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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모리 Oct 03. 2021

노키드라이프

임신과 출산, 육아는 정말 축복받은 일일까

때는 2000년, 11살.

그때부터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라고 생각해왔다.

엄마가 보던 일일드라마나 주말연속극 같은 걸 따라보며 결혼 준비하며 가전, 가구 사러 다니는 에피소드는 재미있게 봤지만(동생이나 나나 이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그 나이 여자아이들이 으레 말하곤 했던 "난 결혼하면 애기 몇 명 낳을거야!", "난 결혼식 때 드레스 어떤 거 입을거야!" 같은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오히려 동생이 언닌 결혼하면, 이라 시작되는 질문을 하면 "난 결혼 안 할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럼 엄마랑 아빠가 코웃음 쳤다. 아마 얘가 뭘 안다고, 싶었겠지.


불행하게도 난 '얘가 뭘 안다고'라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배은망덕하게도, 하지만 사실이라 어쩔 수 없게도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데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11살, 엄마는 내가 머리가 좀 컸다고 생각했는지, 아님 아무데도 털어놓을 데가 없어 이대로 가다간 죽겠다 싶었던 건지 나에게 집안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네 아빠는 가장인데 저렇게 무능하고 돈도 못 벌고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맨날 놀러만 다니고 속 터져 못 살겠다."


이게 주된 하소연이었고, 저 말을 중심으로 "니넨 공부 잘해서 국립대 가야한다. 사립대는 못 보낸다"(다시 한 번 쓰지만 우린 11살이었다), "우리집에 빚이 얼만지 아냐"(난 '빚'이 '빗'인 줄 알았다. 우리집이 미용실이라 엄마가 빗 사느라 돈을 많이 썼나보다, 했다),  "엄마 이렇게 살다 너무 힘들면 도망갈거다" 등등.


지금 되돌아보면 명백한 아동학대였다.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또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우울증이었고, 그 화를 우리를 때리면서 풀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혼나면서, 맞으면서 알게 된 건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간다'였다. 엄마의 악다구니와 욕을 듣고 있으면 괴로워서 엄마에게 맞으면서, 혹은 벌 서면서도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 평화롭게 저녁을 먹고 있을 다른 집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그래서 지금도 저녁이나 밤에 불켜진 아파트 창을 보거나 집을 보는 걸 좋아한다. 엄마에게 맞으면서 자주 다른 아이들 집에 불 켜진 모습, 그 속에서 엄마나 형제들끼리 놀고 있을 상상을 하도 많이 해서.


그때부터였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불행해지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난 결혼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 그때는 딩크라는 개념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몰랐고, 결혼하면 당연히 임신과 출산, 육아가 따라오는 거였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안 된다 생각했다.


동생이 11월에 결혼한다. 

그저께 밤에는 어플로 2세 사진을 만들어 보내줬다. 이런 게 있어, 라며.

나도 모르게 불쑥 "넌 그렇게 살고 애기 낳고 싶냐" 라 답장 하려다 말았다.

짜증스러웠다. 


얘는 어릴 때 그 고생을 해놓고 뭔 또 애를 낳는다고 이러냐.


다음날 아침 연락했다. 

"어제 일찍 잠"

그 '2세 사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바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임신과 출산, 육아만 싫으면 되는데 동생은 가족이고 그 고생을 함께해와서 싫은 마음이 옮겨가는 것 같다.

서른 둘이 되니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있다. 행복하게 다가와야 할 아기사진이 나에겐 삐뚤게만 다가온다.


얘는 무슨 생각으로 애를 낳았지?, 얘 남편은 월급 많이 받나?, 얘는 좋은 부모가 될까 과연?


유튜브 채널 '오마르의 삶'의 "제발 애 낳지 마세요" 영상캡쳐. 격한공감을 부르는 영상.


사람이 결혼해서 애 낳는 것이 '아무 생각없이 동물 키운다고 동물 데려오는' 일처럼 느껴진다.

얘는 저 애기가 나중에 커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가고 군대도 갈 사람이 된다는 걸 모르나? 싶다.

아기는 귀여운 상태 그대로에서 멈춰 있는 게 아닌데.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내 병(모야모야병) 환우 정보공유 카페에 접속해 관련 이슈가 있는지, 다른 환우들은 요즘 백신 맞고 어떤지 등등을 훑어본다. 아까도 접속했다가 둘째 고민이라는 환우의 글을 봤다. 첫째 낳을 땐 병을 몰랐으나 진단 받은 지금 둘째 임신을 고민 중인데 다른 환우들의 생각은 어떤지 묻는 글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너무 이기적이다. 지 좋자고 병을 물려받을 수도 있는 아이를 또 낳을 생각을 하다니, 기가 막혔다. 첫째는 몰랐으니 신경 써서 잘 키워야하겠지만 그걸 알고도 어떻게 둘째 생각을 하지. 게다가 나이도 서른 일곱.


1990년도에 여아감별낙태가 제일 심했는데, 90년생인 '우리'가 지금 서른 둘이다. 한창 결혼하는 연령인데 여아를 다 죽여놨으니 기득권이 원하는 '애 낳아줄 여자'가 없는 것도 한 몫하는데, '그들'은 그런 사정엔 관심이 없다.


'반려동물 입양 전에 신중하라'라고 말하는 문화가 있는 것처럼 제발 임신과 출산도 그런 문화가 더 확고해졌음 좋겠다. 백날천날 인구절벽이니 어쩌니 개소리 집어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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