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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Nov 06. 2024

16.어느날, 요양원 일기_6

_애증의 관계, 부부

가족들과 떨어져 어느날 갑자기 홀로, 낯선 요양원에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더구나, 자신의 옆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조차 다 늙고 병들어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채로 그저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에 어울릴 정도라면.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는것을 죽으러간다고 여기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죽을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때도 혼자가 아닌 둘이라면 절망감이 좀 덜할까....

요양원에는 간혹, 부부가 함께 입소하는 경우가 있다. 아내나 남편이 먼저 입소하였는데, 훗날 나머지 배우자도 상태가 안좋아져 아내나 남편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자매가 함께 입소한 경우도 보았다.



미순 어르신은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팔다리 구축/강직 상태로 먼저 입소하셨다. 그 몇년 후에는 남편인 득수 어르신도 요양원에 들어오셨다.


미순(가명)어르신은 현재 85세 정도로, 2018년 무렵 입소하셨다.

수급자 목록에 따르면, 미순어르신의 주요질환은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 팔다리구축/강직 등으로 기록되어있다. (수급자목록은 요양원 근무를 시작할때 전반적인 오리엔테이션시간에 받은 자료중 하나이다. 내가 돌보게 될 어르신들의 상태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기에 주어지는 것이다.)

미순어르신을 괴롭히는 것은 알츠하이머와 혈관성치매 뿐 아니라, 팔다리의 구축과 강직 증세가 더 심각해보였다.


처음 미순어르신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어린아이처럼 작고 앙상한 몸은 웅크린 채로 네개의 팔다리가 서로 뒤엉킨 듯한 자세로 굳어진 채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놓여 있다, 라는 표현은  한쪽으로 기울어 굳어진 목, 공처럼 웅크린 등, 거미의 다리처럼 앙상하고 서로 뒤엉킨 채로 굳어진 팔다리의 상태때문에, 좌우 양쪽으로 크고작은 쿠션을 받쳐주지 않으면 쪽으로나 저쪽으로 쏠려버리게 되는 현상때문에 떠오른 단어이다.


그래서 기저귀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몸의 좌우로 쿠션을 잘 정돈해 받치고 가능한한 천장을 바로 보는 자세를 유지하도록 한 뒤, 잔뜩 웅크린 자세로 굳어진 고관절 부위를 조심스레 잡아펼쳐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힘껏 잡아당겨도 결코 고관절 부위가 환상적으로 느슨하게 열리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기저귀를 확인하려면 최대한 힘조절을 해가며 잠깐씩이라도 구겨진 관절을 이완되도록 노력하며, 한손으로는 기저귀의 밴드를 열고 두 무릎이 다시 금세 오무려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닦아내고 새 기저귀로 교체하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끝내야 한다.

온몸의 관절이 구부러지고 웅크린 채로 굳어져 있는 만큼 목도 빴빳하게 굳어 있다.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르신, 기저귀 갈아드릴게요.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우리는 기저귀 교체를 시작하기전 먼저 이렇게 이야기한다.

굳어져 있는 관절을 조금이라도 이완시키려하면 아플 수, 고통을 느끼며 기저귀 교체를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으...ㅇ...응....


어느때는 이렇게 간신히 들리는 음성으로 우리 말을 알아들었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변을 아주 많이 봤거나, 설사를 했거나 소변도 아주 많이 싸서 기저귀가 많이 젖었거나 한 경우는 침대시트까지 갈아야할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면 일이 커진 것이라, 수습에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 요양보호사들은 보통 생활실 하나에 한사람씩 담당하지만, 담당한 일이 빨리 끝난 요양보호사는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어르신들을 케어하는데 성의껏 동참한다.

미순어르신처럼 혼자서 잘 해내기가 쉽지 않은 분들은 두사람이 함께 하면 훨씬 용이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잘못하면 어르신을 아프고 불편하게 할까봐 처음에는 많이 조심스러웠으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로 구축된 관절을 움직이면 되는지, 어떻게 하면 어르신을 가능하한 덜 아프게 하면서 기저귀를 잘 교체할 수 있는지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미순어르신의 경우는 이미 온몸이 중심을 향해 오그라든 상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수축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수시로 체위변경을 해야 하는 경우이다.

같은 자세로 계속 있다보면, 굽어진 팔이나 다리의 어느 한부분이 눌려 욕창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부러진 두 무릎 사이나 오그라붙은 양쪽 팔의 관절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쿠션과 완충제를 대어놓곤 한다. 그것은 두어시간마다 이리저리 신체의 또다른 부위로 옮겨가며 적용시킨다.


