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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Mar 07. 2021

IMF-신자유주의 체질로의 변화가 끼친 영향

IMF 키즈의 생애(안은별)

이 책은 1997년 IMF 당시 10대의 나이로 한국의 공교육을 받고 있었던, 20년이 지난 2017년 30대 성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작가는 이를 IMF 키즈라고 명명한다.) 일곱 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나 역시 작가가 명명한 IMF 키즈에 들어가기에 이 책이 흥미로워 보여서 읽어보게 되었다. 2017년 11월에 출판되었으니 약 3년의 시차가 있다. 이 책은 작가가 7명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사지 말고 그냥 빌려서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요즘 이놈의 다리 때문에 도서관에 가지 못하니 책을 빌릴 수가 없다. 이 때 나타난 구세주 제부, 고마워요 ㅜㅜ)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IMF 키즈의 이미지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는 인터뷰이(인터뷰 받는 사람) 는 전체 7명 중 두세 분 정도만 보였기 때문이다. (김재욱 분, 홍스시 분, 김마리 분) 나머지 인터뷰이들은 그저 나이만 30대일 뿐 굳이 IMF와 엮일 이유가 없는 사람들로 보인다. 심지어 IMF키즈라는 명칭을 굳이 달기에 그 성장 과정이 너무 풍족해 보여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분도 보인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무엇인지 짐작은 가나 사례들이 거기에 부합하는지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이 책의 제목은 어그로라고 생각한다. (3판까지 나온 게 대단. 제목 덕분 아닐까. 나같이 제목 어그로에 낚인 사람들이 많을듯, 역시 제목의 중요성..)

​물론 작가는 서문에서 말한다.

"IMF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무매개적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 시대의 공기다. 이 책에서의 IMF란 바로 그런 것을 가리키며, 그 시대의 공기, 너무도 익숙해진 시간을 사고하게 하는 매개의 기능을 한다."

"나는 IMF 이후의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지배 받게 되었으며 우리 개개인의 삶 역시 다른 시간대로 진입했다는 설명에 동의한다. 우리 모두가 불안과 고단함이 일상이 된 사회, '신자유주의적 삶' 을 견뎌내게 되었다는 사실은 실업과 비정규직, 소득과 자산 양극화, 삶의 질과 관련된 다양한 숫자로 증명된다."

"어쩌면 내가 보낸 이 사회의 30년을, 1997년 이후의 세계의 '진실'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줄 사람들은 이미 가시권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우리는 그 IMF키드의 이야기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 영원히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으로 사실은 내가 그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즉 작가는 IMF로 인해 몰락한 가정이라는 환경을 가진 사람의 사연보다는 IMF가 우리 사회를 신자유주의적 체질로 바꾸어버렸고 그것이 그 사회의 젊은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쓰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 역시 정말 IMF 이후 세계의 진실을 보여줄 진정한 IMF 키즈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좀 더 부지런히 조금 더 적합한 인터뷰이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해야 했던 것 아닐까? 물론 IMF 키즈라는 단어 자체가 단어부터 정의까지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 정의 자체가 다소 게으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두 번째 인터뷰이인 김재욱 씨를 대상으로 쓴 '1997년의 해법, 그 남자의 해법' 이다. 이 책의 핵심이 이 파트에 녹아있는 것 같다. IMF로 인해 아버지는 사업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여러 가지 자영업을 전전하시면서 그는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인터뷰이는 부모님이 광주에서 트럭에서 과자 파는 일을 하시며 힘들게 사시는 것을 보고 다니던 대안 학교(간디 학교)를 자퇴한다. 이후 흩어져 살던 가족이 다시 모였으나 아파트가 너무 좁아서 이모 집에서 재수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IMF 이후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회적으로 없어진 지 오래잖아요. 차곡차곡 쌓아서 뭔가를 한다? 직업이 없는데 뭘 모아요? 아버지는 그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엄마는 나중에 고백하더라고요. 너무 바빠서 너네 클 때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돈도 없었다고.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했을 수도 있었겠죠. 하여간 사교육 받은 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공부를 못했어요. 수학 이런 건 아예 안 됐죠. 공부를 한 적이 있어야지.

