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유진 Oct 31. 2023

술과 담배

나는 술을 거의 안 마신다. 처음 마셨을 때는 너무 맛이 없었고, 취하기도 전에 토했다. 처음으로 취했을 때는 남들이 보는 데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서럽게 울었다. 그날부로 밖에서는 절대 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술 없이도 남들 보는데서 엉엉 우는 불상사는 몇 번 더 생겼고, 애당초 알코올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몸이라 잘 취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세 잔 마시면 속이 메스꺼워졌고,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담배도 안 피운다. 사실 몇 번 시도했지만 좋아지지가 않았다. 연기가 너무 매캐했고, 용케 들이마셔도 내 머리에서는 니코틴이 어떠한 화학적 작용도 일으키지 않는 것 같았다. 여러 개비를 성냥처럼 태우다 버리는 동안, 이번 생애에는 담배에 결코 중독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몸소 확인했을 뿐이었다.


지나가버린 여름, 넷플릭스에서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를 봤다. 사실 그 영화를 보려고 그 달의 이용권을 결제했었다.


<어나더 라운드>는 중년의 남자 교사 네 명이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직접 실험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술의 힘을 빌려 잃어버린 자신감과 열정을 회복하려고 한다. 음주를 권장하는 내용은 아니다. 결국 작중의 음주는 적정선을 넘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그 무렵 그 영화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나도 조금은 느슨하게 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술은 흐트러질 수 있는 핑계였다. 오래전에는 불만스러운 속내를 꺼내고 싶거나, 감정적이고 나약하고 의존적인 인간이 되고 싶을 때 취하려고 술을 마시곤 했다. 그래서 한 번은 좋아하던 사람이 그런 나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다. 내 모습은 귀엽고 안쓰럽기는커녕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그 무관심과 냉대의 기억이 불러오는 수치가, 점점 술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담배는 자기 학대의 수단이었다. 건강을 해치는 일탈이, 그보다 더 건강하지 못한 마음상태에 어떻게든 위로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담배를 쥔 내 손끝은 하염없이 어색했고, 새로 산 담뱃갑은 늘 한두 개비만 빠져나간 채 서랍 한구석에 숨겨져 있다가 의미 없이 쓰레기봉투의 배를 불려주곤 했다.


술과 담배는 어른의 전유물이다. 의존하기 쉬운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제와 책임을 벗어나고 싶은 어른들이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실은 남들은 별 탈 없이 즐기고 있는데 혼자 그렇지 못했던 내가, 길에서 비틀거리던 내게 꽂혔던 찌푸린 시선을 애꿎은 술과 그 앞의 사람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뭔가가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은 약점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술이 조금만 들어가도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버리고, 기침을 참으며 입으로 담배 연기를 뱉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나는 선천적으로 그런 것들에 기댈 수 없게 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커피도 속이 쓰려서 하루에 한 잔밖에 못 마시는 나는, 항상 절제가 몸에 밸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약점은 없을지언정, 그 자체로 약체인 것이다.


이제는 술과 담배를 영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알코올의 독하고 싸한 향이 싫다. 달뜬 얼굴과 횡설수설이 싫다. 담배 냄새가 배어있는 숨결과 옷가지도 싫다. 시끌벅적한 역전 길바닥에 사람들이 뱉어놓은 가래와 토사물을 마주치기가 싫다.


그런데 너는 그렇게 꼿꼿한 맨정신으로 살아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고, 밤이면 밤마다 길에는 술과 담배와 어깨동무를 하며 만개한 웃음꽃 사이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그 사이에서 홀로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나는 뭣하러 이렇게 제정신으로만 살아가는가 불현듯 미심쩍어진 것이다.


지나치게 꼿꼿한 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흥청망청 시간을 보낸다. 이번 주말에는 선선한 방 안에서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통통한 찐빵 같은 우리 고양이를 품에 낀 채 낮잠을 세 시간이나 잤다. 행복했다. 다음 주말에는 또 무얼 하고 놀아야 하나. 느슨한 먼지가 되고 싶은 서른둘의 가을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감했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