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애증의 부부
부부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완성을 향해 함께 가는 존재가 아닌가.
수십 년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둥지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적지않은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함께 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계산과 논리가 아닌 신뢰와 존중이 아닐까.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관계, 그러므로 누군가는 '결혼이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인생을 함께하고 인생의 여정을 즐기고 모든 목적지에 함께 도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을 것이다.
득수 어르신도 한때는 틀림없이 아내를 사랑하였을 것이고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의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상을 호령하듯 거칠 것 없이 살아온 남자의 최후는 끝내 이토록 서글플 따름이다. 세상이 제 것인 양 펄떡이던 세월이 부질없이 흐른 뒤, 남은 것은 결국 마음껏 소리내어 울어버릴 수도 없게 죽어가는 육신 뿐일까.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 같은 공간 어느 구석엔가 아내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만으로도 의지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아내를 볼 때마다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6년전, 아내인 미순 어르신이 알츠하이머도 모자라서 혈관성 치매에다, 팔다리 구축과 심각한 강직현상까지 보이는 상태로 서서히 살아있는 화석처럼 변해갈 때, 득수 어르신은 거의 날마다 아내를 보러 버스를 타고 찾아왔다고 했다.
날마다 안타까운 심정을 부여잡고 침상에 누운 아내를 보러 오간다는 것은 참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지난날을 참회하고 싶었을테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득수(가명) 어르신은 젊은 시절, 직업군인으로서의 직업정신이 넘치다 못해 아내조차 부하 다루듯 했을까.
가족들의 전언에 의하면, 아무튼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그리 정답게 혹은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했던가 보다. 그래서 훗날, 아내가 그토록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까.
그래서, 두손두발 걷어붙이고 매달려도 뒤웅박은 이미 다 깨진 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있을때 잘하라'는 통속적인 표현이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질 지경이다.
두 사람은 85세 동갑으로 장기요양등급상 미순 어르신은 1등급, 득수 어르신은 2등급이다.
그러나 두분 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내도 없이 지내던 상황에서 본인도 그렇게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던가보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득수 어르신은 직업군인이었다는 젊은 시절의 이름표에 걸맞게 체격도 크고 음성도 우렁차다.
물론, 말을 잘 하지는 못하는 상태이다. 왼쪽이 마비되어 나머지 한 손밖에 쓸 수 없지만, 그마저도 내가 만나게 된 시점에서 짐작하자면 나머지도 그리 자유롭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처음 침상에 누운 어르신을 보았을 때,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했다.
편마비가 있음에도 몸이 야윈편도 아니었고 당연히 자유로운 거동이 불가능하고 몸이 많이 굳어진 상태였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져 구부리거나 굽히는 건 전혀 안되고, 양팔도 마비가 없는 쪽 관절만 조금 굽히는 정도였다. 스스로 거동이 불가하니 기저귀를 착용하고 계셨다.
체격이 커서 기저귀 교체는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문제는 한번씩 이동을 해야할 때인데, 두세 명이 힘을 합쳐 침대를 일으켜 세우고 침대에 앉히는 일부터 쉽지 않다. 허리도 일반인처럼 유연하게 굽혔다 폈다가 되지 않고 대체로 뻣뻣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잘 앉혀도 뒤로 뻣대는 식이 된다.
그렇다고 거동불가하다는 이유로 365일 침상에만 누워있게 해서는 안된다.
원칙적으로 모든 거동불가 어르신들도 돌봄종사자들은 힘들어도 하루에 한번씩이라도 몸을 일으켜 휠체어에 태워 앉히고 잠깐씩이라도 바람을 쐬도록 해야한다.
그때 요긴한 기구가 있다.
허그라는 말 그대로 침대나 휠체어에 앉은 상태인 어르신이 저 기구를 껴안듯한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것까지만 우리가 하면 된다. 그런다음에, 버튼을 누르면 껴안듯한 자세로 얹혀진 어르신을 기구가 원하는 위치까지 들어 옮겨준다.
이 기구가 없으면, 어르신을 껴안아 옮겨 앉히는 모든 과정을 요양보호사 등의 돌봄종사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체구의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 두명이서 보조를 맞추어 옮겨앉히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특히 득수 어르신처럼 체격이 큰 남자를 직접 몸을 써서 들어 옮기기는, 여자 요양보호사 두 명이 달라붙어도 쉽지 않기에 허그로봇을 이용하도록 요양원 측에서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득수 어르신이 휠체어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해야 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이 기구를 적극활용했다. 아주 유용한 기구이다.
득수 어르신은 처음에는 좌측 편마비만 있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까지도 불편해지게 된 듯하다.
식사는 밥도 아니고 죽이다. 반찬은 일반 찬을 다진 상태로 드리는데, 이렇게 직접 떠먹기 힘든 경우는 죽에다 반찬을 모두 섞어드린다. 그러면 수저로 한번에 떠서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저로 죽과 반찬이 섞인 것을 떠서 입으로 가져갈 때는 심하게 떨린다. 식사가 끝나고 보면 앞치마에는 흘린 음식물이 흥건하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떠먹여주는 걸 싫어한다.
