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 헤어지고 싶지만 만난 적도 없는 너에게』를 읽고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초등학생(그래, 정정할게. 초등학생 아니고 국민학생이었어) 때였을 거야. 교과서에 실린 너를 보고 간단한 모양새에 반했고, 방학 때마다 밀린 일기를 채울 때 너를 썼지. 그러다 연속해서 너를 쓰는 게 양심에 찔리면 너 대신 편지를 쓰곤 했고 말이야.
내가 너를 가장 자주 만났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어.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문학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하지만 문학 책에서 김수영의 <풀>을 읽고 전율했던 기억은 선명해.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는 문장이 내게 왔었지.
너에게 반해서 노량진에 있던 <국민문고>에 수시로 시집을 사러 다녔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땐 좋은 시를 볼 줄 몰라서 그저 사랑 타령이나 하는 시집을 사서 읽고 또 읽었지. 그리고 그 시를 따라 나도 너를 쓰기 시작했어. 기억하지? 내가 아래한글 문서에 썼던 200여 편의 시를. 파일에 걸어놓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때의 너와 영영 이별을 해버렸지만 말이야. 지금생각해보면 그때 너랑 헤어진 건 다행이었어. 그때 내가 썼던 너는 진짜 시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내 감정을 토해 낸, 말장난이었을 뿐 시라고 할 수 없었겠지. 너는 쉽게 써지는 존재가 아니니, 그때 내가 쉽게 썼던 것들은 네가 아니었을 거야.
네가 참 어렵다고 느낀 건, 20때가 되면서부터였어. 사람들이 좋다는 시집을 사서 읽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너도 있었지만, 너를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무엇인지 고민해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지. 그래서 너와 작별하고 소설을 만났어. 아주 오랫동안 너를 떠나 있었지.
내가 다시 너를 찾은 건, 작가가 되기 위해 문장 공부를 할 때였어. 책장에 꽂혀있던 시집을 꺼내 읽으며, 빈약한 내 문장을 구원해줄 너를 찾았지. 나이가 들면서 경험한 것들이 많아져서 그랬는지, 그제야 조금 네가 보였어. 너를 보면서 자주 가슴이 쿵 내려앉기도 했어. 노트에 너를 필사하며 가슴을 쓸어 올렸어. 그리고 생각했지. 너를 쓰는 시인들은 천재라고!
그때 느낀 ‘심장 쿵’을 다시 느낀 건, 몇 해 전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김경민,포르체)를 읽을 때였어. 작가가 선별한 시와 나름의 설명이 있는 글을 보면서 얼마나 뭉클했는지 몰라. 그런데 그 책을 쓴 작가가 너에 대한 책을 새로 냈다잖아! 그러니 어찌 읽지 않을 수가 있겠니? 소식을 듣자마자 냉큼 주문해 읽었지.
『시랑 헤어지고 싶지만 만난 적도 없는 너에게』(김경민, 우리학교)에 소개된 시를 읽으면 쿵쿵,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어. 네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였지. <새해 첫 기적>, <결빙의 아버지>, <눈 오는 지도>를 읽으면서 너의 존재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 내려앉은 마음을 다시 끌어 올려준 건, 시와 나란히 앉은 작가의 글이었어. ‘익숙한 사고에서 살짝 벗어나 상황을 뒤집어 보기만 해도 이렇게 재밌는 시가 탄생’한다(p36)고, ‘함축적 의미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상황과 맥락 속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의미’라고(p40), 시란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하는 게 아니라 조금 숨겨서, 숨겨진 말을 독자가 생각해 보도록 절제 한’(p112)거라고 알려주는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 그리고 생각했어. 이 책을 나와 함께 글을 쓰는 청소년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말야. (물론 나도 너를 쓸 때 이런 것들을 기억해내자고 다짐했어. 그래서 얼마나 많이 밑줄을 그었는지 몰라.)
나는 네가 사람들하고 영영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때때로 너에게 무관심하고, 너를 잊을 수는 있겠지만 삶이 메마를 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을 때 사람들이 너를 찾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지 않기를! 바라. 그러니 너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헤어지자고 하면, ‘누구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옆에 더 착!하고 달라붙어 있어! 알았지? 내 옆에서도 떨어지지 말고! 그럼 너의 영생을 기원하며 이만 줄일게. 안녕.
2023년 12월 끝 무렵,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은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