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서 적응한 10가지
코로나로 난리판국 세상이지만 미국살이 8개월 시점에서 정리해보는, 미알못 초짜에겐 적응이 필요했던 소소한 주거생활 특이사항 리스트 기록해본다.
1. 열쇠 챙기기
도대체 누가 미국더러 선진국이래! 한국은 도어락 문화가 너무 보편적이었지만 여기선 공공기관 몇 곳 빼고는 도어락 본 적이 없다. 매일 아파트 현관 열쇠와 대문 열쇠 우편함 열쇠 꾸러미 챙기는 것이 일. 첨엔 자주 깜빡했는데 요즘은 외출 앞두고 열쇠 꾸러미부터 챙기게 된다. 왜 동네 마트며 관광지며.. 가는 곳 마다 한국에선 쓸 일도 없는 열쇠고리를 그렇게 주구장창 팔아대는 지 알겠다.
2. 바닥 카펫 문화
나무로 지은 집이 많다 보니 층간 소음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온돌 문화가 아니다 보니 소음 방지와 바닥 냉기 보완엔 카펫 바닥이 필연적 선택이었겠지 싶다. 아파트 입주 할 때 새 카펫을 깔아주긴 했는데 밥 먹고 과자 먹고 뭘 흘릴 때 마다 모든 부스러기가 카펫 오라기 속으로 숨어버리니 이걸 속 편하다고 해야 하나? 불안해 죽겠다고 해야하나? 한국에서처럼 청소기 밀고 전동 물걸레까지 싹 해야 반짝반짝 빛나는 마룻바닥 밟고 속이 후련할텐데 여기선 내 집 바닥에 뭐가 있는지 확인이 안되니 방바닥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엎드리고 구르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게 된다. 나중에 애라도 생기면 이 카펫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옆집 보면 카펫 위로 신발까지 신고 다니던데... 저 섬유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생각하면 약간 공포.
3. 거실과 방에 천장 등이 없는 것
밤 비행기를 타고 와 새 집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 쯤이었는데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킬 불이 없어서! 전등이 없다 전등이. 다음 날 날 밝자마자 마트에서 장 스탠드 부터 잔뜩 사왔다. 스탠드가 있어도 위에 박혀 아래로 내리쬐는 빛이 없으니 전반적인 밤 생활이 어둡다. 밤 길 걷다보면 창 밖으로 비치는 동네 사람들 집도 죄다 어둡다. 밤도 긴데 어쩜 이렇게 어둡게 사나 몰라. 살아보니 영화 속에서 무드 넘치고 분위기 있던 외국집들의 비밀을 알겠다. 천장등이 없이 무드등과 간접 조명만으로 어둠을 밝히니 그 안에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는 것 자체가 동화처럼 분위기 있고 로맨틱해 보였겠지. 정말이지 집 밖 가로등도 어둡고 실내도 어둡다. 저녁 다섯시면 전반적으로 그냥 다아, 온 세상이 다아 어둡다.
4. 마트에 가위 들고 다니기
우편함으로 할인쿠폰이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는데 잘 모아두면 이거 정말 요긴하다. 패스트푸드점은 물론이고 각종 마트 세제, 티슈, 샐러드, 냉동식품, 영양제, 물티슈, 면도기, 계란에 매트리스까지. 1+1도 많고 2불, 5불, 7불 할인! 와 이런 걸 안모으고 배기냐구! 외출 할 때 마다 전단지 찾아 오리는 재미도 쏠쏠한데 이젠 쿠폰북을 통째로 챙기고 마트 갈 때 마다 가위를 들고간다. 장 보다가 마침 내가 사려는 물건이 쿠폰북에 있으면 현장에서 가위로 오려 결제한다. 내 이렇게 핸드백에 가위를 넣고 다니게 될 줄이야.
5. 히터생활
내가 사는 동네는 일년 중 절반이 겨울이라 하반기 내내 춥고 눈도 많이 온다. 다행히 거주 중인 아파트 옵션이 난방 무료인지라 첨엔 "온종일 히터를 틀면 되겠거니 걱정 없네" 싶었지. 날 추워지기 무섭게 히터를 가동했는데 웬걸. 몸도 정신도 아메바처럼 녹아내릴 뻔 했다. 히터를 세게 틀면 더운 공기에 기력 다 뺏긴다. 따뜻하긴 한데 사람이 완전! 무기력해진다. 무료라고 거 좀 따뜻하겠다고 좀비처럼 살 순 없잖아? 요즘 우리는 최소한의 히터만 가동하고 집에선 가디건이나 후드를 걸쳐입고 산다. 그래야 심신도 덜 혼미해지고 정신차리고 살 수 있는 듯.
