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를 닮은 영훈 어르신과 비슷한 시기에 입소하시고 같은 생활실을 사용하게된, 마찬가지로 치매를 앓는 오규 어르신의 사연을 옮겨 본다. 그분을 보면, 인생무상이라는 구태의연한 한마디의 의미를 절로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 오규 어르신의 첫 인상은 '홀쭉이와 뚱뚱이'의 '홀쭉이처럼 말랐다'이다.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미소띤 표정은 일부러 미소를 짓는다기보다는 그냥 원래 그렇게 '착한 인상'인 듯했다.
어느날, 착한 인상의 오규 어르신이 생활실로 안내되었다.
오규(가명)어르신은 선해 보이는 표정만큼 한편으로는 어린아이같았다.
낯선 곳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걸어들어온 오규 어르신은 영훈 어르신의 맞은편 침상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오규 어르신은 치매가 아주 심하세요.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알고계시고 환경이 바뀌어서 낯설어 하실 수 있으니까, 신경을 좀더 써주세요.
오규 어르신이 입소하던 날, 원장님이 우리들에게 당부한 말씀이다.
물론, 영훈 어르신이 입소하실때, 그외 다른 누가 새로 입소하시더라도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처음엔 특히 신경을 써야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치매가 아주 심하시다,라는 말에서는 궁금증이 일었다.
얼마나 심하길래 저렇게 말씀하실까...
그 궁금증은 오래지않아 해소되었다.
새로 자리잡고 지내게 된 침상에 기대어 앉거나 누워 이웃 어르신들과 눈인사도 하고 우리들이 대화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오규어르신은 변함없이 미소띤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버릇인 듯 아닌 듯 반응했다.
또한 어떤 질문을 해도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처음에는 낯설음 때문인가 생각했다.
속으로 많이 긴장하고 있다면, 낯 선이가 자꾸 이것저것 물어도 얼른얼른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식사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30~40분 전부터 각방을 돌며 침상에서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의 간이 식탁을 세팅하고 자리에앉히고 앞치마를 둘러드리고, 물컵과 휴지, 약 등을 놓아드린다.
한편으로는 거동이 가능하신 어르신들은 거실의 공동식탁으로 이끌어 자리를 잡아드리고 마찬가지로 개인소품을 세팅해드린다.
그로부터 어르신들은 정말 유치원 아이들처럼 얌전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두른 채(드물게는 앞치마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계심) 참을성있게 기다리신다.
앞치마는 아기들이 음식물을 흘려 옷을 망치는 것을 예방하는 턱받이와같은 용도이다.
손바닥만한 아기들용 턱받이는 어르신들에게는 소용이 없기에 환자나 요양원어르신들 용으로 판매되는 것이 따로 있다. 방수원단으로 제작되어 음식물을 흘려도 옷을 버리지 않도로 되어있는 그것은 하루 세번, 매 식사때마다 아래와 같이 사용하고 식사후에는 즉시 매회 세탁하여 건조시켜 준비한다.
방수원단으로 만든 어르신용 앞치마 착용례(이미지출처:네이버스마트스토어)
기다리던 식사가 나오면, 각 생활실로 거실의 공동식탁으로 식사를 배식한다.
스스로 걸으실 수 있으나, 첫 날이다 보니 공동식탁으로 나가서 낯선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는 침상에서 식사를 하시는게 나을 듯하여 침상의 간이식탁을 올리고 식사가 담긴 식판을 놓아드렸다.
어르신, 식사하세요.
치매가 있을뿐 팔다리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기에 잠시 식사를 스스로 하실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
응..........
그러나, 어르신은 대답인지 아닌지 알수 없는 소리만 내고는 고개만 끄덕이며 숟가락을 든 채 밥을 뒤적거리기만 하셨다. 조금더 지켜보자니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 듯보였다. 혹시나 싶어서 여쭈었다.
어르신 식사 안 드실거에요? 제가 좀 드려볼까요.
응........
또 똑같은 대답만 하고 같은 동작만 반복하셨다.
나는 숟가락을 돌려받아 밥에 반찬을 얹어 먹여드렸다. 아주 잘 드셨다.
어르신, 잘 드시네요? 그런데, 왜 혼자는 안 드세요?
응......먹을게....
대답을 하면서도 먹여드리니 잘 받아드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다시 혼자 드시게 숟가락을 쥐어드려 보았다.
.........
역시나 이것저것 뒤적거리기만 할뿐 입으로 가져갈 생각이 들지 않는 듯 했다.
그제서야 파악했다.
식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근무하는 날에는 오규어르신의 식사를 주로 돌봐드렸다.
