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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Nov 02. 2024

14.어느날, 요양원 일기_4

_집에 좀 다녀올게요

지난 봄여름께 두분의 남자 어르신이 비슷한 시기에 입소하셨다. 두분은 모두 치매를 앓고 계셨다. 체격은 두사람이 완전 반대로, 한 사람은 곰돌이 푸를 연상시키는 딱 그런 체격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짝 바른 나뭇가지처럼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 스타일의 두사람은 우연인 듯 아닌 듯 4인실에 함께 기거하게 되셨는데, 그 두분과 함께 지낸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남자 어르신들이 치매에 걸리면 혹시 더욱 폭력적일까싶은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지만 특별히 남자라고 해서 더 난폭하고 여자라고 해서 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두 사람중, 곰돌이 푸를 닮은 영훈 어르신에 대해 옮겨본다.



70대 치매환자 영훈 어르신이 사회복지사의 안내에 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생활실로 들어섰다.

대체로 그렇지만,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입소하면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심적으로 당황하며 낯설어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치매가 있고 없고 차이가 없다.

치매가 있어서 지남력이 떨어지는 어르신도 분명한 환경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신다.

영훈 어르신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좋아 보이는 풍성한 체구에 말씀도 잘 하시고 언뜻 적응을 잘 하시는 듯싶어도 한동안은 불안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소 당시 영훈 어르신은 치매가 있고 당뇨, 혈압 등의 질환이 있을 뿐 그외 신체활동력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나중에는 요실금팬티를 사용하게 되었다.)

치매가 심하여 집에서 가족들이 돌보는데 한계를 느껴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 첫날,

함께 왔던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고 혼자만 생활실로 들어서고보니 그때부터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저, 집에 가야 되는데...우리 가족들 좀 불러주세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어 어리둥절한 어르신에게 우리는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단호하게 현실을 알려드려야 한다.

아, 어르신....가족분들은 집에 가셨고요, 이제부터는 여기서 생활하시는 거에요.

이 말을 들은 어르신은 더욱 불안한 눈빛으로 발을 구르며 작은 가방을 움켜쥐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쫓아가며 허둥거렸다.

무슨 소리에요? 저도 같이 가야되는데요...우리 가족들이 먼저갔다고요? 그럴리가 없는데요....

자신이 여기 왜 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홀로 두고 갔다는 소리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고 그로부터 영훈어르신은 입고 온 차림새 그대로 당장이라도 떠날 듯 며칠을 버티었다.


말이 먹히지 않자 휴대폰을 한손에 꼭 쥐고 어디론가 계속 전화걸기를 시도했다.

잠시 통화를 하기도 하는 듯했으나 금세 끊어지고 다시 걸고를 하루종일 반복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왜 전화가 안되지....전화좀 걸어주실래요? 연결이 잘 안되네요...

어르신은 무척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밀곤 했다.



전화통화 시도뿐 아니라 집에 가려는 시도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졸리니 잠 좀 자고, 일어나면 밥을 주니까 밥도 좀 먹고...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지다 보니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도 영훈 어르신은 늘 외출복으로 짐작되는 검푸른 점퍼를 걸친 채, 휴대폰과 몇가지 소지품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은 한쪽 어깨로 해서 터질듯 풍성한 배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둘러매고 버티어 선채로 집에 가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집에 갔다온다는 말이 안 통한다 싶은지, 어느 날부터는,

거래처에 갔다와야 되는데요....돈을 받아야 되니까 그것만 얼른 받아가지고 올게요.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응대한다.

그러세요, 어르신,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니까 점심드시고 가세요...

혹은,

원장님께 말씀드렸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로 그때마다 면피를 일삼았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는 것처럼 어르신과 우리는 같은 말로 서로 반복하여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식사후에 어르신이 원하는 외출을 하게 될까.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대처는 단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연세가 높은 경우 대체로 기억력이 떨어지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실제로 어제 한 일이나 방금전에 한 일도 기억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매가 있는 분들은 특히 더하다.

그래서 방금 집에가고 싶다고 졸라대더라도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만들면 방금전 자신이 뭘 하고싶어 했는지 잊어버린다.

 

그런 까닭에, '집에 가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때도 무조건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나무라듯 말하면 더욱 예민하고 반응하고 태도가 거칠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알았다'고 안심을 시키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영훈 어르신도 당장 집에 가야한다고 하시니, 식사를 먼저 하고 가시자고 하거나, 원장님께 말씀드렸으니 오실때까지만 기다려주시라고 하면 그런 정도는 알아듣고 따라주신다.

그러는 잠시 사이에, 우리가 다른 이야기나 상황으로 유도하면 어르신은 금세 잊어버리고 부지불식간에 새로운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어르신은 조금씩 요양원의 생활방식에 적응해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들과도 대화하고 주위 분들과도 한두 마디씩 주고받으며 무료하고 긴 일과를 보내는 것이다. 특히 무료한 일과중 활력소가 되는것은 거의 매일 오전에 열리는 프로그램시간이다. 요일별로 다양한 신체적, 인지적 기능회복과 유지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행해지는데 영훈어르신은 참여를 독려하면 비교적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동참하신다.


