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늘 너무 오래 누워 있었고 오래 앉아 있었다. 그래서 허리를 쉬게 해 주려고 다시 누우러 가면서, 왜 그리 오래 눕고 오래 앉았나 생각해 봤다.
오래 누워 있었던 까닭은 잠결에 와버린 아침을 무시하고 과거의 인연을 회상하느라였다. 아무리 솔직하게 생각하고 또 느끼려 해 봐도 매번 “잘 모르겠다”라는 애매하고 무책임한 결론에 도달하던 상대가 나에게도 있었다. 잘 모르겠다는 핑계로 소중하게 예의를 지켜서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이런 생각해 봤자, 나 혼자만의 회한과 아쉬움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다시금 했다. 그런 부질없는 상념들이 부질없는 섭섭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바쁜 일과로부터 벗어난 주말 아침, 집구석에서 눈을 뜬 나는 갑자기 작고 외롭고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계속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채로, 이대로 하나의 점이 되어버릴 기세로 두꺼운 겨울 이불을 돌돌 말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화장실도 안 가고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를 기세로 그렇게 계속 누워 있었더니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내 주위로 다가와 이불뭉치가 된 나를 문진처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침울한 기분이 아니라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할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정오가 지나서야 첫 식사를 했더니 밥이 너무 꿀맛이었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오래 앉아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오전을 공허한 감정놀음으로 허비해서 오후에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에 만든 투두리스트는 다 해야지. 집 앞 도서관에 다녀오고, 사야 하는 물건들을 차례대로 주문하고, 미뤄왔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오래 집중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황금 같은 주말 하루가 슬금슬금 다 지나가버렸다.
늦은 밤, 공연히 1월의 일기를 들춰보았다. 올해 새로 시작한 일이 매일 자기 전 회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두꺼운 공책을 펼치고 부드러운 볼펜으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적는다. 아무도 보여줄 수 없을 만큼 진솔하게 적는다.
예전에는 너무 좋은 날, 너무 힘든 날에만 일기를 썼다. 정신머리가 요단강 건널 뗏목을 짜고 있었던 무렵에는 거의 매일같이 썼다. 쓸 거리가 있을 때에만 쓰자고 생각한 일기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남짓 쓰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연시 기록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고, 일주일에 두 번 운동하기와 마찬가지로 매일 일기 쓰기라는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고 있다. 매일 밤 나를 기다려주는 대나무숲이 생겼다.
한 달 동안 쓴 일기를 맨 앞장부터 주르르 넘기며 훑어보았다. 맨 앞장에는 올해의 목표가 있었다. 엇, 소목표는 맞는데 대목표가 이거였던가 잠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당황한 감정을 일기에 적었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면 좋은 점이 바로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올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이 이게 맞나,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제 졸리다.
다시 이불속의 작은 점이 되어 잠을 청하면서, 솔직히 작고 외롭고 나약한 자신을 스스로 귀엽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맛있는 거 먹이고, 잘 재우고, 추운 날 든든히 입히고, 실수한 게 있으면 반성도 하고, 멋진 미래 계획도 세우고, 그렇게 존재의 하찮음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쓰담쓰담해주고 싶어서 가끔 스스로에게 나약한 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한 번 죽으면 부활 없이 바로 종료되는 게임 캐릭터처럼 소중하게 키워야 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우울하지 않았는데도 또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냥 열두 시간쯤 자고 싶은 게 본질이고, 기분은 핑계 아니었을까. 오늘 첫 끼니도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