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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Sep 22. 2023

글을 마치며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 썼다.


맨 처음에는 소설로 쓸 작정이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자 뜻을 버리고 살아가는 젊은 여자에 대해서 써보려고 했다. 첫 장의 초고를 2018년 부다페스트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에 있었던 코스타 커피 2층에서 썼다. 원래 앉고 싶었던 제일 좋은 창가 자리에는 혼자 밖을 보며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는 금발 여자가 앉아있었고, 나는 그 맞은편에서 행여나 누가 훔쳐갈까 노트북을 화장실까지 들고 갔다 오며, 오래전 끔찍한 자살충동에 훼방을 놓았던 의식 속 피라미를 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들을 두고 그것을 돌려 말하기 위해 겪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새로 지어낸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여러 해가 지나도 진척이 없었고, 글쓰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작년 말, 불현듯 그냥 수필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글에서 허구를 걷어내고 내 이야기를 이어서 적기 시작했다.


나는 자살을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고 나 자신조차도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계속 살아가기로 했고,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상대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가 시간이 지나며 진실이 되었다. 영감을 주는 책과 영화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로 긴 시간을 지나왔다. 회복 후에도 항상 잘 지내기란 불가능하고, 다시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앞의 글에서 사람들이 우울한 배경은 제각각이고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까닭은, 실은 내가 우울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남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뜻을 말하기 위함이다. 많은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내가 왜 한때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어쩌다 삶의 의욕을 상실했었는지의 문제로 타인을 설득하거나 위로받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읽음으로써 나는 이미 위로받았다. 다만 우울증을 겪고 있는 누군가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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