스스로 밥과 반찬을 조화롭게 집어먹는 방법을 잊어버렸으나, 떠먹여드리면 아주 잘 드셨다. 밥과 반찬과 국을 모두 싹싹 떠먹여드리면 끝까지 마다않고 잘 씹어드셨다.
어르신, 맛이 어때요? 맛 있었어요?
응, 맛있어....
대답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먹기 싫다고 떼쓰지도 않고 떠드리면 꼬박꼬박 잘 맛나게 씹어드셨다.
식사를 마치고나면 곧바로 그자리에서 양치질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역시 식사 전에, 치약을 묻힌 각자의 칫솔과 헹굼물이 담긴 작은 컵을 퇴수용 바가지와 함께 준비해둔 양치세트를 가지고 이루어진다. 식사가 끝나면 각자 (경구복용, 각자 병원에서 처방받은)약을 한 봉지 씩 털어넣은 뒤, 양치질까지 일사천리로 끝내야 한다.
오규어르신도 자신이 다니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치매나 혈압 당뇨등에 관련된 치료제)을 하루의 일정식후에 복용한다. 그후 양치세트를 꺼내어 앞에 놓아드리고 치약을 바른 칫솔을 손에 잡혀드렸다.
양치질 하세요, 어르신.
이렇게 말하고 이어서 헹굼물이 담긴 물컵을 들고 대기한다. 그러나...
...........
칫솔을 들고도 어르신은 그것을 만지작거릴 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내 또 감을 잡았다.
아, 그렇구나.... 어르신, 이리 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그러면서 칫솔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이~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신 닦아드린다.
입을 잘 안 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으나, 나는 최선을 다해 잇몸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혓바닥까지 닦아드렸다. 그리고, 물을 한모금 머금게 하며 말했다.
우물우물해서 뱉으세요.......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을 꼴깍 삼켜버리는게 아닌가.
어르신, 양치한 물을 삼키시면 어떡해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 이해했다.
어르신은 양치질 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것이다.
양칫물을 삼켰다고 해서 더 헹구지 않을 수도 없어서 다시 한번 물을 머금게 하고는 간절하게 외쳤다.
뱉으세요, 뱉으세요! 삼키지 말고 뱉으세요!!!!
그러나,
.....꼴깍!......어흐(삼킨 뒤 뱉는 숨소리같은 작은 음성으로)....
그러면서 나를 쳐다본다.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삼킨다거나 뱉는다거나 하는 말의 뜻을 이해 못한다는 표정이다.
치매가 심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제대로 파악이 됐다.
오규 어르신은 식사하는 방법도 양치질을 하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그후로도 오규 어르신의 식사를 돕게 되는 날이면, 양치과정에서 어떻게든 헹굼물을 뱉게하려고 애를 썼다.
어르신 우물우물.....해서 뱉으세요, 퉤! 뱉으세요!
주문을 외듯 어르신 귀에 바짝 대고 이렇게 외쳤다. 그러면 아주 가끔 한번은 얼덜결에 '퉤!'소리를 내며 내 말을 따라 뱉기도 한다. 아주 가끔, 어쩌다 한번.
그럴 때면 너무나 다행스러워하며, 다시 한 모금 드리고 다시 '퉤-뱉으세요',를 외치지만 그다음에는 또 꼴깍 삼켜버린다. 그래서 오규 어르신의 소지품 중에는 어린이용 치약이 있었다.
양치할 때면 번번이 양칫물을 삼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어린이용 치약을 쓰시게 했지만, 그럼에도 양칫물을 삼킬때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규 어르신은 순하고 착한 사람의 인상 그대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하는 법도 없었았다. 치매가 주증상인 만큼 어르신의 인격 대부분이 치매에 이미 깊이 잠식당한 상태인 듯했다.
착해보이는 인상으로 미소가 담긴 표정이지만, 우리가 어떤 대화를 시도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몰라....몇 살이지?...하하...
가족분들은 어디 계세요?
몰라....금방 있었는데....어디 갔지?(가족이 온적 없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
다만, 식사를 하고 나서 맛있게 드셨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는 대답했다. 그러나 어떤 반찬이 맛있다느니, 어떤 반찬은 싫다느니 하는 표현은 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자기만의 논리적인 생각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뿐아니라, 오규어르신은 심지어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 와 있는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궁금해하지도 않고, 가족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이 점은 영훈 어르신과 다른 점이다. 영훈 어르신은 집에 가고 싶어하고 가족들을 몹시 그리워했다.
같은 치매를 앓는 상태이면서도 두 어르신의 상태는 이렇게 달랐다.
