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맑음

by 흐린맑음

안녕. N

잘지내지?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 해.


왜냐하면 네 생각이 너무 많이 났거든.

무슨 말을 적어야 할까.

오늘 하루가 뭔가 뒤숭숭해서,

네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정리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아서

편지를 써보려 해.


이 편지가 네게 전해질지는 잘 모르겠어.

한 달 전에 이미 우표가 다 떨어졌거든.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이 작은 시골 동네엔 우표를 파는 곳이 없어.

푸른 바다는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건

지금의 내게는 조금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전해지지 않는 편지일지라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N, 잘 지내지? 네가 참 보고 싶은 하루야.

네가 좋아하는 봄비가 오늘 내리고 있어.

차갑고 포근한 습기가 창문을 타고 흘러들어와.

내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그레이시의 21 들려오고,

빗소리가 끊임없이 나의 작은 공간 지켜주고 있어.


너와의 이별 후에

나는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

너 때문이란 건 아니야. 너를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거나,

아직 너를 잊지 못한 그런 느낌은 아니야.

그냥, 아직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것뿐이야.


가끔. 정말 좋은 느낌을 가진 사람을 본 적도 있었어.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

그 사람과 만나기 전에는 내 마음이 쉬지 않고 두근거리기도 해.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인연이 되지 못했던 것뿐이야.


왜 이런 말을 하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

돌려 말하고 있는 거야.


비가 내리고, 꽃을 토분에 옮겨 심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은 하루 중에

네가 떠올랐는데, 네 이름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더라고.

그래서 한 참을 생각해버렸어.

네 이름이 뭐였더라고 하고 말이야.

맞아 N이었지. 우린 3년 전에 헤어졌고,

3년을 만났지, 그리고 나는 네 이름을 까먹어버렸지 뭐야.


오늘은 뭔가 뒤숭숭한 하루야.

네가 좋아하는 봄비가 와서

네가 생각났는데, 네 이름은 기억은 안 나고,

간신히 N을 기억했는데, 보고 싶었어.

그냥 그런 하루였다고,


N, 항상 행복해야 해. 항상 웃어야 하고.

항상 사랑받아야 해.

못난 나 말고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해.

그냥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

봄비가 내게 머물었던 것처럼,

네가 나에게 머문 그 시간들을,

항상 잊지 않을게. 고마워.

네가 도망 가버린 덕분에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지 못했네.


'고마워 N'


2017년 3월 2일 어느 시골 바다 마을에 너를 그리며.

너를 사랑했던 B가.

안녕.


꽃이 지기 전에는 꼭 이 편지를 부치도록 노력해볼게.

네가 싫어할지도, 네가 내 이름을 보는 순간 버릴지라도,

그래도 노력해볼게.

너와 나의 노력은 다른 차원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만큼은 해보려고.


정말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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