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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Sep 14. 2023

헤어질 결심

_마음으로부터의 이별

어제 아침, 천변 산책길에 발견한 구월 벚꽃...


푸릇한 이파리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이미 말라죽은 듯 보이던 저 앙상한 나무에서 저토록 고운 꽃잎이 피어나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천변 산책로 양편에 늘어선 많은 벚나무들은 여전히 무성한 푸른 잎을 뽐내며 서있다.

그중에는 이미 기력을 잃고 단풍들 듯 붉고 누른 빛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우수수 떨구며 서있는 나무들도 적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토록 고운 빛을, 제 빛나던 청춘 한껏 푸르던 시절의 추억을 기적처럼 피워낸 저 마른 나무 한 그루만이 오늘의 나에게는 소중하다.


어제, 마침내 가을을 선언하듯 비가 내린 뒤 오늘 아침은 역력한 절기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퇴원.

지난 9월8일 어머니는 마침내 대형병원의 의료체계로부터 탈출했다.

1차로 퇴원을 준비하던 시점에 다시 폐렴이 악화되어 다시금 요란한 응급처치의 구속을 받으며 힘겨웠던 어머니는 당신의 마지막 필사의 생명력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퇴원.

다시는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나의 생각대로 집근처의 요양원으로 귀환하셨다.

담낭염으로 응급실로 실려가기 전 몇달간 머무르며 그나마 장소나 사람들과 익숙해진 곳이어서 대체로 안심되는 장소가 바로 그 요양원이다.

사전에 부원장과 충분히 상담하고 상의하여 어머니의 상태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의 돌봄정도를 합의하였기에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는 판단이다.

결심.

이즈음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했다.

이제  다시는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고 의술만이 살아 펄떡이는 저 첨단의료체계 속으로 어머니를 보내지 않겠다는 결심,

그리고 헤어질 결심.


어머니가 요양원에 자리잡으며, 향후의 스케줄을 무심히 확인하던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분명한 시점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언니가 어머니를 보러 온 날, 나는 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2주후로 예약된 어머니의 외래진료를 가야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설구급차이용 비용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는 곳에서 병원까지 왕복을 하자면 응급차를 두번 부르게 되고, 한번에 11만원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기본요금이 75,000원이라니...

어머니를 지극히 생각한다면서 그깟 구급차이용료가 뭐 그리 대수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겠으나, 비싼건 비싼거다. 퇴원하던 날,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이동시에도 11만원을 달라는 것을 깎아서 10만원만 지불했다.

어쨌거나 아쉬우면 얼마가 들든지 두말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아무튼 돈이 문제가 아니라며, 언니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약을 왜 계속 먹어야 하는 거지? 퇴원하면서 한달치 받아왔다며... 그것도 나는 좀 이해가 안된다...

나는 의아했다.

자주 병원에 가기 어려우니 가능한한 많이 받아온 것이고 외래진료도 예약됐으니 당연히 가야하는거 아닌가...

언니는 말했다.

그렇게 약으로 연명하는게 옳은가... 이제는 그냥 편하게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저렇게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고...

나와 다르게 언니는 무척 냉정해보였다.

왜 자꾸만 죽는다는 전제만 들이대는가...


하지만, 그제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저 많은 약을 다 먹으면 다시 기운이 살아나고 근육이 붙어서 보행기를 잡고 걸음마를 시작할 것이며, 비위관을 제거하고 나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 갈 수도 있다고 마음깊은 곳에서 기대하고 있었던가 보다.


사실 어머니의 폐는 완전하지 않으며, 아직도 언제든 폐렴이 다시 재발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렇게 다시 폐렴이 악화되면...또다시 구급차를 불러 저 끔찍한 병원으로 데려갈 것인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게 하는 저 곳으로?


아...그렇네. 맞아, 이제는 그만해야 할 것같아.

담낭제거를 하러 들어갔던 어머니는 병원에서 무려 한달하고도 5일을 더 견디어야 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몹시 지쳐버렸다.

폐렴때문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허리의 통증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더이상 혈관을 잡을 곳도 없는 사지의 이곳저곳을 날마다 쑤셔 피를 뽑아가고 산소포화도를 높인다며 산소마스크를 씌워놓을 뿐 아니라, 비위관을 잡아뺄지도 모른다며 양손은 24시간내내 억제대로 침대난간 양쪽에 결박된 채 간지러운 콧구멍을 제마음대로 후비지도 못하는, 한없이 끔찍한 상황때문이었다.

 

그럴때,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손을 발을 닦아드리며 속으로 다짐했었다.

이제는 충분하다.

더이상 어머니를 이곳에 데려오지 않겠다. 떼내야 할 것은 떼어냈으니 이제 그만 어머니가 평화로이 고즈넉이 자신의 생을 돌아볼 당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그 결심을 잊었다.

어머니의 퇴원과 더불어 먹어야할 약을 충분히 챙기느라 분주했고, 이후로도 계속 먹어야할 약을 받으러 외래에 가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언니와의 대화중에야 비로소 내가 다시 까먹었던 결심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마음으로부터 어머니를 내려놓기로, 어머니가 남은 시간을 다만 평화와 안도감 속에서 지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로 다짐했다.


언니와 나는 요양원 원장, 부원장과도 긴 시간 상담했다.

그결과 이런 결론에 합의했다.

어머니의 상태는 이후 언제든 다시 폐렴이 악화될 수 있는 상태이다.

만약 다시 위급상황에 돌입하더라도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적극적인 응급의료체계를 이용하는 대신, 협력의사에게 부탁하여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처치만 받게 할 것이다.

또다시 응급실로 실려갈 경우, 어머니는 다시 한번 지금까지와 같은 끔찍한 마루타실험 도구가 될 뿐이다.

구십 세가 넘은, 이미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오갔던, 노구에게는 그보다 더 가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니는, 부원장은 나에게 묻는다.

그럴 수 있겠느냐고.


나는...결심했다.


그렇게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겠다고.
어머니가 다시 생사를 넘나드는 위협적인 상황에 봉착한다면,
가능한한 육신의 고통만을 줄여 편안한 상태에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을 가늠하고 더듬으며
자식들의 손을 잡은 채로
긴 한숨을 내쉬기를 바라겠다고.

어머니와 헤어질 결심을 시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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