바닥을 절절 끓여 집을 덥히는 한국의 보일러 방바닥이 그립다. 장점이라면 집에서 대충 잠옷만 입고 퍼져 있던 한국보다 가디건이나 바슬한 니트류를 갖춰 입고 좀 춥게 살다보니 정말 영화 속 훈훈한 장면처럼 살아지는 느낌적 느낌?
6. 다람쥐 노루 딱따구리 모든게 신기하지 않다
주방에서 밥 짓다 보면 창 밖에 노루가 지나가고, 청솔모가 온동네를 뛰어다닌다. 처음 봤을 땐 놀라 자빠졌고, 두번 째 봤을 때 흥미로워 하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 촬영도 했는데 이제는 이 것들이 내 앞을 지나가든 뒤를 지나가든 나랑 나란히 걷든 그러려니 한다. 엊그제는 남편과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묘한 소리가 나서 보니 딱따구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앞마당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세게 쪼아대면 뇌진탕 걸리지 않을까? 커피 마시며 딱따구리의 뇌진탕을 걱정하다니. 여기가 미국이라 가능했을 대화 중 하나.
7. 화장 안하고 다니기, 편하게 입고 다니기
아니 이렇게 남한테 관심 없을 수가 있나? 편하다. 정말 편하다. 너무 편하다. 난 원래부터 패션왕도 뷰티왕도 아니었어서 더 더 좋다. 여기선 누가 오늘 뭘 입었는지, 화장이 예쁘게 먹었는지 아닌지 아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같이 막 하고 다니니 이렇게 좋을 수가! 정말 너무 편하다. 저절로 화장품 다이어트 되고 피부도 숨쉬는 느낌. 그나마 멋내보려고 가져온 옷들도 한 번 꺼내입은 적이 없다. 입으면 나 혼자 엄철 튈거야...
얼마 전 좋은 동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 집 호스트에겐 3살 아들이 있다. 비싼 집에서 좋은 가전을 쓰고 사는 사람이, 같이 온 5살 자녀 엄마에게 자기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못입는다며 옷 한 박스를 건내더라. 이웃 아이 먼저 입히고 나중에 애가 좀 크면 자기 아이 입히게 도로 갖다 달라구. 안입은 옷을 양보하다니 그럴 수 있다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각종 홀리데이 때 마다 집은 그렇게 각종 장신구와 소품으로 반짝반짝 예쁘게 꾸미고 잘해놓고 살면서도 옷은 상대적으로 정말 편하게 입구 다닌다. 절약과 공유를 좀 다른데서 하는 것 같다. 신기하다.
8. 팁
도대체 이 놈의 팁 문화는 왜 있는걸까? 얼마를 어떻게 줘야 하는지 항상 고민스럽다. 외식 때 마다 종업원의 서빙을 받으려면 팁을 주는 것은 의무인데, 이 팁의 본질은 어떤 사람한테 영향을 미칠 땐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말하는 듯 하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 손님으로서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 → 권리를 행사 할 땐 그에 따른 의무도 부담한다 → 의무는 돈! 팁을 줘야 함 → 팁을 안주면 부리지(?) 못한다.
한마디로 돈도 안 줄거라면 타인을 함부로 부리지 말라? 음식 값은 말그대로 음식의 값이지 사람 쓰는 비용은 아니니까, 팁 주기 싫으면 자기 일은 자기가 하라 이건가보다. 그래서 한국처럼 외식문화가 발달하기 보다 집에서 해먹는 사람들이 많고, 자동차도 자기 집 차고에서 직접 고치고, 머리카락도 집에서 직접 자르는 사람들이 많나보다. 사람을 쓰려면 다아 돈이고 다아아 팁이니까. 이럴 때면 팁 없이 서비스 왕창 푸짐한 한국 생각이 자주 난다.
9. 자동차는 소모품
대중교통 체계가 미비한 이 곳에 자동차는 필수적인 이동수단이다 보니 차를 좀 막 굴리는 것 같다. 고장나고 고쳐쓰는 데 쿨하다. 딱 봐도 결함이 있어 보이거나 부서진 차를 도로에 끌고 나온 모습도 보기 흔하고, 자기 집 차고 문 열어두고 직접 뚝딱뚝딱 차 고치고 있는 모습도 보기 흔하다.
