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8부에서는 러시아의 명망 있는 지식인으로 묘사되던 코즈니셰프가 6년에 걸쳐 애정을 갖고 쓴 책을 출판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제대로 된 관심과 반응을 얻지 못하며 쓰라린 실패를 받아들이는 대목이 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나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자못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하나 둘 글을 읽고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이런 말을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자신에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소감을 개인적으로 전해왔다.
특히 공감했다는 말을 전할 때 모두의 표정과 말투에는 각별히 조심스러운 태도가 묻어있었다. 아무리 적나라한 글이라도 그것을 쓴 사람의 처지와 심정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음을 알고 있다고, 표면적인 경험은 다를지라도 그런 상황을 관통하는 감정의 편린과 깨달음을 언젠가 느껴본 적 있노라고, 그들의 진중한 고백은 그렇게 들렸다.
나는 그들이 어떤 체험에 근거하여 내 글에 공감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내 글과 상관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내가 한 일은 가슴속에 조약돌이며 조개껍데기처럼 담아두었던 것들을 꺼내서 나름대로 반질반질 윤을 내어 닦아서 창가에 진열해 둔 것이다. 그러자 그 앞을 지나던 이웃들이 저마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하면서 마음의 커튼을 빠끔 들추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나중에 괜찮다면 당신들 것도 구경시켜 달라고, 같이 반짝반짝 닦자고, 내 돌멩이들은 잠시 방안에 남겨두고 한껏 맑아진 기분으로 창밖을 나서고 싶어졌다.
글을 쓰는 동안 진창 같았던 마음이 조금씩 보송해지며 제법 고운 모래사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이상 위로를 받을 구석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게 착오라면 착오였던 것 같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