그렇게 이미 굳어진 관절일망정 더이상 악화되지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경을 써가며 기저귀교체를 해도 어느때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평소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으시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최선을 다해 짜증을 내고 욕을 하기도 한다.

욕이란, 그역시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억양을 통해 짐작하는 것이다.

그나마 마음이 편하고 고통스럽지않을 때는 이런저런 물음에 누그러진 억양으로 대꾸를 한다. 그러나 짜증이나면 언성이 높아진다. 비명지르듯 힘껏 소리를 내는 것이다.

가끔은 뭐라고뭐라고 나름대로 말씀을 하지만, 실제로 나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저 음성의 톤으로 감정상태를 짐작할 뿐.


관절의 구축은 기저귀 교체시에도 난관이지만, 식사 도움시에도 어려움을 겪는 요소이다.

아래턱이 목에 붙을 정도로 굳어진 상태일 뿐아니라 턱 관절도 자유롭지 않다. 입을 충분히 벌릴 수도 없다. 입은 그저 수저로  음식물을 겨우 흘려넣을 수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식사는 죽에 갈찬(모든 반찬을 갈아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죽처럼 만든 것)을 드린다.

식사 때도 온전히 일어나 앉을 수 없으므로 웅크린 채로 누운 자세 그대로 침상을 가능한한 올려 세우고 앞치마를 두르면 온몸이 거의 다 덮힌다.

그 상태로 한 사람이 붙어서 죽 한 숟가락에 갈찬 한 숟가락씩 떠먹여 드린다.

그런데, 그 조차 잘 드시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또 문제다.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는 드리는 대로 잘 받아 씹어삼킨다. 그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않고 뭔가 컨디션이 나쁘거나 하시면 입을 벌리지 않고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강제로 입을 벌리고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럴 때면, 우리는 난처해진다.


어르신, 식사하셔야지요....조금이라도 드셔요. 안 그러면 기운 없어서 안돼요....


.............................(입술을 앙다문채로 말이 없다)


어르신, 한 번만 드세요...자, 아- 하세요....세 번만 드세요, 네?


.....................


그렇게 몇번을 졸라대면서 수저로 두 입술 사이를 벌리자고 애쓰다 보면, 슬그머니 입을 벌리고 받아드시기도 하지만, 혹은 아주 힘들게 더듬거리며 이렇게 대꾸하시기도 한다.


.........ㅇ ㅏ ㄴ....머,....ㄱ .......(안먹어)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애를 써야 하는지는 그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말을 할 때는 얼굴의 모든 근육이 함께 씰룩거려야 하는 것이다.

몇번 권하고 강제로 입에 넣어보려고도 하지만, 끝내 거부할 때는 더이상 강요하지는 않는다.


매일 팔팔하게 싸돌아다니는 우리도 어느때는 밥이 먹기 싫을 때가 있는데, 하루종일, 일 년 열두 달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스스로는 체위조차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오죽하랴 싶은 것이다.

대신에 환자들의 영양보충식으로 나오는 음료를 드린다. 그것은 빨대를 이용해 마시는 형태라, 그나마 조금 더 먹기가 수월하기 때문인지, 종종 식사를 거부하시는 분들도 그것은 잘 드시곤 한다.


가끔은, 저런 상태로 살아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릇 살아있다 함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그런데 미순 어르신은 어느것 하나도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

다만, 식사를 거부하는 것만 가능하다.




현재 부부 입소자는 미순, 득수 어르신 부부뿐이다.

미순 어르신의 남편인 득수어르신은 미순 어르신보다 4년 뒤에 입소했다.

미순 어르신은 다른 여자 어르신들과 함께 머물고, 득수 어르신도 다른 남자 어르신들과 함께 머물고 계신다.


동료, 선배 요양보호사들의 말에 따르면, 미순어르신은 득수어르신때문에 젊은시절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미순 어르신은 어쩌면 자신이 현재상태에 처하게 된 것도 결국은 웬수같은 남편때문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미순 어르신은 득수 어르신 아주 싫어해요. 그 앞에서 얘기 꺼내는 것도 싫어해요.

동료 요양보호사는 이렇게 귀띔해주었다.


득수 어르신은 군인출신이라고 했다. 

요양원관리자에 의하면, 직업군인 출신이라는 득규어르신은, 사는 내내 아내 속을 무척 썩였다는 얘기를 그 자식들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한다. 먼저 아내가 병에 걸려 요양원에 입소한 뒤, 득수 어르신은 몇년동안 거의 매일 아내를 보러 찾아왔다고 한다.

어쩌면 죄책감과 후회같은 심정으로, 아내가 그 지경이 되고나서야 참회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몇년 후 득수 어르신까지 쓰러졌고 결국, 아내가 있는 요양원으로 뒤이어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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