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출산하는 유난
10개월 카운트다운 D-10 단위로 접어들었고 아기는 언제 나와도 좋은 정기산 시기가 되었다. 기쁨과 행복의 임신 기간인만큼 또 두렵고 어색한, 한국이면 안해도 됐을 경험에 대한 기록.
1. 내가 먹을 미역국 내가 끓인다
먼저 출산한 친구들이 임신 중기부터 강조하던 말. "미역국 많이 끓여두도록" 출산 후 나오는 병원식 사진을 보는데 오믈렛, 냉동피자, 우유, 콜라, 바나나... 와 첨엔 정말 놀랐다. 양키들은 이거 먹고 회복 할 수 있는거야? 미역국은 틈틈이 기운 날 때 무조건 많이 냉동실에 끓여 채워두라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받은 후 소고기미역국, 황태미역국, 표고들깨미역국 각 종 변주를 주며 며칠 내내 미역국만 한솥을 끓였다. 틈틈이 남편 먹을 카레도 같이 해놓자니 에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출산 후 바로 나 내가 먹을 미역국이라니 이건 뭐 간단하게 휘릭 만들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타지에서 무조건 회복을 잘해야한단 필사의 의지로 아주 심혈을 기울여, 한국에서 공수해온 산모미역을 바락바락 씻고 육수를 내고 정성스레 국을 달인다. 그렇게 열다섯팩 넘는 미역국이 냉동실에 그득 차니 요리하며 내 팔자야 외치던 한탄이 종국엔 흐뭇함으로 바뀌더라. 이 중 절반은 출산병원에 챙겨 갈 예정이다. 한국처럼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가서 전문가 케어 아래 각종 신생아 돌봄 교육 받으면서 때 되면 마사지 받고, 때 되면 갖다주는 고단백 영양식단을 흡입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 불가. 여기서 자연분만은 당일 혹은 1박 2일, 제왕절개는 4박 5일 입원 후 퇴원하게 된다는데 뭐가 이렇게 간단하고 쾌청한 절차인지 무서워 죽겠다. 다른 것보다 식사가 제일 걱정이다.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엉엉.
2. 너무너무 궁금한 아기 몸무게
이 쯤 되면 매 진료마다 초음파를 보고 아기 무게를 가늠하여 산모가 출산하기 좋은 적기를 병원과 의논해볼 수 있을텐데 (온라인 카페를 보니 한국의 절차는 그러한 듯?) 내가 가는 미국 병원은 갈 때 마다 아기 몸무게를 물어봐도 (이 곳 와서 케잌 초코를 달고 살다보니 아기가 너무 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게 왜 벌써 궁금하냐는 반응. 무게를 쟸다 해도 어머 아기 머리가 평균보다 좀 크네요, 다리는 주수보다 좀 기네요 혹은 짧네요 같은 말도 해줄 수 있을텐데 정말 딱 무게만 말해준다. 한국처럼 정성껏 얼평 몸평을 안해주니 그저 평균 쯤이겠거니 생각하고 마음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되는건지, 이마저도 kg이 아닌 lb(파운드)로 알려주기 때문에 열심히 머릿 속에서 단위를 환산해 kg으로 변환하고 한국식 정보에 맞게 내 나름대로 아기가 평균차트에 얼마나 근접한지 추산해보는 절차를 거쳐봐야 한다. 대강 몇 주쯤 아기가 몇 키로인지 알아 두어야 식단 관리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할텐데 이러다 4kg 넘는 아기를 낳는 건 아닌지 그것 또한 무섭다. 엉엉.
3. 중고 감사합니다!
사실 아기침대와 매트리스를 빼면 여기서 새로 산 건 거의 없다. 유모차도 카시트도 기저귀교환대도 모두 이웃들이 쓰던 것을 물려 받거나 중고로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한국이었다면 첫 아이라는 욕심과 때깔 좋은 휘황찬란 각종 아이템, 친구들이 쓰는 고급템에 눈이 높아져 중고는 성에 안찼을런지 모르겠다. 그치만 일단 여기선 서로가 서로의 아이템에 딱히 관심이 없고 (코로나로 모임도 없고..) 한국 돌아갈 생각을 한다면 비싼 가구나 새장비를 들이기도 부담스럽고 (전자제품은 전력 호환 맞추기도 번거롭고), 아기들은 금세 큰다고 하니 굳이 뉴템에 눈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성당 이웃언니의 이제 10살 아들이 쓰던 파란 차양의 유모차를 물려 받았는데, 말이 10년이지 가라지에서 어찌나 깔끔하고 깨끗하게 관리 보관 되어 있던지(설명서까지!) 연식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아주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업어 올 수 있었다.