오규 어르신은 그냥 식사때나 간식시간이면 먹여드리는 것을 항상 맛나게 드셨고, 프로그램 시간에 참여시켜 어울리게 하면 이게 뭐하는 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럴때, 프로그램 강사가 어르신의 이름을 불러드리며 인사를 건네거나 어떤 말을 건네도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여 무표정,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자동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분위기에 어울리는 듯 제스처를 취했으나 그것은 사실 아무 의미없는 반사적 행동에 불과했다.
오규 어르신은 치매 등의 질환말고는 마른 체형이라 몸도 가뿐하고 스스로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요양원에 조금 적응이 되면서부터는 스스로 걸어 방밖으로 나와 거실을 배회하기도 했다.
배회란, 말그대로 목적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다.
목적없이 이리저리 거실 공간을 왔다갔다하다가 닿는 곳이 다른 어르신들의 방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그 방에도 아무 거리낌없이 들어가 돌아다닌다. 그 방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뜬금없이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여자어르신들이 머무는 방은 더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규어르신이 혼자 거실을 배회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스스로 거동하심에도 오규어르신은 기저귀를 착용했다.
식사와 양치질이 불가능한 만큼 스스로 배변뒷처리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대소변처리는 기저귀를 이용했는데, 정해진 시간마다 기저귀를 교체하러 가면 조금 다른 반응이 있었다. 기저귀에 대변이나 소변을 봤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차로 기저귀를 열어야 하는데, 그럴 때면 기저귀를 붙잡고 버티거나 손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행동을 했다.
그러니까 다른 기능은 소멸되어 감에도 부끄러움의 감정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했다.
기저귀 교체시간에 보면 대체로 소변이든 대변이든 저질러진 상태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버둥거리며, 옷자락을 끌어내리면서까지 가리고 감추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어르신, 변 보셨네요. 갈아드릴게요, 잠깐만 손 좀 치워주세요.
그래도 막무가내로 아랫도리를 감추려고 시도한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부끄러워.....아이, 부끄럽잖아....
괜찮아요, 어르신. 얼른 깨끗하게 갈아드릴게요...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상 그 말이 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알아듣든지 아니든지간에 우리는 지금 하려는 행동에 대해 설명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뿐 아니라, 다른 요양보호사들도 오규어르신의 기저귀를 한 번 교체하려면 아주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푸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우리가 남자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은 그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우리같은 여자 요양보호사들로서는 심적 부담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맨 처음 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막연하게 먼저 부담감으로 다가온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부담이 백배였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최소 서너번씩 기저귀교체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앞에서 남자여자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단지, 때때로 배설하고도 즉시 깔끔하게 스스로 뒷처리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가능한한 깨끗하고 뒤탈없게 해드리려는 마음만 남기때문이다.
이해가 갈지 모르겠으나, 처음엔 그 냄새가 당혹스럽기도 했으나 반복될 수록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게 된다.
다만, 한 무더기 대변이나 흥건한 소변에 젖어있는 어르신의 고충을 가능한한 빨리 해결해드리자는 생각만 남는다. 그래서 열심히, 변을 치우고 닦고 새 기저귀를 채워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면 내 마음까지 개운하고 홀가분해진다. 심지어 나, 잘 해냈다!는 만족감까지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그 누구의 격려나 남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그런 자부심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감회이다.
오규 어르신도 요양원에 입소하여 하루이틀 지내시며 적응해갔다.
식사 때마다 떠먹여드려야 하고 양치질을 도울 때도 혼자 두면 안될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어르신이지만 그외 어떤 불만이나 큰소리를 낸적도 없이, 그저 착한 아이같은 표정으로 우리의 손길을 받아들이셨다.
특히 오규어르신의 가족들은 면회를 자주 왔다.
치매가 너무 심해서 집에서 도저히 돌볼 수 없기에 요양원에 보냈으나, 가족들은 어르신을 무척 아끼고 애틋하게 여기는 듯했다.
특히 그 아내분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1층 면회실에 아내와 가족들이 오규 어르신을 만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르신은 예의 미소띤 얼굴로 아내와 가족들과 둘러앉아 있었는데, 아내분은 울고 있었다.
보통의 가족면회 장면은 대부분 화기애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만나는데 어찌 서로 반갑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규 어르신은 자신을 만나러 온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평생을 같이 살아왔음에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어느새 아이가 되어버린 오규 어르신은 이유도 모르는 채로, 해맑은 표정으로 그들 앞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삶의 덧없음을 실감한다.
평생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건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신이 누구인지 그자신이 사랑하며 아끼며 함께 해온 아내와 자식들을 잊어버리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송두리째 잠식해버린 치매에 일생을 강탈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