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햇살> 9월호 #조르주상드의편지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편지는 몇 통이나 될까? 일주일에 한 통씩 쓴다고 해도 70년으로 어림잡으면 3,640통이다. 한 사람이 3천통이 넘는 편지를 쓸 수 있다니 엄청나다. 그러나 이 숫자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상드다.
‘정열의 화신’으로 불렸던 조르주 상드는 편지로 유명하다. 현재 프랑스에는 그가 쓴 편지가 스물여섯 권의 서간집으로 묶여 있는데, 모두 1만 8천통에 달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분실된 편지까지 포함하면 그녀가 평생 동안 쓴 편지가 4만여 통에서 5만여 통에 이른다는 것이다. 당시 편지가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음을 감안해도 4만 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상드가 이렇게 많은 편지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교류한 인물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가족은 물론, 문학가와 음악가, 예술가와 정치가 등 직업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무척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고 그들과 편지를 나누었다. 상드의 서간집에 등장하는 인물만 2천명이 넘는 이유다.
우리말로 번역된 상드의 편지는 모두 510통이다. 이 편지는 여섯 권의 책으로 묶여있고, 이 중에서 55편만을 뽑아 한 권으로 묶은 책도 있다. 상드의 편지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가 친구인 프랑수아 롤리나에게 쓴 편지다. 1836년 2월 4일, 상드는 잔뜩 풀이 죽은 채 편지를 보내온 친구에게 답장을 쓴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당신의 편지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며 걱정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에게 달려가겠다고 전한다. ‘네 곁에는 내가 있으니 안심하라’를 의미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쓸 수 있는 내용이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묻고, 내가 필요하다면 달려갈게! 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상드의 편지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뒤에 이어지는 내용 때문이었다.
상드는 불안해하는 친구가 행여나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하게 될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침착함이라는 아주 커다란 미덕이 있다’고 다독인 뒤 말한다. ‘당신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고, 당신에게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줄 권리도 없다’고 말이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나’라는 존재는 ‘나 혼자’만의 것이며, 내가 어떻게 되든 다른 사람하고는 상관없다고. 그러나 상드는 알고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은 사이는 서로 연결돼 있고, 그래서 상관없는 사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상드에게 친구의 존재는 이미 삶의 한 부분이었다. 내 삶과 친구의 삶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친구가 고통에 빠지면, 자신의 삶도 고통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상드의 편지를 읽으면서 ‘응원편지’를 쓰는 법을 배웠다. ‘너의 존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의 고통이 나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는 다짐, 당신의 존재가 내 삶의 일부임을 알려주는 외침!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응원이 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혹시나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두 가지를 알려주는 편지를 써서 건네는 건 어떨까? 상드가 친구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었듯, 우리의 편지도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