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처음 겪는 미국 추수감사절. 내가 사는 동네는 축제마냥 들썩인다. 마트마다 칠면조와 크렌베리, 오렌지색 꽃들을 화려하게 진열해놓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상냥히 눈을 맞추며 Happy Thanksgiving 을 외친다. 상점에선 행복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일찍이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빨간 포인세티아와 솔방울로 대문과 마당 곳곳을 장식해준다. 타운 전체적으로 축제 분위기. 아무래도 추수감사절은 다가오는 성탄과 연말의 시작을 알리는 12월 연휴의 포문 역할을 하나보다.
내가 듣는 ESL 클래스의 화요일 선생님은 중학교 교사를 은퇴한 70대 할아버지인데, 어제 직접 구운 빵과 크림을 가져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며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저녁 수업 중 달콤한 케익냄새에 흥분한 나는 그가 코 앞에서 빵을 자르는 동안 읽어보라고 나눠 준 종이에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고 맛있는 냄새 때문에 읽을 수가 없다며 행복해했다. 진짜 당신이 만든거냐고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날 보며 그도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클래스를 매주 두시간 씩 무료로! 유쾌하게! 이끌어주는 것만으도 고마운데 빵까지 직접 구워왔다니 너무 고마운 일 아닌가?게다가 집에서 추수감사절 전용 패키지의 종이접시와 티슈, 크림을 퍼낼 스푼까지 꼼꼼히 챙겨나온 수고만 생각해도 고맙다는 표현은 빵빵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냐고.
열화와 같은 피드백을 선보인 내가 금세 한 접시를 뚝딱 비워 버린데 반해 다른 이들은 꽤 시큰둥했다. 아아주 천천히 먹는 사람, 접시를 받아놓고 손도 대지 않는 사람, 받기도 전에 견과 알레르기가 있어 먹지 않겠다고 거절한 사람, 저녁 때 디저트를 먹지 않는다는 사람... 먹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아 케익이 꽤 남아 버렸다. 식탐 많은 나로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먹기를 사양한 인도인 대부분이 특유의 리듬이 섞인 스타카토 발음으로 매우 건조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나는 혹시 선생님이 무안하기라도 할까봐 이거 진짜 맛있는데! 케익 사진 찍어도 되지? 향이 완전 좋아 등을 지껄이며 계속 오바했다. 진짜로 맛도 좋았지만 고령의 할아버지 선생님을 향한 약간의 응원도 있다. 그 나름 맛이 괜찮을까, 양이 모자라진 않을까 고심하며 잘 먹을 학생들을 생각하고 이렇게 예쁜 포장까지 해온걸텐데 이만큼이나 남아버리면 좀 김새지 않을까 싶은 오지랖.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에게 홈메이드 케익도 못먹어본 촌스런 한국인으로 비쳐졌을지라도 준비해온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깜짝선물에 대한 땡큐 피드백은 충분해야지 나름 의도한, 진심의 리액션이다. 양껏 오바 후 기분도 그만큼 좋아졌으니 잘된 일. 격한 날 보고 피식 웃는 인도 애를 보며 '야야 니 반응이 건조하니 내가 더 난리 친거잖아'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 얻어먹은 케익 얘기로 흥얼거리자 남편이 말한다.
“근데 아내는 리액션 잘하는 건 좋은데, 그 다음도 생각 해야 해."
이건 대체 뭔소리? 무슨 뜻인지 묻자 사람이라면 으레 베푼 후 '그럼 너도 담에 날 위해 뭔가 해주겠지' 바라지는게 인지상정이니, 좋았으면 좋았다고 표현하되 실제 느낌 그 이상의 액션을 취할 때는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란 뜻이란다. 아니 좋았으면 좋았다고 맘껏 표현하고 맘껏 액션하면 되지 뭐 그렇게 팍팍해? 남편은 이제 우리는 모든 리액션엔 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부가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나이임을 잊지말라고 조언했다. 그래 이해는 하는데, 그런 거 어떻게 다 생각하면서 행동하냐고.
내 피드백은 뭐든 원래 좀 격하다. 항변하자면 나도 별 생각 없이 격하게 반응 하는 건 아니란 거. 뭐 예전부터 누가 뭘 잘 해주면 최선을 다한 몸부림으로 기쁘게 반응하고 싶긴 했다. 태생이 그런건지 이 습성은 아주 어릴 때 부터 있었던 것 같고.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나. 2주간 러시아 출장을 간 아빠랑 통화를 하는데 당시 국제전화비가 무지하게 비싸서 엄마는 내게 수화기를 건내주며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얼른 해~" 급하게 차례를 넘겼다. 나는 긴 설명 할 새도 없이 후다닥 "아빠 빨리오세요 보고싶어요. 그리고 곰인형 사다주세요 곰인형!" 을 외친 뒤 전화를 끊었다. 동화책 보면 여자아이들은 죄다 부드러운 갈색 곰인형을 안고 다니던데, 오빠가 있는 나는 말랑한 곰인형 대신 플라스틱으로 된 후레쉬맨 관절피규어가 많았고 당시 인형을 재우거나 곰인형을 안고 자는 등의 여자아이스러운 행동이 해보고 싶었다. 사달란 말은 가슴에 꽤 묻어놓았다가 터뜨린 것인지, 입 밖으로 뱉고 나자 인형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 하루종일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른 아빠가 동화처럼 보드라운 테디베어를 품고 현관 벨을 울리기만 기다렸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의 트렁크를 펼치자 정말 곰인형이 나왔는데 근데 곰인형이 왜이래? 내가 생각한 솜털 곰인형은 아니었다. 아빠는 러시아 장인의 손길이 살아 숨쉬는 어느 조각가의 곰 작품을 사온 것이다. 나무로 된 몸통에 섬세하게 조각을 파서 털을 재현한 삼형제 목각 곰시리즈였다. 딱딱해서 안고 자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다정한 눈알도 없는, 나무 조각을 파낸 콩알만한 음각이 동공 그 자체인 나무 인형이었다. 게다가 나는 나만 가질 수 있는 딱 하나의 작고 귀여운 곰 인형을 원했는데, 이 목각곰 시리즈는 세마리나 되어 어떤 놈에게 정을 줘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아주 실망했다.
