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참을 수 없는 존재의 비통함
두가지 부류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 구분한다면.
그 하나는, 자신의 삶,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으며 회의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는 연속적인 흐름속에서도 눈한번 깜짝할 정도의 찰나, 매순간에만 존재하는 경우이다.
다시말해, 인지장애가 덜하냐 심하냐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인지장애가 심한 경우는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한금(가명)어르신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여기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끝없이 반문하며 의미를 확인하고자 애쓰는 어르신에 관해 써보려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3일간의 휴무끝에 출근했다.
어르신들의 아침식사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는 때라, 나는 생활실을 돌며 어르신들께 잘 주무셨는지 인사를 건넨다.
평소 인자(가명)어르신은 더위를 타는 편이라 창문도 주로 열려있는 편이고 이불도 잘 덮지 않으신다. 어제 아침에 가보았을 때도 어르신은 이불을 덮지 않은 채였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오늘 아침은 비가 오네요! 금방 아침식사 드릴게요.
인사를 건네고 나온뒤 얼마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고 어르신의 오른편에 밀쳐져있는 이불을 끌어다 덮어드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어르신, 바로 옆에 이불 있으니까 추울 때는 끌어다 덮으시면 돼요. 부르셔도 제가 얼른 달려오지 못할 때는 추운데 참지 마시고 손으로 끌어덮으시면 돼요, 그쵸?
인자어르신은 와상상태로, 하루종일 침상에 누워지낸다. 그러다 욕창이라도 생길까봐, 근무자들은 수시로 어르신의 체위를 변경해드린다.
와상환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어떤 분들은 걷지 못하여 와상이 됐을지라도 체위변경이나 기저귀교체를 할때 스스로 몸을 좌우로 뒤척이거나 적어도 그런 동작을 도와주려는 의지를 최선을 다해 표현한다. 그런 경우, 돌보는 일은 부담이 훨씬 덜하다. 어르신들이 아주 조금만 스스로 몸을 움직여 주어도 내가 순간적으로 써야 할 힘의 양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의 몸을 전혀 스스로 뒤척이지 못하는 경우, 체위변경이나 기저귀교체시 어르신의 몸 반쪽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들어올려야만 하는 바로 그 때, 요양보호사들은 폭발적인 힘을 써야만 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바로 그런 상황이 반복 누적되면서 근육도 없는 내 양팔뚝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 사실....그래서 인자어르신처럼 스스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분들의 케어를 할때마다 심적인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고 남에게 미룰 수 없을 뿐더러 결코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일부러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인자어르신이야말로 나에게는 언제나 천근만근의 바윗돌처럼 느껴진다.
퍼진 밀가루반죽을 상상해보라. 밀가루반죽이 퍼져버리면 그것을 쓸어모아 담기가 쉽지 않다. 인자어르신이 누워있는 육중한 모습은 언제나 내게 퍼진 밀가루반죽을 떠올리게 한다. (어르신을 폄훼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내가 느끼는 부담감의 크기를 설명하자니 예로든 표현일 뿐임을 양해바란다.)
그런 모습으로 침상에 누운 채 도움의 손길에 오로지 의지하여 눈을 감고 있다.
당신 옆에 손에 닿는 이불 자락을 자신이 원할 때는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다는 뜻으로 말했을 때, 뜻밖에도 어르신은 언짢은 듯 되받았다.
인자 어르신은 또한 녹내장환자라고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강조한다.
에고, 어르신, 이불이 바로 오른쪽 옆구리에 닿아 있으니까 그냥 끌어다 덮으실 수 있다는 말씀이에요...
가끔 어르신은 너무나 지나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얼마든지 달려가서 이불을 덮어드릴 수 있고 식사를 떠먹여 드릴 수 있으며 양치질을 도와드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다는 눈도 어느 때는 아주 잘 보이는 듯 체조시간에 참여하였을 때, 체조강사의 모든 팔동작을 제대로 따라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 우리는 인자어르신의 눈상태를 의심했다.
정말 보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지.
