자주 갔다. 차로 40분쯤 운전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창문을 내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힘껏 달리다보면 40분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름도 귀여웠던 「소심한 책방」. 정규 출판물 보다 제주 문화인들의 비공식 출판 에세이가 더 많았던 그 서점에는 책마다 재밌는 메모들이 개성찬란하게 늘어져 있었다. 책 사이사이엔 작가인지 주인인지 모를 누군가의 엽서 혹은 손글씨가 랜덤으로 담겨있고, 맘에 드는 책을 집어보며 즐길 수 있게 귤피차나 뱅쇼가 항상 손 닿는 어딘가에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은지 적어둔 재주좋은 책방 주인의 알찬 포스트잇도 가슴 설레는 포인트. 이제는 손님도 많아지고 문 닫는 날도 늘었다지만 당시 소심한 책방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너무 그리운 공간 중 하나.


즐겨 찾던 아지트, 동네 책방 1세대 종달리 「소심한 책방」


동네 트럭에서 노지 딸기를 잔뜩 사서 도민들이 즐겨 먹는다는 딸기주물럭도 만들었다. 못난이 딸기 꼭지를 따고 주물주물 터뜨려서 얼음과 우유를 섞고 샤벳처럼 만든 후 냉동실에 넣었다. 비오는 여름이면 집에 에어컨을 틀고 그 딸기주물럭을 퍼먹으며 영화를 봤고 남는 건 비닐팩에 소분해 이웃들과 나눴다.


딱히 약속 없는 주말, 잠시 마트 다녀오는 길에 고개를 들면 선홍빛 노을 한 폭이 선녀의 치맛자락처럼 흐르고 있었고 그렇게 한참을 서서 하늘만 보다 들어 온 날도 있다. 하루 의미가 '아까 그 하늘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충만해지는 그런그런 날들이었다.


명절이나 출장으로 육지에 갈 때면 일정을 소화한 뒤 피로감에 시달리며 어쨋든 내가 돌아갈 곳이 '제주' 라는 사실에 가슴 벅차하며 감사했던 것 같다. 출장 후 만나는 서울 야경의 블링블링함, 비오는 밤도로를 파란버스 초록버스가 형광빛 물선을 좍좍 만들며 지나가는 광경을 보곤 아 이런게 서울이었지 했다. 여기는 서울이고 지금 내 집 내 옷가지 내 일터는 제주에 있다는 사실이 가슴 시큰시큰 신기.


출장 후 제주로 돌아올 때면 하늘에서 늘 가슴이 끓었다. 좋아서.


사실 내가 제주에 내려가자마자 한달도 안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발표가 났기에 제주에 제대로 적응하기 전부터 이 섬에서의 시간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거나 다름없었다. 합병을 통한 로케이션 통일, 안정화가 빠르게 추진 되면서 언제 또 여기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셀프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 소중한 마음, 애타고 애닳는 심정으로 보냈던 것 같다.

제주에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카드를 쓰는 습관이 생겼는데, 제주 곳곳에 카페가 많아지면서 신선한 일러스트의 편집물을 접할 기회가 자주 생겼고 곶자왈이나 월정리 함덕같은 제주의 소재지를 대상으로 한 아이템도 많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 족족 사들이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엽서를 썼다.

쓸 말이 없어도 썼다.
- 오늘 바다가 예뻤고 네가 이웃이라 편하다
- 오늘 오름이 좋았고 생일 축하한다, 이 기운을 당신에게!
- 이 그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물오름이 배경인 것 같다, 아끼는 카드라서 너에게!

이 카드병은 제주를 떠나기 마지막 한달 전에 절정으로 심해져서 그 때 제주에서 새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카드를 쓰고 올라 온 것 같다. 60세가 넘는 삼양해변의 서핑회장님 부부, 서귀포에서 펜션을 하던 지인, 친해진 동네 카페 주인언니. 그리고 이사하던 날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에서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청승맞지만 난 그 때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제주라는 섬을 사랑했나보다.

2년 뒤 육지로 올라와 지인의 집에서 발견한 제주도 가이드북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처럼 2년 남짓 살았던 작가가 자신만의 제주 비밀 여행지를 엮어 낸 책이었다. 스스로를 정의하길 "나는 섬에서 일상의 삶을 사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 혹은 그 둘 다인 중간 여행자였다" 라고.


나도 그랬다. 섬은 내 일터이면서 내 여행지였고 내 여행지면서 내 일터였다.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날씨가 좌우하는 일이 많은데 제주에서 산다는 건 오늘 날씨가 흐렸다고 해도, 내일 개인 날의 장소를 볼 수 있음을 의미했다. 비가 오고 구름이 일고 쨍쨍한 햇살이 쏟아지는 같은 장소는 제주에선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한 장소가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살 수 있는 건 정말 감사한 행운이었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이 곳에 살아 볼 수 있어 모든 것이 좋았다.


육지에 돌아와 만난 지인들이 묻는다. 제주도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였어?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느 한 곳이라고 꼽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머릿 속에는 출렁이는 바다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지나가던 투명한 바람, 아리도록 눈부신 하늘과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 조용한 마을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일렁이는 장면이 마음속에 고요히 밀려 들어왔다 사라진다.



육지로 돌아와 제주 상념에 자주 젖는 내게, 파트장이자 동료이자 제주이웃이었던 좋은 언니 지영님은 말했다. "그래, 괜히 건드리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 같은 그리움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한동안은 멀찍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제주는 그런 곳." 아, 우린 같은 마음이었다.


내 인생에 다시 제주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때는 제주도 변해있고 나도 많이 변해있어 예의 그 푸르던 마음 그대로 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나에게 가르쳐준 것, 만나게 해준 것, 알려준 게 너무 많아 정말 고마운 섬.


제주에서 겪은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 프로젝트, 서비스 오픈과 개편, 집들이, 여행, 서핑, 다이빙, 자전거, 처음 도전해본 요리들, 처음 맛본 술과 와인들, 친구들과 밤새 추던 저스트댄스, 제대 앞을 수놓은 벚꽃과 바구니 가득 캐본 고사리,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가파도의 풍경, 홍성방 짬뽕, 할아버지의 장례식, 오빠의 결혼, 집 앞을 수 놓던 수국과 치자나무의 향수보다 진한 꽃내음, 눈 내린 한라산..


내 성격의 하자랄까. 나에게 보이지 않게 주고 있는 것들을 늘 몰아내고 몰아내보고 싶고 스스로 외로우려 하는 그 아이러니한 마음의 빈 곳들을 소리없이 조용히 채워준 섬.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내곁에 존재한다는 일상의 감사와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2년의 시간. 제주도는 내 인생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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