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잘 해야 본전
3월4일 아침 출근을 했을때, 간밤 야간근무를 한 요양보호사가 말한다.
어젯밤에 영준(가명)어르신이 넘어졌어요...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CCTV를 확인해보니까 살짝 주저앉았더라고요...
야간근무는 거의 한사람이 담당한다. 가끔 두명이 함께 할 때도 있으나 대부분 혼자서 밤10시부터 다음날오전 7시, 내가 출근하기 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낮에는 비교적 관리가 용이한 편이다.
낮동안에는 적어도 2~3명의 요양보호사가 함께 어르신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보행기를 타고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분들은 치매가 있어도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밤이 깊고 취침시간이 되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배회하거나, 혼자서 10여명의 어르신들을 관리해야 하는 야간근무자_신선생을 붙잡고 대화하자고 늘어지면 대책이 없다.
영준(가명) 어르신은 여자분으로 젊어서 교직에 있었다고 했다. 80대이지만 비교적 인지가 있어서 치매가 있기는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영준 어르신은 지난해 내가 휴직하기 직전 1달 이내에 입소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보았을 때 어르신은 비교적 교양있고 점잖으며 지극히 정상적인 인지상태로 보였다.
그분에 대한 인상은 좋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서 다시 보았을 때, 어르신은 조금 달라져보였다. 이를테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목소리가 커졌다고나 할까.
어르신들이 처음 요양원에 입소하면, 낯설기 때문에 주눅든 것처럼 주위탐색을 하고 혹은 적응이 안된 상태로 거부감과 거친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런 태도는 말이 없거나 반대로 불평을 하는 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보았다. 영준어르신은 처음 입소당시, 그저 점잖은 태도를 보였다.
뭘 도와드리면 진심으로 고마워하듯 말씀하셨다.
그사이 요양원생활에 완벽 적응하신 영준 어르신은 목소리가 꽤 커져있었고 자신의 원하는 바에 대해 집요하다 싶게 요구했다.
예를 들면, 주1회 실시되는 목욕서비스가 있다.
전체 입소자가 주1회 목욕을 하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5~6명의 어르신들에게 순번이 돌아간다.
그때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매일 두명씩 짝을 지어 목욕당번이 된다. 그렇게 하면 당번 한 사람이 한달에 네번정도씩 목욕담당을 한다. 하루중 목욕시간은 오후 1시반부터 3시정도까지이다.
물론 목욕이라고 해서 탕에 몸을 담그는 것도 아니고, 목욕의자나 목욕용 침상에서 이루어지는데, 어르신 1인당 20여분정도씩 소요된다. 최대한 빠르게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하고 문질러 각질을 제거하는 정도이다.
재빨리 여러차례 헹굼물을 부어 비눗기를 씻어내고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입혀 내보내는 것이다. 처음 목욕서비스를 받은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어르신이 느끼기에는 얼렁뚱땅 날치기처럼 순식간에 해치운다는 것이다. 그 말에는 당신이 그전까지 자신의 집에서 살며 해오던 목욕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도 그걸 잘 안다.
그러나, 시설에서 실시하는 목욕서비스는 개인이 집에서 하는 목욕과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일주일에 1회이상 목욕을 해오던 어르신들의 경우는 주1회라는 요양원의 목욕스케줄에 불만을 표시한다.
나 역시,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셨을 때 주1회 목욕이라는 스케줄에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그 시설에 입소한 이상 그곳의 룰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의 어르신들 10명 중 9명은 주1회 목욕서비스에 그리 불만이 없다.
그러나 나머지 한두 명은 끝까지 집에서의 생활습관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영준 어르신도 그중 한사람이다. 특히 그 보호자가 나서서 '우리 어머니는 목욕 한번씩 더 시켜주세요!'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와같은 어르신은 한두 분 더 계시다.)
물론 한번 더 씻으면 좀더 쾌적하겠지만, 공동생활 공간에는 그나름의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그 어르신과 보호자는 요양원이라는 공동시설의 의미를 무시하려 들었다. 막무가내로 주2회 목욕을 밀어붙였고 끝내 관철시켰다. 그렇게 되자, 어르신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이를테면, 우리가 정당하게 돈내고 이용하는 거니까 얼마든지 원하는 것은 요구해도 된다!라는 식의 태도를 가족들로부터 학습하고 공유하게 된듯했다. 그러다 보니, 주2회 목욕을 하기로 정해진 날이 아날 때에도, 가족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오늘 어머니 외출하실거니까 목욕좀 시켜주세요!라고 요구한다.