50대의 중년이 1년 내내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일단 나와서 앉아 있자' 라는 심정으로 피자집을 계속하는데 옆집에 더 싼 피자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상황은 IMF 이후 세계의 고단함을 축약한다. 정규직, 사회안전망, 복지의 벽은 높기만 하고, 홀로 벌어 홀로 책임지는 영세 개인사업자가 되는 세계로의 진입 장벽은 지극히 낮은 사회, 노동은 더 고되어지고 휴식의 질은 더 낮아지고 노동자는 소비자가 되는 순간 이 울분을 보상을 받으려는 듯 쨰째해지며 결국 대부분의 싸움이 약자와 더 약자 간의 싸움이 되고 마는 사회.

 그는 공교육이 싫어서 대안 학교인 간디 학교를 선택했다. 이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였다. 기자, 출판사 취업을 위한 출판 학교 등에 낙방 후 취업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큰돈을 버는 거라 생각하고 1억 공모전 출품을 위해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당선된다.(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대단하신 분. ㄷㄷ)

 그는 말한다.

"저는 모든 동기가 네거티브한 거 같아요. 하기 싫으니까, 그걸 안 하기 위해 다른 걸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과정은 우리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어차피 가장 좋은 것,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윗세대가 다 차지한다. 그러고 남은 얼마 안되는 초라한 것들이 우리 세대 차지가 되는데 그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은 우리 세대 중 상위 1프로나 금수저들이 다 차지하여 거기 진입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남은 것 중에서 덜 싫은 것을 골라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덜 싫은 것. 최선이 아니라 심지어 차선도 아니라 차선의 차선 정도를 골라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운명인 것인가 하는 생각에 섬뜩함마저 들었다.

1억의 고료를 받은 후 몇 년간 경제 활동을 안 했냐는 그는 질문에 놀아야지 왜 하냐고 답한다. 사회적 정체성이나 직업이나 이런 게 확실하지 않은 상태가 불안하지 않냐고 하니 아래와 같이 답한다.

"요샌 제대로 안정된 애가 하나도 없거든요. 진짜 아무도. 친구 중에 대기업 다니는 애들 보면 오래 못 다니고 일하다가 쓰러지고. 사회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다른 애들도 미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다르다는 위화감은 옛날보단 훨씬 덜해요. 간디 출신 친구들 중에 제가 알기로 월수입 2백 넘는 애는 아무도 없어요. 4대보험도 아무도 없는 거 같고."

이에 대해 작가는 "중산층적인 삶의 모델이 우리 세대 대다수에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모델에 환상도 미련도 없다는 점에서 김재욱 씨는 인터뷰 내내 일관적이었다." 고 서술한다. 결혼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아뇨. 결혼은 못 하겠죠 아마. 이번에 누나 결혼하는 걸 봤더니 대기업에 다녀야 결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모 도움이 없으면 집을 사지도 못하거니와 전세도 2,3억은 하는데 10년 일해서 그 돈을 어떻게 모아놔요...그냥  사회 제도 자체가 잘못된 거 같아요.

  이 인터뷰이 분 엄청 시니컬하고 시크한데 많이 똑똑한 것 같다. 겉으로는 자유분방한 자유로운 영혼 같은데 알고보면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 아무튼 매력 쩌시는 것 같다. 이 책 작가는 진짜 이 분한테 감사해야 할 듯. 이 분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IMF 외환위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에게 전과 후를 가르는 엄청난 사건이고 경험이었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데 한국전쟁 같은 거라고 해도 정말 폭탄이 떨어진 건 아니었잖아요. 진짜 어떤 스펙터클이 있었다기보다, 한 방에 바뀌긴 한 건데, 여파가 점점 온 거죠. 사건 자체도 물론 큰일이었지만 이후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이런 것들이 제게 미친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냐고 한다면, 백 프로 그렇다고 보긴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자체는 저희 삶을 규정짓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고. 세대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도 똑같은 일을 겪으셨으니까. 전쟁 같은 변화가 사회 내에서 일어난 거니까.

