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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리타 Mar 27. 2020

미국학교 선생님들의 자동차퍼레이드

배우고 싶은 위트와 감성

밖에 왜 이렇게 애들이 많아? 처음 보는 풍경이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나와 각 집 마다 드문드문 화단을 서성이고 있었다. 코로나로 뉴욕주 전체가 셧다운 중이고 모든 초등학교가 휴교인데 아이들이 갑자기 왜 다 튀어 나왔을까? 아는 얼굴 몇이 보여 창 밖을 향해 인사했다.


하2~ 너네 왜 다 나와있어?

우리 오늘 퍼레이드해요!


저마다 직접 그린 무지개 피켓까지 들고 있었다. <I LOVE GES>  <I ♡ Mrs.Mirabile!> 이게 다 뭐야? 학교 선생님이 차타고 퍼레이드를 온단다. 코로나로 오랜시간 학교에 못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직접 방문순회를 다닌다고. 맙소사 너무 깜찍한 발상이야!


간만에 외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봄 햇살 아래 몹시 들떠 있었다. 각자의 피켓을 점검하며 날씨를 즐기던 찰나 마을 어드메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린다. 우왕좌왕 하는 사이 긴 차량행렬이 동네를 메우기 시작했다. 빠방빠방!


차는 한 두대가 아니었다. 30대는 족히 되어보이는 차량들이 순서대로 마을 입구에 진입해 경쾌하게 짧은 경적을 울리며 동네 한바퀴를 구석구석 돌기 시작했다. 프리스쿨 선생님부터 모든 학년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 수위 아저씨, 교직원 모두가 각자의 차를 타고 동네 순회를 하는 것이다. 호탕한 경적소리에 많은 이웃들이 발코니로 뛰쳐나왔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창 밖으로 구경나온 모두가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팔짝팔짝 뛰었다.



선생님들은 저마다 개성으로 차를 꾸며왔다. 본체에 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써붙이기도 했고, 트렁크에 풍선을 잔뜩 매다는가 하면 조수석에 키우는 강아지나 커다란 인형을 태워 오기도 했다. 천장에 종이왕관이나 히어로맨이 얹어져 있기도 하고, 어느 차는 개인위생과 청결을 잊지 말라며 차창에 비누와 몸을 닦는 스펀지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차에는 두툼한 매직으로 <We are STRONG!>, <GES STRONG!!!>(G/** E/lementary S/chool), <STAY HEALTHY AND KEEP LEARNING. WE MISS YOU>, <BE #POSITIVE>, <WE LOVE YOU> 등의 문구가 붙어있었다.



아이는 담임인 Mrs.Mirabile 차가 지나가자 피켓을 더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선생님도 차 안에서 아이의 이름을 외치고 손키스를 날리며 격하게 화답해주었다. 뒷자리에 함께 탄 선생님의 자녀와 가족들은 가까이 오지는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길가에 꽃잎을 뿌렸고, 조수석에 앉은 곰과 공룡 인형들도 이웃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려운 시국, 불안한 나날 속에서도 희망을 나누고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 이들의 위트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지역사회에 짧은 축제가 만들어 진 것이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떠나간 10분 간의 퍼레이드는 뇌리에 뭉클한 감동과 잊을 수 없는 어떤 강렬함을 남겼다. 모두가 잘 있음을 확인하고, 당장 만날 순 없지만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진짜 아름다운 10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왜 피켓에 무지개를 그려 넣었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그랬는데,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한대요."

큰 비가 세상을 휩쓸고 나면 신은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희망의 언약으로 무지개를 띄운다고 한다. 그 무지개를 기다리는 요즘, 무섭고 답답하고 힘들지라도 마음의 무지개까진 잃지 말아야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지내야지. 깜짝 퍼레이드가 선사해준 위트와 희망의 메시지에 동네 아이들만큼 많이, 어쩌면 더 많이 감동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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