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타리적 배치를 통한 AI 미디어 편집
1. 창조 패러다임의 전환: 생산에서 배치로
AI 생성 기술의 등장은 창작 행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ChatGPT는 수초 내에 수십 개의 텍스트 변주를 생성하고, Midjourney는 단일 프롬프트로 무수한 시각적 가능성을 현실화하며, Suno는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끝없이 산출합니다.
이는 창작사에서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과거 창작자들이 직면했던 근본적 과제는 ‘희소성’이었습니다. 적절한 재료의 확보, 기술적 숙련도의 축적, 완성도 높은 결과물의 산출—이 모든 것이 시간과 자원을 요구하는 병목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마주한 것은 정반대의 조건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생성 가능성 앞에서, 창작의 중심은 생산(Production)에서 선택과 배치(Selection and Arrangement)로 이동했습니다. 문제는 더 이상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고르고,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입니다.
이러한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배치(assemblage)’ 개념을 경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배치(Assemblage)의 존재론: 관계로서의 의미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 개의 고원』에서 제시한 ‘아장스망(agencement)’, 영어로 ‘assemblage’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존재론적 전환을 함축합니다. 전통 형이상학이 실체(substance)를 우선시했다면, 들뢰즈-가타리적 사유는 관계(relation)를 존재론의 중심에 놓습니다.
배치란 이질적 요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접속할 때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생성적인 구성체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소 자체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배열되고 상호작용하느냐입니다.
예컨대 하나의 음표는 그 자체로 특정한 주파수를 가진 물리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음표가 다른 음표들과 어떤 시간적 순서와 간격으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기쁨’, ‘슬픔’, ‘긴장’, ‘이완’이라는 전혀 다른 정서적 경험을 산출합니다. 의미는 요소에 내재하지 않고, 요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창발(emerge)합니다.
들뢰즈는 이를 “잠재적인 것(virtual)“과 “현실적인 것(actual)“의 변증법으로 설명합니다. 무수한 가능성들은 잠재태로 존재하지만, 특정한 배치를 통해서만 현실태로 전환됩니다. AI가 생성한 수천 개의 이미지는 모두 ‘잠재적’으로 존재하지만, 창작자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 비로소 이 세계의 의미로 현실화됩니다.
3. 몽타주 이론과 배치: 쿨레쇼프에서 들뢰즈까지
배치의 핵심은 시간성입니다. 같은 요소라도 순서가 바뀌면 전혀 다른 의미가 생성됩니다. 이는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이론가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의 실험에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쿨레쇼프는 무표정한 남성 얼굴의 동일한 클로즈업 샷을 준비하고, 그 앞뒤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배치했습니다:
얼굴 + 수프 그릇 = 관객은 “배고픔”을 읽어냅니다
얼굴 + 관 속의 아이 = 관객은 “슬픔”을 읽어냅니다
얼굴 + 소파의 여성 = 관객은 “욕망”을 읽어냅니다
샷 자체는 동일했지만, 전후 맥락의 배치가 의미를 결정했습니다. 이를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라고 하며, 이는 영화 몽타주 이론의 기초가 됩니다.
들뢰즈는 『시네마』에서 이를 더 철학적으로 발전시킵니다. 그는 몽타주를 단순한 편집 기법이 아니라, 시간을 재구성하는 존재론적 작업으로 이해합니다. 이미지들의 배치는 새로운 시간-이미지(time-image)를 창출하며, 이는 단순한 시각적 연속이 아니라 사유를 촉발하는 힘을 갖습니다.
AI 미디어 편집에서 Premiere Pro 타임라인은 단순한 파일 나열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적 배치를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존재론적 작업대입니다.
4. AI 시대의 큐레이션: 잠재성의 현실화
AI 생성 기술은 창작을 ‘큐레이션’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큐레이터십(curatorship)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관 큐레이터의 작업을 살펴봅시다.