며칠 전엔 미국에서 함께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 부부식사를 하는데 그 부부가 프레지던트데이딜 때 새 유모차+카시트를 500불에 온라인 구매했다며 막 배송 온 따끈한 신제품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미국인인 그 집 남편이 나에게 요매저매 유모차 펴는 법을 설명하며 보여주자 한국인 와이프가 말한다. "자랑할 거 없어. 우리 한국 가면 이거보다 세 배는 좋은 유모차를 사야 산책할 때 기 안죽을 걸." 그래, 유모차는 부모들의 간지템이라는데 사실 여기서 남이 뭐 가졌는지 뭐 쓰는 지 굳이 눈독 들일 일도 관찰 할 일도 없이 자기 상황에 맞춰 살면 되는 것 하나는 정말 편하다. 역사를 간직하고 추억을 담은 유모차 바퀴는 여전히 너무나 매끄럽고 튼튼하고, 칠이 벗겨진 수유의자는 쿠션만 새로 싹 빨아 먼지 닦고 하루내내 일광 건조 시켜두니 뽀송뽀송 새것마냥 아주 편안하다. 그래서 중고 너무 환영이고요! 또 먼저 출산한 이웃과 지인들 통해 물려받고 물려쓸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기회도 내내 감사합니다.
4. 그래도 부부 둘이서는 다 못할 것 같아 산후도우미를 고용했다.
코로나로 친정부모님이 미국에 와서 도움 주실 수도 없는 상황이고 초산인데 남편과 둘이 헤쳐 나가자니 신생아 다루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우린 모든게 너무 두렵고. 그래서 임신 9개월에 급하게 뉴욕이나 뉴저지에서 파견 가능한 산후도우미를 찾기 시작했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 너무 많은 정보와 다양한 후기들이 넘쳐나지만 그 와중에 믿을만한 정보를 고르고 선별하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그마저도 코로나로 출퇴근형 산후도우미 서비스는 운영하지 않고 입주형 도우미만 고용 가능한데 가까운 뉴욕에선 구할 수가 없었고 결국 LA에 있는 회사와 연락이 닿아 2주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입주형 도우미에 대한 후기와 평은 너무도 다양해서 (장금이 이모님이 오셔서 음식에 아기 목욕에 산후 마사지까지 너무 완벽하게 해주고 가셨다더라 vs 출산 후 몸도 마음도 힘든데 낯선 사람과 같이 살려니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더 폭발 할 뻔 했다더라) 도우미 고용 결정을 하기 까지도 은근 마음 쓰일 일이 많았는데, 고심 와중에도 일단 양가 어른들의 반응이 너무 달라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부모님 : 잘됐다 무조건 쓸 수 있으면 좋다 이 시국에 도움 받을 방법이 있으면 감사한 일 그마저도 구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갈게 어렵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 해결방법 항상 최후에는 부모가 있다는 걸 잊지말아라. 전화하다가 눈물이 날 뻔 했다.
친정 : 아는 누가누가 미국에서 산후도우미를 불렀는데 딱 기본만 하고 괜히 불러놓고 마음고생했다더라. 도움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남한테 기대하지말아라. 얘기에 화가 났다.
결정은 결국 부부가 하는 거지만 막상 "산후 도우미를 고용하면 어떨까?" 고민을 나누었을 때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괜히 서러웠다.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는 딸이 사람을 쓴다는 것에 대한 우려겠지 싶다지만 지금 마음고생이 문제야 몸고생도 안해야지. 그래도 무조건 산후도우미는 어떻게든 쓰라고 조언줘야 내가 결정하고 숙고할 때 마음이 편하지 볼멘 소리 후 혼자 씩씩 거리다 잠든 밤도 있었다. 도우미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한 지금은 안하면 큰일 날 뻔 했다 싶을 정도로 한결 맘이 편한데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신생아 때 남편과 나 둘 뿐이라 생각하면 아흐, 아직 아기 낳기 전이지만 벌써 마음이 아찔하다.
5. 코비드 검사 및 최종 산전검사를 앞두고
내일은 출산을 앞두고 코로나 의무검사를 하러 내원한다. 검사를 통해 양성일 경우 무조건 제왕절개로, 음성일 경우 분만방식을 선택 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여파로 분만실도 산모만 들어갈 수 있지만 외국인 산모의 경우 통역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 동반 1인을 허하고 있다니 남편이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요즘은 틈나는 대로 냉장고와 냉동실을 채우고 있고 (여기선 매번 차 타고 나가 장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큰 반복미션이다) 순식간에 불어 날 아기 물건과 짐을 대비해 캐비넷과 옷장, 수납공간을 틈틈이 비우는 일을 하고 있다. 나를 위한 미역국, 나를 위한 수유의자와 쿠션, 나를 위한 영양제, 나를 위한 준비는 대부분 완료 됐는데 막상 신생아를 카시트에 채워 집으로 돌아오는 법, 아기를 재우고 먹이고 씻기고 달래는 방법, 토하는 아기를 처치하고 트림시키는 법 아무 것도 모른다. 젖병 열탕 소독이니 젖병의 재질이 어떻느니 유축기를 쓰는 법, 모유를 저장하는 법, 분유를 타는 법도 모른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하다보면 다 알게되겠다만, 그 하다보면의 과정 속에 무지가 부르는 쓴 맛이 없기를 바랄 뿐.
친구가 그랬다. 임신기간도 행복하지만 아기가 나오면 훠얼씬 더 행복하다고. 곧 다가올 아주 빡센 행복의 그 날을 기다리며. 긴장된다. 하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