어쨌거나, 이번에도 어르신은 이불을 덮는데 필요한 동작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눈상태와 와상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는 분들은 휠체어를 태워서라도 침상을 벗어나도록 하여 하루 몇 분씩이라도 다리 힘을 기르는 재활운동을 시키고, 누워있는 분들도 침상에서 팔이나 손운동을 지속하여 부족하나마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가능한한 오래 유지시키려 노력한다.
인자어르신도 걷지 못하여 침상에 계시나, 손과 팔은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느리고 서툴러도 직접 수저를 이용해 식사를 하시고 간식으로 나오는 과자나 음료를 스스로 들고 음용하신다. 다만, 연하곤란이 있어서 물이나 국물류의 식사는 한 방울도 쉽게 삼키기 어려워 기침이 이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자어르신이 누운 채로도 얼마든지 사용가능한 손과 팔을 사용하려 애써야 하며, 바로 오른팔과 옆구리에 닿아 있는 이불자락 정도는 충분히 끌어다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에게는 그 말이 언짢고 서운했던가.
나는 눈도 안 보이고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불을 갖다 덮느냐고 반문을 하신 것이다.
나는 더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드리고 나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다음 다시 들어가 이젠 춥지 않으시냐고 확인차 물었을 때 어르신은 침울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요,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은,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르신은 방금 전, 스스로 이불정도는 끌어다 덮으실 수 있다는 나의 말에서 근본적인 물음표를 찾아내고 있었다.
어르신, 예전에는 혼자 지내셨군요, 그런데 이제는 혼자 지내지 못하시니까 여기 와 계신 거에요. 자녀분들은 매일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 없으니까 저희들한테 부탁하신거고요...
어르신, 아드님은 일하셔야 하잖아요. 열심히 일하고 시간내서 어머니 보러 오시잖아요. 어르신은 혼자 걷지못하시고 눈도 안 보이고 하니까 저희들이 돌봐드리는거고요...
어르신은 그러니까, 당신의 요구에 두말없이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몸상태를 고려하지도 않은채, 바로 옆에 있는 이불 정도는 알아서 덮으라는 뜻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상대방을 귀찮게한 것이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까지 나아간 것이다. 게다가, 자식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들들도 딸도 있는데 왜 이런데 와서 그런 설움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지점에 닿은 것이다.
죽은 듯이 하루종일 누워, 누군가 당신 몸을 뒤척여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천장만 바라본 채 살아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 그 마음속에서는 어쩌면 날마다 수십수백 번 자신의 존재와 살아온 시간과 여전히 그 상태로 살아져야만 하는 앞으로의 나날들에 대해 번뇌와 회의와 절망과 슬픔, 울분의 무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벗어나고 싶어도 스스로는 단 한치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게 될 것이 명명백백한 숨막히는 현재, 그리고 뻔한 미래.
영원할 것같았던 젊고 활기찼던 순간들을 지나 어느새 숨쉬고 먹고 싸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일은 얼마나 비참한가.
인자어르신 또한 기본적으로 치매가 있기는 하지만, 평상시 대체로 지극히 정상적인 인지상태를 보인다.
그래서 특히 때때로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자괴감과 좌절감을 불현듯 표출하며 돌봄종사자의 말 한마디에도 극도로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몸과 다르게 정신만은 너무나 또렷하고 명징하여 심신의 괴리감조차 너무나 적나라하게 자각함으로써 심적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아닌가.
이런 가슴속 회오리는 인자어르신과 달리 아무 말없이 정말 죽은 듯이 침상에 매여 지내는 대부분의 와상어르신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가끔, 비위관으로 삼시세끼를 연명하며 완전와상인 송미(가명)어르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한없이 슬픈 어르신의 커다란 두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서글픈지 모른다.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듯, 아무 생각도 없는 듯 보이는 송미어르신의 그 가슴속, 그 폭풍속 돛단배같은 혼돈의 머리 속에서는 얼마나 커다른 회오리와 번민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나는 차마 당신의 그 쓰린 눈물방울만으로는 짐작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