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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모리 Mar 22. 2022

괜찮다고 말해줘

괜찮아, 그 아무것도 아닌 한 마디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저번 상담에선 선생님이 내가 많이 나아지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말했다.

초기 진료 때는 매번 내 이야길 들으면서 조마조마하고 걱정이 됐었는데 이젠 걱정이 많이 줄었다고. 

예전엔 '이랬고 저랬고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기분도 너무 안 좋고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들어요' 식의 내 스트레스와 불안 등을 나열하면서 이야기의 끝이 좌절과 절망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이래서 저래서 힘들었는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좀 더 나아지겠죠'로 변화하고 있다고.

그걸 나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힘든 거에만 집중했는데 이젠 이게 지나갈 거란 걸 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고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한 발 물러서서 들여다보게도 되고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설 명절을 쇤 직후에 있었던 상담에선 윤정 씨 얘기 들으면서 너무 조마조마했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그 수십 번의 충동을 버티고 견뎌내고 지금 내 앞에 와 있어 줘'서 너무 고맙다고. 대견하다고.


식스센스 시즌2 11회 가짜 상담가 특집 클립 영상

몇 개월 전엔 유튜브에서 클립으로 올라온 식스센스의 영상을 봤다. 출연진들이 심리센터에서 무용동작치료를 하면서 서로에게 '잘하고 있어'라고 돌아가면서 이야기해주는 클립이었는데,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서 울면서 봤었다.

그렇게 보다 보니 대학교 자취할 때가 생각났다. 필기를 달달 외워야 하는 한국철학사 시험 전날이라 핫식스를 두 캔 먹고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다 너무너무 자고 싶어서 침대에 누워 혼잣말로 '괜찮아'라고 딱 한마디 뇌까렸을 뿐인데 눈물이 막 났었던 때.


수년 전에 자주 고민을 털어놨던 친구와 누구나 다 외로운가 봐, 라는 이야길 나누다가 

다 그렇게 사니까 이젠 너무 힘들어도 아주 소수에게만 아주 가끔, 못 견디겠을 때만 얘기해, 진짜 너무 힘든 이야기는 이젠 그냥 병원 가서 이야기해,

라고  했더니 '괜찮아'라는 답이 왔다. 그냥 딱 저 세 글자, 한 단어.

이 친구에게 이런 하소연도 했었는데, 우문현답을 줬었다.

이 친구는 수년 전, 내가 털어놓았던 '힘듦'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 있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사는데 왜 너만 못살겠다 힘들다 투정 부리냔 식이었고, 난 그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힘들었을 텐데 내 고민까지 얹어준 것이었으니 불만을 표시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내가 입을 다물고 대화가 끝났었는데 다음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너에게 철없다, 어리다고 말한 것 사과한다고, 난 사람들이 '왜 어리광 부리냐'라고 생각할까 봐 그게 무서워서 힘들어도 꾹꾹 참는 건데 넌 너의 느낌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고, 그건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괜찮아, 그 아무것도 아닌 한 마디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힘든 걸 내색하지 않는다. 어련히 다들 이러고 사니-라고 생각해서 힘들다 내색하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도 서로 잘하지 않는다. 괜찮아? 힘내, 가 아닌 '괜찮아'라는 말은 거의 안 한다.


이제 힘듦이나 고민, 우울을 털어놓을 대상을 확 줄였으니(그들과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나에게 괜찮아, 라는 말을 더 자주 하기로 했다. 

슬퍼도 괜찮아, 힘들어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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