큐레이터는 새로운 회화를 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존재하는 작품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대화를 설계합니다. 모네의 ‘수련’을 어떤 작품 옆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수련’이 발화하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옆 → ‘수련’은 재현의 해체 이전 마지막 순간으로 읽힙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옆 → ‘수련’은 느린 시간의 명상으로 읽힙니다
김환기의 추상화 옆 → ‘수련’은 동서양 공간 개념의 교차점으로 읽힙니다
작품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작품이 맺는 관계의 구조가 의미를 재생산합니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이를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이라 명명하며, 현대 예술의 핵심이 대상 생산이 아니라 관계의 설계임을 지적합니다.
AI 미디어 편집도 동일한 구조를 갖습니다. Midjourney가 생성한 이미지 A와 Suno가 생성한 트랙 B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와, 특정 시간축 위에서 결합될 때, 전혀 다른 의미론적 위치를 점유합니다. 편집자는 이 의미론적 위상(semantic topology)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5. 통사론으로서의 편집: 의미의 문법
언어학에서 통사론(syntax)은 단어들이 배열되는 규칙을 다룹니다. 같은 단어들도 순서가 바뀌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 ≠ “사람이 개를 물었다”
미디어 편집에도 통사론이 존재합니다. 영화 이론가 크리스찬 메츠(Christian Metz)는 영화를 ‘언어’로 분석하며, 쇼트들의 배열이 고유한 영화적 문법(cinematic grammar)을 구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AI 시대 미디어 편집에서 이 통사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왜냐하면 개별 요소(단어)의 생산은 이제 기계가 담당하지만, 그것들을 의미 있는 문장으로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뮤직비디오 편집에서:
시퀀스 A:
새벽 도시 풍경 (5초) → 걷는 사람들 (3초) → 해 뜨는 장면 (4초)
효과: “새로운 시작, 희망”
시퀀스 B:
해 뜨는 장면 (4초) → 새벽 도시 풍경 (5초) → 걷는 사람들 (3초)
효과: “일상의 반복, 무료함”
동일한 이미지, 동일한 재생 시간. 그러나 배열 순서가 정서적 의미를 정반대로 전환시킵니다. 이것이 통사론의 힘입니다.
6. 여백과 틈새: 침묵의 배치
들뢰즈-가타리의 배치 개념에서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배치는 요소뿐 아니라 빈 공간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종종 침묵입니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는 이를 극단화한 작품입니다.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청중은 콘서트홀의 주변 소음—기침 소리, 의자 삐걱거림, 환기구 바람 소리—을 ‘듣습니다’. 케이지는 침묵을 배치함으로써, 소리의 부재가 오히려 청취 행위 자체를 의식화하도록 만듭니다.
미디어 편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르게 전환되는 이미지들 사이에 2-3초의 검은 화면을 삽입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인지적 리듬이 바뀝니다. 그 공백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의미 생성의 공간입니다.
이는 동양 미학의 ‘여백(negative space)’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수묵화에서 그려지지 않은 빈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려진 부분과 함께 전체 구도를 구성하는 적극적 요소입니다. 들뢰즈는 이를 “빈 공간은 배치의 일부”라고 표현합니다.
AI 편집에서 우리는 종종 생성된 요소들로 화면과 사운드트랙을 ‘채우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배치 설계자는 무엇을 넣지 않을지도 결정합니다.
7. 접속의 윤리: 배치의 정치성
배치는 중립적 기술이 아닙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열하느냐는 권력의 행사입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담론 분석에서 “무엇이 말해질 수 있고, 무엇이 침묵되는가”가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디어 편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어떤 것을 배제하는가, 어떤 서사를 전경화하고 어떤 것을 후경화하는가—이 모든 결정은 관객의 지각과 인식을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편집할 때:
편집 A: 마천루 → 바쁜 출퇴근길 → 현대식 카페 → 쇼핑몰
효과: “역동적이고 발전된 도시”
편집 B: 쪽방촌 → 노숙인 → 재개발 현장 → 빈 상가
효과: “불평등하고 소외된 도시”
같은 도시, 다른 배치. 편집자의 선택은 도시에 대한 특정한 담론을 구성합니다. 이것이 배치의 정치성입니다.
