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착 3개월
4월 폰으로 기록하던 글. 비행기 타느라 마치지 못한 그 채로 기념이 되리라 남긴다.
잔여연차와 안식휴가까지 모두 종료. LA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디트로이트 한 번만 경유해 바로 한국에 들어갔음 참 좋았겠지만, 델타항공이 두 번이나 일방적인 스케쥴 취소를 하더니 나더러 갑자기 LA까지 거쳐가란다. 17시간 비행이 순식간에 24시간 짜리로 불어났다. 어쩔 수 있나. 지금은 무슨 비행기든 떠주기만 하면 감사다. 막상 공항에 와 줄줄이 취소 된 비행편 목록을 보자 더 아찔하다. 두번의 경유를 하는데 하나라도 스케쥴이 어긋나면 너무 난감할 것 같다.
집에서 출발 12시간 만에 LA에 도착했다. 모든 면세점과 식당이 문을 닫았고 공항은 유령도시처럼 썰렁하다. 비행기도 한적하겠다 싶었는데 잦은 국내선 취소로 뜨는 비행기에 사람이 몰린 탓인지, 3열 좌석 중앙열만 강제로 비운 채 만석이었다. 마스크를 하고 페이스 쉴드도 덮었다. 마스크만 착용한 서양인들 사이에서 유난스런 모양새라 좀 떨떠름 했지만 LA 오자마자 넘치는 동양인들 가운데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방호복에 라텍스장갑, 신기한 벙거지쉴드까지. 역쉬 재기발랄 아이디어가 넘친다.
여기서부턴 대한항공을 타고 간다. 델타가 제멋대로 경유지를 조정하더니 막판에 댄항공을 타게 해주네.
LA만 와도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만세다. 밤 11시 휑한 공항 카운터에 대한항공 유니폼 직원 열댓명이 우르르 들어가 촥촥촥 카운터에 불을 밝히고 상냥하게 웃으며 응대를 시작하는 걸 보자마자 피로가 가시고 안심이 된다. 최종 수속 후 그지 꼴을 하고 대기하고 있자니 스스로 비루함이 느껴져 유일하게 문을 연 스벅에서 아이스라떼 벤티를 주문했다. 스벅 커피 같은 건 격리기간동안은 만나지 못할 사치템이 될 듯 하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꼬수분 라떼에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온다. 나흘 간 너무 바빴다. 자리를 비울 미국 집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트렁크 하나에 짐을 몰아넣고, 이웃들 집에 꽃배달을 했다. 도움을 많이 얻운 고마운 이들을 위해 고심해 꽃을 골랐고, 출국 전 날 서둘러 동네를 돌았며 짧은 쪽지를 붙여 대문 앞에 한다발 씩 두었다. 뒤늦게 발견한 이웃들의 즐거운 인사를 끝으로, 우리 쿨하게 쨍하게 기분 좋게 이제 진짜 안녕! 한국 가면 빡센 자가격리가 기다리구 있다. 힘내자.
8개월. 소중했던 시간들을 뒤로. 남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