 정말 공감이 간다. IMF 외환위기 자체가 당장 폭탄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전쟁에 준하는 변화가 주어진 것이고 그로 인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우리 삶을 규정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세대로 볼 필요가 있냐는 그의 질문에도 공감이 간다. IMF 외환위기로 인한 타격은 특정 세대에게 주어졌다기보다는 특정 환경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부부 중 한 명이 공공 기관에 다닌다면 그 가정이 IMF로 인한 타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 기관은 해고될 염려도 없고 퇴직 후 연금도 넉넉하다. IMF 시기 급매로 저렴하게 나오는 부동산으로 이익을 볼 가능성도 높다. 이들의 자녀는 성장한 후에도 그 혜택을 누린다. 이후 서울 집값의 가파른 상승세를 감안하면 오히려 그런 경우 그 가정은 IMF로 인해 혜택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부모님 두 분 다 공공 기관에 다니는 인터뷰이가 등장한 것이 의외스럽고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이었다. 심지어 어떤 인터뷰이는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 났다' 고 표현하는데 그 의미는 운영하던 수많은 사업체 중 하나가 남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건진' 상황이었다고.(헐...강남?) 강남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작가는 우리를 우롱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지금 장난해? 라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을 뻔...) 작가는 인터뷰이 선정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쓸 때는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자는 교훈. 웬만하면 앞으로 혹시나 재판하신다면 마지막 챕터는 삭제하시거나 인터뷰이 선정 이유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도 넣으심이 어떨지...이 글을 보시진 않겠지만 ㅋ)

그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미 재무부와 월 스트리트, 그리고 그동안 여러 차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해왔던 한국의 경제관료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배적인 위기관리의 방식이 결정되자 승리한 집단에겐 전리품이, 패배한 집단엔 고통이 배분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승패의 여파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로 증폭된 불확실성 덕택에 열렸던 여러 대안적인 미래의 가능성들이 위기 효과와 위기관리 비용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면서 하나둘씩 제거된다는 점이다. 지배적인 위기관리 방식에 순응하면 생존하거나 보상을 받고 저항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거나 도태된다."
(따옴표 부분은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1997년의 해법은 여전히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재욱 씨는 소설에 썼다. 이 해법은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뿐 아니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마저, 가능성을 셈하는 시야마저 규정하고 내면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눈에 띄는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해도 이 사회에 사는 이상 우리의 선택들이 이 특정한 발전 경로의 작용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해법이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이 정말 무서웠다. IMF가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 시야,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까지 규정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소름끼쳤다.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도 그것에 영향을 받고 심지어 조종된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가족 같은 경우 그 당시에 IMF로 인한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 중 공공기관에 계신 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후 우리집에 닥친 풍파 때문에 늘 지붕이 없는 집에서 사는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왔다. 지붕이 없는 집에서, 심지어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서 깨어나는 악몽을 꾸기도 하는 날들을  보냈다. 사실 대학교 4학년의 나는 대학원에 가서 계속 공부하여 교수가 되거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불안정하고 불확실해 보였다. 그 길로 가면 오랜 세월을 길바닥에서 떨면서 보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반 사기업은 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제 3의 길을 택했다. 즉 제일 좋은 것은 택하지 못하고 싫은 것을 피해 그나마 덜 싫은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 길로 갔으면 지금보다 더 잘 살았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자신도 없다. 어쩌면 좀 더 비관적이지 않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 좀 더 가난하지만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후회가 들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상상력의 방향에  IMF로 인한 이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체질이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드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부분은  챕터에 몰려 있다. 나머지 부분은 아주 적거나 거의 없다. 솔직히 읽으면서 내가  이걸 읽고 앉아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책을 샀기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책이 그나마 가치를 가지는  김재욱  파트 덕분일  같다. 그나마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적어보며 마무리하겠다.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이것이 사회구조적 맥락에 떠밀린 선택인지, 온전히  스스로  선택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걸로 만족하려 한다.