그럴때면, 철저하게 을인 우리는 정해진 날이 아니라 안된다고 거부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갑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뿐더러, 당연히 거부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가족들도 당사자도 막무가내로 우긴다. 그러면 결국 이루어지니까....
요양보호사들도 사람이다. 다른이들이, 가족들조차 돌보기 힘들어 맡긴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어찌보면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감정이 있기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어르신이나 가족들에 대해 결코 좋은 마음으로 대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미운털이 박히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늘 초심을 잃지 말자고 시시각각 되뇌이면서도 그런 상황에 봉착할 때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가슴속에 박힌 미운털은 점점 크고 굵어진다.
아무튼 그런 미운털, 영준 어르신이 얼마전부터 인지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원래 치매가 있기는 했으나 심각하지는 않았는데, 어느날부터 망상증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오늘 학교가야 되는데, 여기 가까운 학교가 어디에요?
-프라이팬 없어요? 프라이팬 좀 줘요. (고기를 가져온 적 없음에도)불고기를 가져왔는데... 그거 구워서 다른 어르신들하고 나눠 먹게요....
-우리 아저씨가 기다리는데...얼른 가봐야 되는데, 나좀 데려다 줘요...(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서성이며)
언제부턴가 아침에 내가 출근하면, 이런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보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었다.
어느날 근무중 영준어르신과 내가 겪은 일이 있다.
어르신은 팬티형 기저귀에 속기저귀 두개를 착용하고 계셨다. 그러다 소변을 보면 한장을 빼고 다시 한장을 추가해 드리는 것이다.
워커를 밀고 다니는 다른 어르신들은 기저귀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가능한한 화장실에가서 스스로 배변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췌장암 말기였던 주신 어르신 또한 그런 분이셨다. 금방이라도 탁 부러질 듯한 깡마른 체구에 휘청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손으로 뒤처리를 하려 애쓰셨다.
영준어르신은 그분과도 달랐다.
충분히 혼자 화장실에 다닐 수 있음에도 소변이 새는 이유로 기저귀를 한다면, 젖은 기저귀를 스스로 빼내는 일정도는 능히 할 수 있으나 절대로 그러지 않는 대신, 수시로 우리가 직접 기저귀를 갈아주기를 요구했다.
그 시간 간격이 와상환자들은 4시간 간격이라면, 이분은 빠르면 30분에서 1~2시간 간격이었다. 물론, 와상환자들과 달리 수시로 이동을 하다보니 뇨의를 더 잘 느낄 것이며, 그때마다 젖은 기저귀를 견디기 어려워하므로 요구할 때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갈아드린다.
그런데, 그게 어느때는 정말 시도때도 없어서, 우리가 다른 분들의 기저귀케어를 하는 시간이거나 간식을 드려야 하는 시간이거나, 혹은 점심식사를 드리고 마무리를 하는 바쁜 시간이거나간에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조건, 자신이 쌌다는 느끼는 순간, 그 찝찝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곧장 방으로 모시고 가서 해결해드린다.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
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식사뒷마무리 먼저 하고 금방 해드릴게요!
우리는 바쁜 손길을 움직이면서도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르신은 참지 않았다.
몇번이나 그렇게 말하자, 그 밉상을 향해 내가 한마디 했다.
어르신, 저희 지금 너무 바쁘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원래 다른 어르신들은 4시간마다 갈아드리는데, 어르신은 늘 수시로 갈아드리잖아요...그런데 지금 잠깐만 참아주시라고요...
그러자 어르신은 눈을 똥그랗게 뜨며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안 좋은 것을 알아차린 다른 요양보호사가 하던일을 팽개치고 서둘러 어르신을 끌고 방으로 가서 기저귀를 갈아드리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순간, 영준 어르신은 치매환자도 약자도 아니었다.
어디 그렇게 해봐! 너희들 꼬투리만 잡으면 다 일러바칠 거야! 하는 심술사나운 노인네에 불과했다.
그 말을 들은 요양보호사가 내게 그말을 들려주며 조심하라고 한다.
나는 좀 황당했다. 기저귀를 안 갈아준다는 말도 아니고, 뻔히 보듯이 가장 바쁜 시간이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왜 문제인가? 그걸 가지고 자신이 입을 놀리면 너는 끝장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다니... 치매노인이라고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도 그런 말을 하는 태도에는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불쾌했다.
