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피드와 AI 음악이 보여주는 새로운 창작의 구조
#1. 문제의 위치
우리는 두 가지 행위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수십 장의 사진 중 한 장을 선택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Suno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생성된 여러 음원 중 하나를 선택하고, 편집하고, 발표하는 행위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둘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일상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 창작입니다. 그러나 구조적 차원에서 이 둘은 동일한 존재론적 질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질문의 핵심: 무한한 가능성의 집합 앞에서, 선택하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통적 창작 모델은 명확했습니다. 창작자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자였습니다. 빈 캔버스, 빈 오선지, 빈 화면 앞에서 시작해, 자신의 내부에서 끄집어낸 무언가를 물질화하는 과정이 창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마주한 구조는 다릅니다.
인스타그램 창작의 구조: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무한한 순간들
그중 포착 가능한 순간들(촬영된 것들)
최종적으로 선택되고 배치된 순간들(피드)
AI 음악 창작의 구조:
이미 존재하는 음악적 가능성의 무한한 공간
그중 생성된 것들(AI가 만들어낸 후보들)
최종적으로 선택되고 편집된 것들(발표된 음원)
두 경우 모두, 창작자는 생성자가 아니라 선택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닙니다.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두 행위 모두 동일한 선택의 구조를 거칩니다.
제1층위: 대상의 포착
인스타그램: 어떤 순간을 촬영할 것인가
AI 음악: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할 것인가
이 단계에서 창작자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을 특정한 방향으로 좁힙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커피잔에 카메라를 향하는 순간, AI 음악 창작자가 "melancholic indie folk"를 입력하는 순간, 우주는 축소됩니다.
제2층위: 후보의 생성
인스타그램: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 다른 순간에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
AI 음악: 같은 프롬프트로 생성된 여러 버전의 음원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합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셔터를 누르지만, 실제로는 빛, 타이밍, 우연의 결합이 각각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AI 음악 창작자는 생성 버튼을 누르고, 알고리즘이 음원을 만듭니다. 둘 다 창작자는 완전한 통제권을 갖지 않습니다.
제3층위: 최종 선택과 배열
인스타그램: 12장 중 1장을 선택하고, 필터를 적용하고, 피드 내 위치를 결정
AI 음악: 8개 후보 중 1개를 선택하고, 편집하고, 발표 맥락을 구성
이것이 창작의 핵심이 됩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선택을 통한 존재의 정의"는 여기서 구체적 형태를 얻습니다.
두 행위는 동일한 불안을 생성합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묻습니다: "이 사진이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가?" AI 음악 창작자는 묻습니다: "이 곡이 내 음악인가?"
이 불안은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창작의 주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직접 만들지 않은 것(알고리즘이 생성한 음원, 우연히 포착된 빛)을 선택하는 행위를 '창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선택만으로 충분한가?
전통적 창작 이데올로기는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어떤 맥락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생성됩니다. 이것은 창작인가, 아닌가?
인스타그램 피드는 개인 전시관입니다. AI 음악 채널은 선택된 음원들의 배열입니다. 둘 다 선택과 배치의 예술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가능성의 공간이 무한에 가까울수록, 선택의 행위는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AI가 생성할 수 있는 음악의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합니다. 당신이 촬영할 수 있는 순간의 수도 무한합니다. 그 무한성 앞에서, 당신이 선택한 하나는 통계적으로 거의 0에 가까운 확률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현재의 맥락에 재배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피드/채널은 당신이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며, 그 선택들이 당신을 정의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직접 음을 만들었는가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 음을 선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직접 그 순간을 만들었는가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 순간을 포착하고 선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다시 구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창작인가?"가 아니라, "나는 왜 이것을 선택했는가?"
"AI가 만든 것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선택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인스타그램 피드와 AI 음악 채널은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둘 다 선택의 아카이브이며, 그 선택들이 쌓여 선택하는 자의 정체성을 구성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큐레이터이자 건축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