생애 주기가 제시하는 단계적 미션을 클리어해나가는 삶의 모델이  작동하지 않게  시대, 구국의 엘리트 서사가 '탈조선'으로 굴절되면 해피 엔딩인 시대, 우리는 각자에게 부여된 서사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내가 주인인 이야기를 써나갈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떠받쳐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 개인에게 가능한 '판돈' 자체가 무척 축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회,구체적으로 말해 애초에 기회가 적게 주어진 사람의 기회는 계속해서 박탈되고, 정상가족이나 정규직  무척 좁은 '제도권' 들어서지 못하면  그래도 가혹한 상황이  척박해져가기만 하는 그런 사회에서, 홍스시 씨가 털어놓는 피로와 우울,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인생 속에서 빚어진  우울한 감정은 완전히 고유한 그의 것인 동시에, 나의 시대 감각 속에서 손에 잡힐  생생하고 무척이나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는  살기 싫을까? 우리는  불안할까? 삶은 '원래' 그런 걸까? 질문은 나에게서 시작되지만,   또한 나에게서 찾아야 할까.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2000년대 중반에 80퍼센트대에 이르렀던 높은 대학 진학률과 관련이 깊다. 거의 누구나 대학을 가고 매년 신규 대졸자가 50 명씩 쏟아지는데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의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  4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메워질  없는 간극이 청년 노동 시장에서 실업률 증가뿐 아니라 다양한 모순과 악순환으로 나타난다. 어차피 대학 나와도 취준생 신세라는 불안 앞에 '서울에서' '영업사원으로서' '열심히만 하면 큰돈을 번다' 그럴듯한 껍데기를 내미는 다단계 사기도 그중 하나다.

여자 친구는 호주의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예요. 호주의 간호대학에 편입해서 학위를 따면 거기서 간호사를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호주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살아가는  훨씬 나은  같아요. 그래서... 입장에선 가라 가지마라 이런 말을 하기가  그래요.

"결혼을 해야 어른 취급"해주는 사회에서, 우리는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숙제에 쫓긴다. '어쩌면  숙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었을까' 후회하며 여동생에겐  압박을 갖지 말라고 말하는 기혼자 언니에게 여동생은 답한다. "어쨌든 지금은 (사회가) 숙제를 해오지 않은학생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옛날 선생님 같잖아."

 가혹한 옛날 선생님은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어 등장한다. 서유진에게 아직도 '늦지 않았다'  '정상적인 '  종용하는엄마는 문제적 개인이기에 앞서 모습을 바꾸어 등장한 바로  옛날 선생님  하나다. 어머니의 바람은 '결혼을 하라'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결혼을   거면 정상적인 길을 가라'  것이다. 결혼을 위에 나온 '어른 취급'  요건  하나로 놓고  '어른 취급' 자체를 문제 삼아 보자면, 전문직이나 공무원이 아닌 직업을 가진 미혼 여성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도 종종  기준에서 탈락한다.

나는 가끔 이미  손에서 떠나보냈지만 감촉이 완전히는 씻겨나가지 않은 다른 선택지가 떠오를 때마다, 이것은 지금은 힘들어도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마주한 선택들이 내게 어울리는 방향, 만족할  있는 방향으로 축적되어온 결과라는 생각과, 사실은 정말로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돌아가는 것보다 지금  길에서 전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다음 번에는   나은 선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최종적인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마리 씨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가 그를 '어른' 이라고 생각한 것은, 일찍이 사회에서 요청하는 어른 되기의 과업을 수행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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