그 기다림은 아무리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을 것이었다. 그 10분을 어르신은 참지 못한 것이다. 물론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이며, 그런 의미에서 틀렸다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에서, 현재 내가 일하는 4층에 계신 10여명의 어르신을 낮동안 두명의 요양보호사가 보살피려면 일의 순서가 정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른이 어른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그자신의 태도가 중요하다.
영준어르신의 마음 속에는, 너희들은 돈 내고 부리는 사람이니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때마다 '고맙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기 위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약한 심술쟁이처럼 변해가는 영준어르신이, 이전부터도 밤이면 잠들지 못하고 배회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최근 부쩍 야간근무자를 붙잡고 횡설수설한다고 했다.
최근 한밤중에는 야간근무자에게 다가와 떡이 먹고싶다, 떡을 하러가야 한다고 말하며 배회를 했다고한다.
그러다 끝내 영준 어르신이 낙상사고를 겪었는데, 그시각에 야간근무자는 다른 어르신의 기저귀케어중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출근하자마자 그 얘기를 하는 것으로보아 야간근무자는 그일이 몹시 신경쓰였던 것같았다.
곧이어 간호조무사가 오고, 우리는 CCTV를 돌려보았다.
3월3일 밤 10시50분경 영준 어르신이 잠들지 못하고 혼자 워커를 밀고 방밖으로 나가자, 야간근무자가 다시 데리고 들어가 자리에 눕혔다. 그러나 어르신은 곧바로 일어나 어둠속에서 침상밖으로 몸으르 빼내어 워커를 잡으려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주춤주춤하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 상황은 매우 천천히 벌어졌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지도 않았으며 보기에 몸에 큰 충격이 가해지는 일도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야간근무자가 달려와 자리에 눕히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그런데, 아침까지도 어르신은 잠들지 못한 채 비몽사몽인 채로 눈을 뜬건지 감은 건지도 모를 상태로 침상에서 버둥거리고 계셨다.
야간근무자 신선생이, 바닥으로 주저앉은 것과 관련해 고관절쪽이 아픈지 물으니, 아프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제서야 신선생은 원장에게 간밤의 사고에 대해 알렸다.
곧바로 응급상황에 돌입했다.
이후에 어르신은 병원으로 향했고 진단결과 대퇴골골절이라는 소견과 즉시 입원과수술이 결정되었다.
그로부터 신선생은 사고경위서를 작성하고 야간근무소홀의 무거운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그소식을 전해들은 우리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CCTV상으로 볼때 어르신의 낙상은 그리 심각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르신은 넘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쓰다가 마지막순간에 간신히 바닥을 향해 쪼그리고 앉는 식으로 앉았을뿐 엉덩방아를 찧거나 한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퇴골이 골절됐다는 소견이 나왔다는 것이 의아했다. 아무리 골다공증이 심하다해도 그런 식으로도 골절이 일어나다니!
특히 야간근무자 1명이 13명의 어르신을 커버해야 하는 시간대에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밀착커버할 수는 없다. 치매로 인한 배회와 망상으로 야간근무자의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어르신곁에 밤새 붙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야간근무자가 일부러 영준어르신을 외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고가 나면 가장 불리한 사람이 그 근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일로 원장은 몹시 화가 났다.
사고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졌을 때, 가족은 펄펄 뛰면서 분노했다.
왜 자기 어머니를 더 잘 보살피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요양원은 일대일 간병시설이 아니며 어떤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아니다. 다만,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한 상태의 어르신들의 여생을 가능한 일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언제나 모든 경우에 자신의 부모님이 우선적으로 최대한 배려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마음만큼 부모를 돌보지 못하고 시설에 보냈다는 죄책감과 애틋함 때문이 아닌가... 그러한 심적부담감을 때마침 터진 사고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며 원장에게 핵폭탄을 쏘아댔다.
막무가내식 공격을 받은 원장 또한 야간근무자의 사고대처방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즉시 간호사를 통해 원장에게 통보되어야 하는데, 날이 새고도 한참 후에야 원장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하필, 그날 다른 층의 또다른 여자 어르신이 배회중 야간근무자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뒷걸음질치다 주저앉았고 골절의심소견을 보여 원장과 함께 병원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엎친데 덮치듯, 하루이틀사이에 어르신들의 골절사고가 이어지자 원장으로서도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보호자들은 모든것을원장의 관리소홀로 몰아세웠으니 말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영준 어르신이 당분간 입원하여 수술과 치료를 받게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야간에는 물론, 주간에도 우리 근무자들을 적잖이 볶아대던 어르신과 가족을 당분간 안 봐도 된다는 것만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나를 포함한 모든 근무자들의 마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