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햇살> 2023년 3월호
해마다 3월이 되면 아이들에게 몰래 편지를 쓴다. 새로운 교실에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새 학년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삶이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즐거운 1년이 펼쳐질 거라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 편지의 이름은 ‘필통편지’다. 아이들 몰래 필통 속에 넣어주기 때문인데, ‘feel이 통한다’는 의미도 있다.
필통 편지를 시작한 것은 지금 고등학생인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엄마 닮아 왜소한 아이가 큰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워낙에 마음이 강한 아이라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네 안에는 거인이 있어!”와 “네 옆에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 작은 쪽지에 짧은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아들! 좋은 아침이야. 월요일이라서 좀 피곤하지? 그래도 씩씩하게! 너답게 하루를 시작하리라 믿어. 좋은 하루 보내렴.”, “사랑하는 야고보! 행운은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미소를 짓는대. 오늘 하루는 행운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 보자. 사랑해! 많이 많이.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 오늘은 날씨가 꾸리꾸리하네. 그래도 네 마음의 날씨는 맑음이길 바라. 오늘도 신나는 하루! 세상 무엇보다 귀한 나의 아들 사랑해!”
포스트잇 크기만한 작은 종이에 몇 줄의 편지를 쓰고 딱지모양으로 접었다. 그리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아이의 가방을 열고 필통 속에 쪽지를 넣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려고 필통을 열다가 내 쪽지를 발견하고 읽었다. 이렇게 두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필통 편지를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필통 편지를 그만 써달라고 요청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침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자기 자리로 모여 든다는 것이다. 오늘은 너희 엄마가 무슨 편지를 썼는지 궁금하다면서. 아이는 친구들이 엄마의 편지에 관심을 갖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니 필통에 넣지 말고, 그냥 아침마다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편지를 써서 현관문 앞이나 자전거, 신발주머니 등에 붙여 놨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떼어서 가져갈 수 있도록 말이다.
몇 달 후, 필통편지를 멈추었다. 이만하면 아이의 마음 안에 ‘거인’이 있음을, 네 옆에는 든든한 엄마가 있음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좋은 편지를 영원히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다시 필통에 편지를 넣었다. 그 중 하루가 새 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새 학년이 되는 첫 날은 설레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지, 어떤 친구들과 1년을 보내게 될지 마음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도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 학년이 되는 첫 날 필통에 몰래 편지를 넣었다.
“본격적으로 새 학년을 시작하는 첫 날이구나. 축하해! 올 한해는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지 궁금하네. 활기차고 신나게! 무엇보다 네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한 1년을 만들어 가길 바라. 엄마는 네 편! 널 응원해~ 사랑한다 아들!”
이렇게 쓴 짧은 편지는 아이들이 1년을 살아갈 힘이 된다. 내 뒤에 든든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는다. 이런 편지는 부모가 아이들에게만 쓰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손녀 손자에게 쓸 수 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도 쓸 수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누군가를 몰래 응원하고 싶다면 지금 작은 메모지를 한 장 꺼내보자.
* <청소년의 햇살> 2023년 3월호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