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목요일의 작가들》이라는 책을 냈다. 지난 10년 동안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며 쌓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 제자들이 톡을 보내왔다. 그 중에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제자는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읽는데, 마치 편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가 얼마나 진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휴대폰 메시지도 ‘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엄마의 문자’ 덕분이었다. 엄마는 여덟 살 손녀에게 문자를 배우신 후 자주 문자를 보내왔다. 맞춤법이 틀리고 문맥이 이상해도 엄마의 문자는 신기하게 술술 잘 읽혔다. 지방으로 강의를 하러 가던 그 날도 엄마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기차를 타고 이동 할 때였다. 나는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보고 휴대폰 화면을 클릭했다.
‘우리딸 잘가고이는지 조심해서 일하고 오시유 사랑한 멈마딸 수고해유’
엄마가 보낸 문자를 ‘우리 딸, 잘 가고 있는지. 조심해서 일하고 오세요. 사랑하는 엄마 딸, 수고해요.’라는 문장으로 읽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글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것임을. 그러다 돋보기 너머로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누르고 있는 엄마가 보여 울컥했다. 엄마의 문자는 그냥 문자가 아니었다. 예쁜 편지지 위에 한 자 한 자 손으로 눌러쓴 손 편지보다 더 아름다웠다.
편지 강의를 할 때 마다 종종 ‘손 편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편지를 꼭 손 글씨로 써야 진심이 전해지냐는 것이다. 무언가 중대한 발표를 할 때 손 편지를 쓰는 연예인들처럼, 진심을 전하려고 할 때 꼭 편지지 위에 손 글씨로 써야하느냐고. 당연히 아니다. SNS나 문자로도 진심을 전할 수 있고, 워드로 쳐서 출력하는 종이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
‘진심을 전하는데 손 편지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는 행위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된다. 그에 반해 문자나 SNS가 손 편지 보다 더 가볍게 생각되는 이유는 메시지 받는 사람을 ‘단체’로 취급하는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자,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본 재밌는 영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내가 왜 이 영상을 보내는지 설명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설명 하나 없이 링크 주소만 보내지 않았는지 말이다. 또,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상대방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중심에 놓고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것처럼 무미 건조하게 보내지 않았는지 말이다.
문자나 SNS에 마음을 담으려면, 메시지 받는 사람을 ‘단체’가 아닌 ‘한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 편지지를 고르고, 종이 위에 한 글자씩 글씨를 쓰는 심정으로 문장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야 받는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메시지에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는다면 문자도, DM도, SNS에 달아주는 댓글도 손 편지만큼 따뜻한 편지가 될 수 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틀렸지만 아름다웠던 우리 엄마의 문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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