"아빠, 근데 이건 곰인형이 아닌데..."
"이게 왜 곰인형이 아니야, 이런 곰인형은 너 밖에 없을 걸?"
나만 있는 거 아닐 걸요. 내 품에 있던 목각곰 중 제일 큰 한 놈은 이미 오빠 손으로 넘어간 후다. 작은 곰 두마리만 양 손에 쥔 채 잠시 멍했다. 아빠가 왜 이런 곰을 사온걸까 조금 의아하지만 이어 든 생각 '내가 실망하면 아빠가 속상 할 거야'. 이게 아니라고 떼쓰는 대신, 좋다고 이런 곰은 정말 나밖에 없을 거라고 기뻐하는 쪽을 택했다. 곰 두마리를 쥐고 거실을 뛰어 다녔다. 나름의 정붙이기도 시도했다. 딱딱한 목각곰 둘을 양 손에 쥐고 잤고 밥 먹을 땐 식탁 한 쪽에 올려놓는 행동도 이틀 쯤 했다. 물론 보드랍지도 않고, 표정도 없는 나무곰에게 마음 주기란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어서 곧 TV 장식대 아래로 들어갔다.
뭐가 됐든 어린 내가, 처음으로, 속마음보다 과하게 기쁨과 오바의 피드백을 해봤던 날의 기억은 나름의 강렬하고 뿌듯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먼 길 다녀온 아빠를 힘빠지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으니 기특했다고도 생각한다. 다행히 곰인형에 대한 미련도 금세 사라져서 플라스틱 후레쉬맨만 갖고도 문제 없이 컸다. 이 후로도 무언가 선물을 받으면 과하게 좋아하는 오바쟁이 모습은 계속됐는데 이건 아마 윗 형제에게 물려 받는 물건이 많은 '둘째' 들만의 습성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기뻐라하는 내가 있으니 나도 잊지 말아달라는.
격렬한 피드백은 물건 그 자체보다 받은 애정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표하는 순수한 마음이자, 나를 기쁘게 해준 상대도 같이 기쁘길 바라는 선한 마음인건데 이제 리액션 그 다음 단계까지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니 좀 슬픈 일이다. 받은 것에 상응하여 돌려줄 수 없는 자는 애초에 받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님 받고도 덜 기쁜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남편에게 항변하고 싶다. 근데 말야, 나도 무작정 기뻐한 게 아니라 다 생각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더 기뻐한 일이거든?
미국에 오고 이 사람 저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식사도 초대 받고, 반찬도 얻어 먹고, 차도 얻어 타고. 도움을 얻으며 매번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고 나름 마음의 빚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이가 있는 집엔 아기 선물해야겠다 즐거운 마음으로 골랐고, 술을 좋아하는 집엔 와인을 가져가야지 챙겨두었으며, 얻어 먹었으면 잊지 않고 다음엔 내가 낸다. 이런 건 선한 마음으로 자연스런 회전을 이뤄야지 뭘 받았으니 뭘로 갚아야지, 얘가 이만큼 기뻐했으니 이에 상응하게 갚겠지 생각하고 기대하는 건 피차 피곤한 일이다. 나의 ESL선생님이 내가 케익을 먹고 제일 격하게 기뻐했다고 내게 뭔가를 더 크게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맛있게 먹는 놈은 하나 더 주고 싶지 않을까? 실제로 하나 더 먹었고. 훗. 아빠가 바쁜 타지 출장 중 가족의 전화를 받고 곰인형을 고르며 딸에게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바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한 인형에 부합하진 않았지만 내가 기쁜 척 오바하며 양껏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이들의 마음 그 자체를 알았고 느꼈기 때문이니까. 추수감사절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고, 기념 선물 약속을 잊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선의 그 자체니까.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어떤 선의를 나누고 받았을 때, 뒤를 염두하지 않고, 더 많이 과하게 기뻐하고 오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오바는 내가 당신의 선의에 감동했으며 당신을 많이 좋아한다는 걸 꼬옥 보여주고 싶단 마음 그 자체니까. 사는 동안 마음만큼의 화답도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