그럴때, 특히 배가 불룩 나온 체격과 아이처럼 활짝 웃는 표정이 정말 곰돌이 푸를 꼭 닮았다.


곰돌이 푸!


그 모습을 본 어느날, 내가 붙여드린 별명이다.

어머, 어르신 그렇게 웃으시는 표정이 귀여운 곰돌이 푸 같아요! 이제부터 '곰돌이 푸! 어르신'고 부를게요!ㅎㅎ

그 소리에 영훈 어르신은 기분이 좋은 듯 더욱 천진하게 하하...소리내어 웃으셨다.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놓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한 걸음씩 조금씩 이곳의 생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영훈 어르신은 타고난 성격이 비교적 낙천적이라 주위사람의 칭찬이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매우 만족스러워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도 느껴질 정도로 잘 적응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한편으로 영훈 어르신만큼이나 가족들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르신이 자나깨나 한손에 쥐고있는 휴대폰 때문이었다.

입소후 며칠에서 적어도 1~2주동안, 어르신은 전화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어디론가 수없이 전화를 걸었다. 처음 며칠은 전화가 되는 듯했다.

나좀 데려가....응? 언제 올 거야?

이런 통화를 몇번 들었다.

가족과 하는 대화 같았는데...가족들은 어르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러자 전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가족들은 한두 번 전화를 받아주다가 지쳐서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는 요양원에 항의를 해왔다.


(아버지가)왜 전화를 자꾸 하게 하느냐, 밤새도록 전화를 걸어대서 가족들이 잠을 못 잔다...

한마디로, 너희한테 맡겼으니 알아서 관리를 하고 제대로 돌봐야지, 왜 자꾸 전화를 해서 남은 가족들도 못 살게 하느냐는 것이다.

처음에, 우리는 그 얘기를 전해듣고 할말을 잃었다. 이해는 하면서도 말이다.

어머나, (어르신을)갖다버린 거네, 진짜로?!

얼마나 집에 가고 싶으면 그러실까요...

너무한다, 가족들....


그후로, 영훈 어르신의 전화기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를 삭제하는 조치가 본인 몰래 취해졌다.

그것을 알리 없는 어르신은 그후로도 계속 통화를 시도했으나 저장된 번호가 없으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기억을 더듬어 전화번호 몇개를 불러주며 눌러달라고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어르신, 전화를 안 받네요! 그리고 여기가 산속이라, 전파 연결이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저희들도 출근하면 전화를 못받아요...

우리는 이렇게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래요? 얼마전까지는 잘 됐는데..이상하네....가족들이 나 찾을 텐데...

어르신은 돌려받은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며 난처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도 어르신은 늘 전화기를 빵빵하게 충전시켜 머리맡에 두고 행여라도 전화가 올까 싶어 수시로 확인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들의 심정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가족들은, 치매환자인 아버지를, 남편을 돌볼 수 없어서 우리에게 맡겼으나, 정작 당사자인 어르신은 치매때문에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된 것이 그저 당혹스럽고 불만스러울 뿐이다.

또한 당신의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이 평생 하던 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고 미처 끝내지 못하고 온 일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종종 자신이 잘 아는 어떤 분야에 대해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뉴스를 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기도 했으며, 어떤 일에 대한 대가를 받으러 가야한다고 잊었던 약속을 떠올리듯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며 격려와 응원의 말을 해드린다.

그러면, 어르신의 얼굴은 뿌듯함 혹은 자부심같은 것으로 가득해졌다.


그래, 나도 왕년에는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사회에서 한 몫을 제대로 해내었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레 던져진 낯선 환경에 불안불안하게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을 때, 영훈어르신의 가족들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밤새도록 전화를 걸어대서 잠을 못자게 할 정도로  아버지가, 남편이 요양원에 적응을 못하는거로 봐서, 아무래도 요양원이 정말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것은 아닐까, 그들도 온갖 걱정으로 날을 보냈던가 보다.


얼마 후 그 가족들이 영훈어르신을 면회하고 갔다.

면회는 별도의 면회실에서 이루어지기에 가족들이 오면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을 1층의 면회실로 모셔다 드린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만큼 만나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서로 원하면 외출도 외박도 나갈 수 있다.) 한참동안 면회를 하고 돌아가면서 그 가족들은 원장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보다 훨씬 좋아지셨네요!

날마다 전화를 하셔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전보다 살도 많이 빠지고 식사도 잘 하시고 무엇보다 표정이 밝아지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곰돌이 푸처럼 빵빵한 배와 후덕한 체구가 예전에는 더 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무절제했던 예전과 달리 식사나 간식시간 등도 규칙적이고 해서 살도 좀 빠지고, 자꾸 전화해서 데려가라 하기에 (요양원이 사람 살 곳이 아닌가 싶게) 아버지(남편)를 못살게 구는가 싶어 걱정했으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본인 스스로 '이곳이 좋고 잘 지낸다'고 하시니, 모든게 요양원에서 잘 돌보아준 덕분이라며 한시름 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전해듣고 우리들도 한숨을 돌렸다.

늘 집에 가고 싶어해서 걱정스러웠고 적응을 못하실까봐 안까웠는데, 그러면서도 어르신은 그 나름의 생존전략을 암암리에 터득하기 시작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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