일대일로 붙어서 식사를 떠먹이는 일만 하지 않아도 우리 일이 훨씬 줄어든다. 그럼에도 간혹,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으니 떠먹여주는 걸 받아드시면 더 낫지 않을까....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나 오늘은 먹여주길 바라실까 싶어 조심스레 여쭙곤 한다.
어르신, 먹여드릴까요?
그 표정을 나는 이해하겠다.
그 눈빛에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네, 천천히 드세요, 어르신....
그러면, 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리고 덜덜덜 떨리는 수저로 죽을 한술 뜬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간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1/3은 앞치마로 흘러버린다. 남은 양이라도 입으로 들어가지만, 나중에 보면 입술 한쪽으로 음식물이 흐르고 있다.
편마비로 인해 입술도 한쪽은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어르신들의 식사를 돕는 중간중간 수시로, 우리는 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드린다.
잘 하셨어요, 어르신. 맛있게 드셨어요?
식사마무리를 하며 이렇게 여쭐 때면, 또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마무리를 돕고 약을 드시게한 다음 양치도구를 드리면 그 역시 스스로 하시느라 애를 쓰신다.
양치질을 하고 컵의 물을 머금어 헹구어 뱉고 하는 일 또한 오래 걸릴 뿐더러, 턱 밑으로 물이 줄줄 흐르지만 끝까지 해낸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의 의지력에 대해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내고 싶은 의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남의 도움 없이 해내고 싶은 마음.
어쩌면 현재의 상황에서 밥까지 받아먹는다면 그 자신으로서는 끝이라는 생각, 아주 비참한 심정이 될 것같기도 하다.
뭔가 하루하루 한가지라도 자기 의지로 해낼 수 있어야 살아있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자 남자 방, 여자 방에 기거하기에, 또 어느 쪽도 마음대로 가서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어찌보면 한 공간에 있으나 마음 먹지 않으면 얼마든지 한달이고 두달이고 간에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낼 수도 있는 상태이다.
미순 어르신과 달리 득수어르신은 아내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듯했다.
.....미......순........
가끔, 기저귀를 갈아드리러 들어가면, 이렇게 운을 떼곤 하신다.
네? 미...순..., 미순 어르신이요? 네, 왜요? 만나고 싶으세요?
아내의 이름을 더듬거릴 때면 이렇게 확인한다.
그러면 득수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득수 어르신이 아내를 보고 싶다고 하면, 대체로 득수 어르신을 모시고 미순 어르신 방으로 간다.
허그를 이용해 득수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우고 미순 어르신의 방으로 가서 침상에 눕혀져 있는 아내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저 공처럼 구부러지고 굳어진 아내의 모습을, 남편은 그 앞 휠체어에 앉은 채로 한동안 바라본다.
미순 어르신도 꼴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소리도 못 지른다.
그냥 흘깃, 그가 온 것을 보고도 아무런 특별한 행동을 할 수도 없다. 늘 그 상태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득수 어르신은 잠시 멀뚱히 건너다본다.
얼마 후,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면 득수 어르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음 속으로는 피눈물이 흘렀을까.
미순 어르신의 마음 속에는 어떤 파장이 회오리쳤을까......
다만, 그 뿐이다.
미순 어르신과 득수 어르신은, 주로 오전에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시간에 대부분 참석하신다. 그날그날의 근무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휠체어로 두분을 이동시켜 만나시도록 신경쓰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득수 어르신 옆에 미순 어르신의 휠체어를 갖다 놓으려 애쓴다. 혹은 득수어르신자리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아내의 자리를 잡아드린다.
득수 어르신이 가끔씩 그렇게라도 아내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득수 어르신은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한다.
손을 움직여 아내의 손을 잡지도 못 하지만, 말 한마디도 제대로 또박또박 건네지 못하지만 뻣뻣해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목을 돌려 눈동자를 돌려 아내를 그저 말없이 쳐다본다.
다행이다, 잘 있구나, 하는 표정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할 뿐이다.
반면, 미순 어르신은 사실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선임자들에 따르면,
미순 어르신, 득수 어르신이 어르신 보고 싶어하시는데요. 우리 나가서 만나고 올까요?
하고 물으면, 날카로운 음성으로 또박또박 이렇게,
욕을 냅다, 있는 힘껏 내지른다는 것이다.
어머나? 정말로 욕을 하신다고요??난 도무지 뭔 소리하시는지 못 알아듣겠던데요?
내가 되묻자, 선임자가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이에요! 다른 말은 잘 못 알아들어도, 득수어르신 얘기만 하면 어찌나 욕을 아주 또박또박 잘 하시는지!! 그 만큼 싫다 소리겠죠!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가.
남남으로 만나서 온전히 한몸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함께 고난을 헤치고 기쁨을 나누고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존재 아닌가.
그 과정은 길고 지난하기 이를데 없으나, 어느 한쪽의 편애와 강압 등이 평화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인생이 다 지나간 뒤에,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아닌가....
김광석의 노래_60대 어느 노부부이야기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노래 제목은 이제 좀 바꿔야할 듯...
요렇게,
60대 어느 노부부이야기---->>>> <어느 노부부이야기 >
60대는 요즘 노부부라고 하기도 뭣하다.
적어도 80대는 되어야 노부부소리가 어울릴 듯하기에.
https://youtu.be/llYG9PWOSnU?si=r5WSWg8qe2VkL6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