얼마 전 같은 아파트 이웃이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서 남편이 수리센터에 동행했는데, 조수석 살짝 찌그러진 문만 교체하는데 7,000불이 들었다고 한다. 상대 과실 100%였기에 다행이지 조금만 책임소재를 분담했어도 매우 부담스런 비용이 들 뻔 했다. 수리비와 인건비가 이리도 후덜덜 하니 고장이 나도 유튜브를 보든 이웃의 도움을 받아 대강 직접 고쳐 타는 수 밖에. 게다가 나같은 이방인에게 타국에서의 사고는 참으로 처리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니... 자동차가 소모품이고 아니고를 떠나 언제나 살살 항상 안전운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10. 코로나를 겪으며
한국에 미국 뉴스가 좀 격하게 나가는 것 같긴 하다. 상황이 안좋은 것은 맞지만 그렇게 사회가 통째로 마비 된 정도는 아니다. 한국만큼 일찍이 마스크의 중요성을 인식해 대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 방역에 힘쓰고 있는 듯 싶다. 길에서 마주치면 멀리서부터 서로 일찌감치 떨어져 걸어오는 사회적 거리두기도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고, 마트에 가도 줄서서 손 소독 후 제한인원에 맞춰 순서대로 입장한다. 분리수거 지침이라던가 도서관, 헬스클럽 등 공공장소 이용 규칙도 유연하게 변화되었고 사람들도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사태를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다. 비극적인 날들 속 각종 공고문이나 뉴스, 대담 속에서 종종 유쾌하고 명랑한 대사를 엿볼 수 있어 신기하다.
++정리하며
얼마 전 미국 수전을 두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설전 중인 것을 보았다. 온수와 냉수 꼭지를 따로 돌려 물 온도를 맞춰야 하는 미국의 수도꼭지를 두고 누군가 "아직도 이런 구식 수전을 쓰고 있는 미국을 보고 어찌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참 많이 발전했다" 는 요지의 글을 쓴 것이 게시판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모은 것이다. 댓글에서 다양한 반응을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은 땅덩어리 넓고 자원 강국, 군사력 강국, 풍부한 먹거리 말고는 세부적인 것에서 한국 못따라 오네요. 뭐든 엉성하고 야무딱지지 못한, 한국 90년대 쓰던 물건 투성이에요. 이게 세계 최강 미국 맞나 싶어요" / "한국은 모든 걸 새로 지은거니 미국보다 최신 물건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요. 그렇다고 미국이 왜이러냐 선진국 맞냐, 한국이 선진국이다 라고 하는 건 개구리 올챙이 적 잊은 교만함 아닌가 싶네요." / "전 신호등 체계도 그렇고 애들 학교 성적 처리 시스템도 그렇고 미국이 정말 선진국인 거 같던데요. 미국은 뭐든지 빠르게 도입하려고 하면 그 어디보다 빠르게 도입하는 것 같아요."
개중에 공감한 건 "아날로그가 내구성이 좋아서" 라는 댓글이다. 디지털 장치들이 편하고 좋은 건 맞는데, 고장나거나 전기가 끊기거나 하는 경우 수리공을 부르면 이 나라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고. 한국이면 전화 한 통에 30분 내 24시간 아저씨가 밤늦게도 오고, 새벽에도 오고 하지만 이 곳에서라면 어휴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하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문물에 관심도 많고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으면 섭섭하기도 하고 갖고싶고 한데, 여기는 남에 대한 관심도 적어서 한 번 고른 건 잘 안 바꾼다고. 그래 맞다. 여긴 좀 늘 남이사~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이 곳에 처음 와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것 모두 여기 사람들은 별로 불편해 하지도 않더라. 서로 다른 생활 방식에서 오는 생각 차이 가치관 차이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일단 8개월 사는 동안 이국 땅에서 마주한 낯선 것들은 좋은 것 후진 것으로 가름질 하지 않으려, 최대한 잘 녹아들어 지내는 것을 목표로 지내왔다. 그럼에도 하나하나 비교하게 되고 헤짚어 보게 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가끔은 너무 구식이라 놀랍고 때로는 천조국 특유의 엄청난 스케일에 기염을 토하며 매일이 새로웠던 날들... 남편과 고군분투 불타는 전우애로 뜨겁게 지지고 볶으며 웃고 떠들고 재밌게 지냈다. 이렇게 적응해 자알 사는 것이, 비싼 땅에서 비싼 밥 먹고 비싼 시간 보내며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당장의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최선이었고.
참고.
저는 미국 동부(업스테이트 뉴욕)에 살고 있어요.
전형적인 미알못으로 미국 온지 딱 8개월 되었어요.
아파트에 살고 있어 하우스 문화는 잘 몰라요.
미국은 주마다 또 참 많은 것이 다르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