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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Oct 03. 2023

추석 즈음

_소멸되어 가는 시간

9월, 산책을 시작한지 3주 남짓 만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명백한 비자발적 중단이다.

매일 5킬로미터, 6000보 남짓 걷기를 이어가던 어느날 왼쪽 무릎안쪽에 통증이 희미하게 시작되었다.

걸을때 스치면 서로 닿는 무릎 안쪽 부위가.


괜찮을 줄 알았다. 

아파도 참고 걸으면 통증이 무마되고 부드러워질 줄 알았다.

그래서 며칠동안은 참고 걸어보았다.

실제로 집을 나서서 첫 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하면 통증이 시작되다가 참고 걷다보니 

통증이 둔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러면 되겠지...하고 며칠을 더 걸었다.

다음날, 더 참을 수 없게 아파졌다!

그냥 집앞에 몇 걸음 걸어 나가는데, 악 소리가 터질 만큼 갑작스런 통증도 나타났다.

관절에 이상일까...벌써 퇴행성관절염일까...겁이 나서 동네 병원에 갔다.

사진을 찍어보고, 내가느끼는 통증 부위와 통증의 정도를 이야기했다.

의사가 말한다.

관절은 사진상으로도 정상이고 왼쪽 무릎뼈 안쪽에는 힘줄이 있는데 그게 부어서 염증이 생긴것 같단다.

내가 하루 5킬로씩 걸었다니까, 땅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땅이 아니고 아스팔트인데요...요새 땅이 어디 있어요...했다.

땅을 걸어야 쿠션작용을 해서 충격이 흡수되는데 아스팔트는 그게 전혀 안 되니 걷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걸으려면 푹신한 운동화에 두꺼운 양말을 신어서 그렇게라도 관절의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계단은 되나요? 

계단도 안된단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계단도 염증에 안좋다며.


아..........간만에 운동 좀 시작했더니 이런 불상사가 돌발한다. 

사는게 마음먹는 대로 정말 안 된다.

그리하여 나는 9월말께부터 이때까지 산책 휴업중이다...

그나마 며칠 하던 걷기운동을 갑자기 중단하자 느껴지는 답답함은 더 크다.

그냥 의사가 가르쳐준 운동을 해가며 조심하는 중이다...이렇게 하나하나 늙어가는 것인가 보다.


내 어머니도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하나하나 허물어져 가는 것을 

철없는 나는 모르고 살았다.





9월8일 동네 요양원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지금 그저 숨쉬고 계실 뿐이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야 할때마다 질러대는 고통스런 비명과 밤낮이 뒤바뀐 채 잠결에 토해내는 소리때문에 같은 방의 동료들도,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도 불안에 떨게하는 바람에 바로 다음날에는 

2인실로 옮기게되었다. 2인실이지만 현재로서는 혼자서 머무르는.

그곳으로 옮긴 후에도 한동안 밤낮이 바뀌어 낮에 자고 밤에는 비명을 질러대는 일이 잦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경향은 사라졌으나 그대신 밤낮으로 길고 긴 잠에 빠져 계신다.

낮에 가서 보면 꿈나라이길래 밤에가서보면 눈을 떴으려나하고 해진 뒤에 가서 보아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을때가 많았다......


기운이 바닥을 친 듯보였다. 깨워도 깨어나지 못하는게 꼭 식물인간상태인가 싶을 정도였다.


추석즈음, 나는 영양제 투여를 부탁했다. 

뜻밖에도, 영양제를 맞은 그날 저녁에 갔을때 어머니는 눈을 뜨고 나를 만났다. 

거의3주정도 만이었다.

그러자 나는 정말로 어머니가 너무나 체력이 달려서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이름을 불러줄 여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으리라는 짐작을 확신하게 되었다.

영양제덕분에 겨우 눈을 뜰 기운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추석다음날, 친정식구들이 열명 남짓 어머니를 보러왔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낮에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비교적, 그전까지와 비교해 가장 명료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맞았다.

추석 다음날. 어머니를 면회중인 가족들


물론, 그럼에도 나의 이름도 다른 가족들의 이름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신다.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었고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말을 하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에 온 조카들은 모두 어머니의 현재 모습에 대하여 적잖이 당황스러워하고 애처로워한다.


지금도 내이름은 가끔 기억하고 입술을 움직여 발음하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 하루하루...그렇게 소멸되는 중인가.

9월9일, 2인실로 옮기기전 언니와 내가 어머니 면회를 끝내고 나오려할 때 물었다.

엄마, 우리 이제 갈까? 아니면 더 있을까? 

그때는 어머니가 가느다랗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해.


작은 소리였을지언정 그것이 내가 들은 어머니의 가장 분명한 마지막 음성이다.

지금 어머니는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병원에서 퇴원직전 폐렴에 걸려 일주일여를 다시 시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어서 퇴원하고 싶다는 

생의 의지로 가득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면회오는 모두를 다 알아보고 약한 음성일지언정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바로 그 정도쯤만 되어도 나는 좋겠는데....

내가 갈때마다 나를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로저을만한 기력이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이제는 그조차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는 일이 너무나 힘들다.


그렇다고해서 어머니가 없는 내일을 상상하는 일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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