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8.어느날, 요양원 일기_18

_뜻밖의 부고

by somehow

3월13일, 우리 4층에 계신 득수어르신의 아내인 미순어르신이 침상 채로 2층에서 옮겨져 왔다.


요양원측의 배려라고나 할까, 서로 자발적으로 다가가 손 한 번 맞잡을 수 없는 지경일지라도 좀더 가까이 두분이 계시도록 하여 (주로 득수어르신이)보고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때는 더욱 용이하게 두사람이 만날 수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날, 미순어르신의 침상을 401호에 들이고도 부부상봉은 미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근무자들은, 일단 자리는 잡았으니 앞으로 아무때나 만나게 해드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하루 쉬고 15일, 어제 출근했을 때, 간밤 야간근무를 한 원선생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눈을 껌벅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릴듯 말듯 제스처를 해보이며...


득수어르신이요....가셨어요....


네-? 어디 가셨다고요?


어쩐지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보이는 야간근무자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어젯밤에요....가래가 엄청....그러더니 내가 봤을땐 이미 청색증이 오고 눈이 돌아갔더라고요....그전에 변을 엄청 많이 보셨는데, 그거 몇 번씩 치우고나서 보니까 그러시더라고...병원에 가셨는데...아마 돌아가셨을 것 같아요...


낮에 넣은 좌약때문인지, 밤에 득수어르신은 엄청난 양의 대변을 쏟아냈다고 한다.

어르신의 이상증세를 눈치챈 야간근무자는 부랴부랴 원장에게 연락했고, 구급차가 달려와 밤12시가 넘은 시각에 황급히 어르신을 실고 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득수어르신은 아마도 돌아가실 것같다고 했다. 물론, 구급차로 떠날 때까지는 숨을 쉬고 계셨으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대 그럴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출근한 오전7시 무렵 이후로 각자 제근무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는 사람들마다 득수어르신의 간밤의 상황에 대하여 듣고는 모두들 놀라기 시작했다.

마침, 어제 식사도움을 했던 근무자는 더욱 황당해했다.


득수어르신이 원래 식사를 절대로 남기지 않고 다 드시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입에 넣어드려도) 삼키지를 못하고 물고만 계시는 거에요. 가래 끓는 소리는 평소보다 좀 더했는데 그때문인지 몰라도 못 먹겠다고만 하셨어요...그리고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으니,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며칠동안 변을 못보셔서 좌약을 넣어둔 상태여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외 오늘의 결과를 예상할 만한 징조같은 건 없었어요....그래서 더 당혹스럽네요...


야간근무자의 말을 되짚어 보자면, 득수어르신이 밤 12시 넘어 구급차로 떠난 뒤의 결과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원장이 가족에게도 알리고 병원현장에서 어떤 조치들을 했는지, 구급차로 가는 동안 돌아가신 건지 그 후에 돌아가신 건지,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 돌아가신 건지도 모른다.


오전이 다 지날 즈음, 원장이 나타났다. 거의 병원에서 밤을 새고 가족에게 인계한 뒤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나온 것이다. 그후, 득수어르신의 부고가 정식으로 떴다.


득수어르신 오전 8시20분경 돌아가심.


하루 전날까지 아무도 득수어르신의 마지막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든 마지막이 닥쳐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득수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내가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 떨리는 손으로도 스스로 식사를 하려 애쓰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다시 만난 어르신은 온전히 타인의 손에 의지하여 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물을 먹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빳빳하게 굳어진 어르신의 기저귀를 교체하거나 한번씩이라도 일으켜 휠체어에 태우기라도 하려면 그야말로 통나무를 움직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신만은 비교적 또렷해서 가끔씩 아내인 미순어르신을 보러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근무자들은 그렇게 했다.


통나무같은 육신에 갇힌 정신은 가끔 돌아버릴 지경이 아니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가끔씩 득수어르신은 소리를 지르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비명의 뜻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어느때는 집에 가야겠으니 일으켜 달라거나, 출근을 해야하는데 날씨가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할 때면 난감했다.


앞서 17.어느날, 요양원 일기_ 7에서 득수어르신과 미순어르신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물론, 미순어르신은 남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남편보다 전신구축이 더욱 심한 미순어르신은 아기처럼 웅크린 자세로 온몸이 굳어져 턱관절마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어제, 득수어르신의 부고 들은 뒤에도 우리는 그소식을 전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일지라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미순어르신께 어떤 충격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안타까웠다.

엊그제 4층으로 옮겨온 직후라도 한 번 두 분이 만나게 해드렸다면 어땠을까...마지막으로 아내의 얼굴을 보고 떠났더라면, 득수어르신의 마지막걸음은 조금은 덜 아쉬웠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존재하신 득수어르신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