AI 시대에 이 윤리적 책임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알고리즘은 수천 개의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어떤 가능성을 현실화할지는 인간이 결정합니다. 편향된 알고리즘 데이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조회수 최적화를 위해 자극적 배치를 선택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선택입니다.
8. 알고리듬적 배치와 인간적 판단
흥미롭게도, AI 자체도 일종의 배치 엔진입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이전 선택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특정한 순서로 배치합니다.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유튜브의 자동재생,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이 모든 것이 알고리듬적 큐레이션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큐레이터는 불필요해지는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알고리즘의 배치는 최적화를 목표로 합니다. 사용자 체류 시간, 클릭률, 전환율—이러한 정량적 지표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배치는 종종 비효율적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시들—예컨대 1913년 아모리쇼(Armory Show)나 1969년 해럴드 제만(Harald Szeemann)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은 관객을 편안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고급 예술과 저급 문화를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관객으로 하여금 기존 인식의 틀을 재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인간 큐레이터의 역할은 알고리즘이 제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성(authenticity), 윤리적 판단, 미적 위험 감수. 우리는 조회수가 아니라 의미를, 친숙함이 아니라 변화를, 최적화가 아니라 실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9. 실천적 방법론: 배치 설계의 원칙
그렇다면 AI 미디어 편집에서 들뢰즈-가타리적 배치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원칙 1: 요소가 아닌 관계를 사유하라
개별 이미지나 사운드의 ‘질’을 평가하지 말고, 그것들이 다른 요소와 접속할 때 어떤 의미가 창발하는가를 질문하세요. “이 이미지가 좋은가?“가 아니라 “이 이미지는 저 사운드와 만날 때 무엇을 말하는가?”
원칙 2: 시간적 궤적을 설계하라
관객이나 청취자가 당신의 작품을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구성하세요. 도입부의 기대감, 중반부의 긴장 상승, 클라이맥스, 해소—이것은 단순한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의미의 서사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원칙 3: 여백을 두려워하지 마라
침묵, 검은 화면, 정지된 이미지—이러한 ‘비어 있음’은 약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사유할 공간을 제공합니다. 계속 자극이 이어지는 편집은 인지적 피로를 유발합니다.
원칙 4: 알고리즘을 참고하되 따르지 마라
AI 추천을 출발점으로 삼되, 최종 결정은 당신의 의도와 윤리적 책임에 기반하세요. “이것이 조회수를 높일까?“가 아니라 “이것이 나의 진정한 목소리인가?“를 물으세요.
원칙 5: 실험하고 실패하라
배치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조합에서 가장 강렬한 의미가 발생합니다.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배치를 시도하세요.
10. 결론: 배치 설계자로서의 창작자
AI 시대, 창작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생산 능력이 민주화되고 보편화될 때, 선택과 배치의 능력이 창작자를 구별하는 핵심이 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배치 개념은 이 전환을 이해하는 강력한 철학적 도구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창조가 무에서의 생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구성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AI가 생성한 무한한 이미지, 음악, 텍스트는 잠재성의 바다입니다. 우리는 그 바다에서 의미 있는 군도를 건설하는 건축가입니다. 어떤 섬을 선택할지,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섬들 사이에 어떤 다리를 놓을지—이것이 AI 시대 창작자의 과제입니다.
타임라인은 단순한 편집 인터페이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성을 현실로 변환하는 존재론적 작업대입니다. 그 위에서 우리는 매일, 의미의 건축을 수행합니다.
배치 설계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무한한 선택지 앞에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 윤리에 기반해 하나의 구조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 구조가 누군가의 지각을 바꾸고, 사유를 촉발하며, 세계를 다르게 경험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가능성의 건축학. 그것은 AI 시대 창작자의 새로운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